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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나 없는 두나
김상희
창비 2026.0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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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제1부 사라진 흰 천 대신에

루꼴라 재배 일기
아기 돌보기
내가 사랑하는 얼룩말
사랑과 희망이 넘치는
지구적인 면모
빈 잔
무심코 발견되는
마음 오르기
가장 먼 곳
말하는 희망
우리에게는 천사가 필요하다

제2부 나 여기 있어!

동생을 줍는다
비밀 친구
무엇이든 졸업하고 싶어하는 여학생
목마
나의 과외 선생님
친구의 애인의 애인의 애인의……
저녁 식사 모임
잡을 수 없는 것
메이드 김양
단지 1인실만큼의 엔딩
어딘가 익숙하고 아무것도 아닌
반복적 아웃
멀쩡히 서 있는 것이 없도록 한다

제3부 내 친구가 묻힌 곳을 알고 있다

두나
모르는 나라
늙은이로 보내는 밤
정오의 구분
이 여름의 설계도
고양이 왈츠의 초월성
개들이 있는 호수
저녁이 없는 식탁
날씨는 기운다
눈 감기
티백 위의 남자
곧 도착한대
서커스

제4부 지구의 중심은 조용하다

천사와의 드라이브
홀로그램 되기
사막의 투어 가이드
사람 같지 않은 슬픔
찾을 수 없는 것
전혀 알지 못하는 사람의 소식
어떻게 생겼나요?
자꾸만 불이 붙는다
해부 시간
잘 모르는 친구
재탄생

해설|최다영
시인의 말

저자 소개 1

2001년 충남 부여에서 태어나 2022년 창비신인시인상을 수상하며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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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26년 08월 19일
쪽수, 무게, 크기
152쪽 | 214g | 125*200*9mm
ISBN13
9788936425425

책 속으로

루꼴라는 자란다
우적우적 씹어 먹어도 양심의 가책이 느껴지지 않는다
베란다 화분에 피부 조직 같은 잎이 보인다
너의 발등을 떠 온 것 같은
---「루꼴라 재배 일기」중에서

마른풀을 뜯어 먹는 요니를 쓰다듬는다
나와 요니
요니와 나
한 무리로 포괄되지 않는
그렇다고 멀리 떨어져 있지도 않는
요니는 길들여지지 않은 눈으로 나를 바라본다
한번도 울어본 적 없는 눈을 하고서 주위를 맴돈다
---「내가 사랑하는 얼룩말」중에서

천국에도 지워지지 못하는 자국이 있을 것이다
그것이 간혹 희미한 빛으로 보이듯
그들의 날카로운 발자국
이상한 그림처럼 뭉개지는 그림자
그것들을 두고 쏟아지는 노란 빛
사람을 사랑하게 되었어
재가 된 마음에게 중얼거리다가
끝없이 미끄러지더라도
---「마음 오르기」중에서

부드러운 털을 가진 짐승이 발목을 스치며 지나간다 어느 날은 참지 못하고 안아버렸지 집으로 데려와 따뜻한 물을 건넸다 짐승은 빠르게 자랐다 이빨이 쑥쑥 나고 다리가 길어지고 맘마 맘마 엄마 엄마 발음할 줄 알게 되고 웃기도 하고 울기도 하고 화를 내고 이내 슬픔을 가지게 되고
---「가장 먼 곳」중에서

어느 밤 두나와 손잡고 산책한다. 빛이 쏟아지는 아름다운 도시. 로드킬당한 짐승을 피해 걷는 밤의 발걸음들. 두나의 컨트롤러 안의 지구는 어떤 모습일까. 두나에게 물어볼까? 두나, 지구는 무엇이야? 그렇게 물어보면 두나는 내가 원하는 아름다운 대답을 내놓을까? 거실에 놓인 꽃병을 닦다가 꽃 냄새를 맡는 두나. 아니다. 꽃 위에 쌓인 먼지를 들여다보는 것이다. 내가 두나를 불러서 두나는 두나가 된 것인데 내가 두나를 부르지 않으면 두나는 두나보다 더 멀리 갈 수 있을 것 같은데. 두나의 어깨를 붙잡는다. 새로운 종과 처음 닿는 것처럼 깜짝 놀라 두나를 본다. 나는 두나를 놓친다. 두나는 더 멀리 간다. 두나 없는 두나가 고개를 든다. 두나는 거기서부터 시작된다.
---「두나」중에서

천사가 손을 뻗어 내 땀을 닦아주었다
천사는 열사병에 걸릴 것이다
이번 여름을 넘기지 못하고 죽을지도 모르겠다
지구의 여름은 처음일 테니까
---「천사와의 드라이브」중에서

넌 누구니? 누군가 물었을 때
개의 이름과 나의 이름을 바꿔 말해도 이상하지 않을 때

---「재탄생」중에서

출판사 리뷰

“마음에도 뼈가 있다는 것이 믿어지니?”
상처마저 끌어안고 성장케 하는 목소리


김상희의 시에서 눈에 띄는 것은 바로 마음의 상처가 자라는 풍경이다. “마음에도 뼈가 있다는 것이 믿어지니?”(「마음 오르기」)라는 물음은 시집 전체를 관통하는 질문처럼 읽힌다. 시인에게 마음은 추상적인 관념이 아니라 늙고 병들고 상처 입으며 자라는 존재이다.

부드러운 털을 가진 짐승이 발목을 스치며 지나간다 어느 날은 참지 못하고 안아버렸지 집으로 데려와 따뜻한 물을 건넸다 짐승은 빠르게 자랐다 이빨이 쑥쑥 나고 다리가 길어지고 맘마 맘마 엄마 엄마 발음할 줄 알게 되고 웃기도 하고 울기도 하고 화를 내고 이내 슬픔을 가지게 되고 (…) 나는 아주 먼 곳까지 걸었다 부드러운 털을 가진 짐승이 발목을 스치며 지나간다 나의 사랑스러운 짐승인가 내가 도려낸 바로 그 짐승인가
―「가장 먼 곳」 부분

내가 키우고 “내가 도려낸 바로 그 짐승”은 상처받은 마음 자체를 나타낸다. 그 마음이 자라는 시간을 함께한 자리에서 그것이 사랑인지 상실인지는 끝내 판가름 나지 않지만, 시인에게 있어 그것은 성장과 다름이 없다. 그러니 성장이란 상처를 극복하거나 외면하는 것이 아니라, 그 미해결의 무게를 지닌 채로도 계속 나아가는 일인 셈이다. “사람을 사랑하게 되었어”(「마음 오르기」)라는 고백과 “의미를 잃어버린 채로도 의미가 있을 때”(「재탄생」)라는 구절은 각각 사랑과 상실이라는 상반된 얼굴을 하고 있지만, 그 둘 다 정해지지 않은 채로 끌어안고 걸어가는 시간이라는 점에서 다르지 않다. 시인이 말하는 성장이란 바로 그렇게, 사랑인지 상실인지 끝내 알 수 없는 채로도 계속되는 시간의 다른 이름일 것이다.

“두나는 거기서부터 시작된다”
이름을 놓치는 자리에서 태어나는 이름


김상희의 시선은 늘 세상의 중심보다는 “밟혀 죽을 것 같은 작은 것들”(「말하는 희망」)이 있는 가장자리를 향한다. 그의 눈길이 닿는 곳에는 “서글플 만큼 어린 소녀가 모퉁이를 돌아 달려오는” 풍경이 있고, “그저 지나갈 뿐”(「지구적인 면모」)인 무력한 존재들이 서 있다. 그는 그 모서리 너머로 사라지는 이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무심하게 흘러가는 비정한 현실을 직시하며 어디선가 외롭게 죽어가고 있을 “모르는 사람의 이름”(「전혀 알지 못하는 사람의 소식」)을 불러보고, “그의 이름을 몰라도 그를 애도할 수 있다”(「티백 위의 남자」)고 되뇌며 스스로 그 이름의 자리를 대신 지키고자 한다. 그러나 이름을 불러 누군가의 자리를 지켜주는 일과, 이름으로 그를 어떤 틀 안에 가두는 일은 어쩌면 한끗 차이인지도 모른다. 그 위태로운 경계를 표제작 「두나」는 정면으로 파고든다.

인간이 되자, 인간이 되자, 두나에게 말하면 두나는 금세 투명해진다. 참을 수 없다는 듯 닦여버린다. 지워져버린다. (…) 내가 두나를 불러서 두나는 두나가 된 것인데 내가 두나를 부르지 않으면 두나는 두나보다 더 멀리 갈 수 있을 것 같은데. 두나의 어깨를 붙잡는다. 새로운 종과 처음 닿는 것처럼 깜짝 놀라 두나를 본다. 나는 두나를 놓친다. 두나는 더 멀리 간다. 두나 없는 두나가 고개를 든다. 두나는 거기서부터 시작된다.
―「두나」 부분

화자는 청소 로봇인 두나에게 “인간이 되자, 인간이 되자” 말을 걸지만 두나는 인간에 가까워지기는커녕 투명해지고 지워질 뿐이다. “내가 두나를 불러서 두나는 두나가” 되었듯 이름을 준다는 것은 곧 존재를 그 자체로 존중하지 않고 어떤 틀 안에 붙들어두는 일이기도 한 것이다. 그래서 화자가 끝내 두나를 놓치는 순간, “두나 없는 두나가 고개를” 들고 “두나는 거기서부터 시작된다”. 이는 화자와 두나를 이어주던 이름이 끊어지는 순간이자, 그 이름 위에 세워져 있던 관계와 세계가 함께 무너지는 순간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 자리에 남는 것은 폐허만이 아니다. 이름이 지워진 뒤에야 비로소 고개를 드는 “두나 없는 두나”처럼, 무너짐은 이름 너머의 존재가 처음으로 스스로 나타나는 자리이기도 하다. 상처 입은 채로도 자라나는 마음처럼, 누군가 지어준 이름과 역할을 벗어난 자리에서, 관계가 끊어지고 세계가 무너지는 바로 그 자리에서 진짜 이야기는 시작될 것이다.

추천평

김상희의 첫 시집은 “지구 가장자리에 서” 있는 사람이 이쪽의 가장자리를 향해 건네는 말이다. 시인은 존재의 가장 변방, 안쪽 끝의 끝, 분명 있지만 덮어둔 곳을 가리키며 직시하라고 이른다. 그가 목도한 장면은 종이를 투명하게 통과해 이쪽으로 건너온다. 가령 “서글플 만큼 어린 소녀가 모퉁이를 돌아 달려오는” 풍경, 접시에 담긴 빵을 “할머니가 침대에 쪼그려 누워 있는 모습”으로 바라보는 장면을 보라. 화자가 살피고 더듬는 대상은 종종 “능력이 없다 의식도 없다 그저 지나갈 뿐”이다. “행동이 없는 감정”, 눈물을 흘린다. 건조한 슬픔이 지면에 빽빽하다. 무엇으로도 젖지 않는 슬픔은 “줄무늬가 춤추는 곳”으로 뻗어나가고, 상상을 매개로 다양하게 변주된다. 그의 시는 단정한데 도착지가 예상하지 못한 곳이라 자주 놀란다. 시집을 읽는 내내 슬펐다. 축축해지지 않는 참 이상한 슬픔이었다. 건조한 슬픔을 따라가면 차갑고 외로운 사람과 내가 겹쳐지는 느낌이었다. 냉정해서가 아니라 뜨거움을 식히는 중이라 차가워진 사람, 혹은 허리를 굽혀 떨어진 “동생을 줍는” 사람이 되곤 했다. 김상희의 시는 말이 감정에 업히거나 감정이 말을 앞지르지 않도록 절제하는 언술이 돋보인다. 그는 세상의 가장자리로 자기를 밀고 나가 독자에게 말을 건네려는 시인임이 분명하다. - 박연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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