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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자놀이 하던 날은 가고
송진권
창비 2026.0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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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제1부

모란이, 그날처럼
옴팡골
산밑 집
옴팡골에 산밑 집에
저 꽃밭
그래도 저 꽃밭
붉은 실
시인 한흑의 모(母)
그윽한 밤에
그림자놀이 하던 날은 가고
고양이는 괜찮아
해바라기씨 이야기

제2부

찔레 덤불 속
나의 어린 신
도라지 꽃밭으로
용암사 해돋이
봄달, 자목련
장마
수묵
모란에게
호랑지빠귀
울고 가는 저 기러기

제3부

버들피리 꺾어 불던
마루 밑에 살던 것들에게
머나먼 골짜기
피자두
못골 큰집
삼세번
고들빼기 꽃이
동기간에
가시지 않는 비린내
일 많이 한 손 1
일 많이 한 손 2
노제(路祭)
2024 겨울, 못골
꾸구리가 앉았던 데

제4부

소 등가죽의 떨림같이
어디로 가는 배냐
물 먹는 논
믿을 만한 구석
방하착(放下着)
쇠죽 안칠 때
능이가 나는 곳
부부
노이히 삼촌을 생각함 3
신들의 황혼
늦게 온 손님
여이
봄나들이 사진 속
장날 3
물멀미
상봉(相逢)
여울목

제5부

물까마귀
여름은 어떻게 오는가
옛 노래의 도랑 가에서
기억해야 하는 감각
바랭이와 쇠비름은
소쩍새의 위장술
두릅 순은 몇번 꺾나
결대로
스무고개
밤눈 내리니
작약
무서운 기다림
먼 훗날

해설|김준현

시인의 말

저자 소개 1

만화가를 꿈꾸다가 지금은 동시를 쓰고 시도 쓴다. 『은하철도의 밤』 같은 근사한 동화도 써보고 싶다. 철도를 오래 다녔다. 낯선 역과 도시를 떠돌다가 지금은 여객전무로 기차를 타는 일을 한다. 역마살 푸는 데는 이만한 직장이 없다고 생각한다. 쉬는 날이면 텃밭도 조금 일구고 도서관에 가서 책도 좀 읽는다. 얼뜨기 농부에 얼치기 시인과 직장인으로 살면서 너무 잘하지 않으려고 한다. 여기 기웃 저기 기웃대다가 이 다섯과 합류하게 되었다. 나는 동시 다섯 편에 시작 노트를 덧붙였다. 다섯이 각기 다른 빛깔이라 그런지 작업하면서 내내 즐거웠다. 시집으로 『자라는 돌』, 『거기 그런 사람
만화가를 꿈꾸다가 지금은 동시를 쓰고 시도 쓴다. 『은하철도의 밤』 같은 근사한 동화도 써보고 싶다. 철도를 오래 다녔다. 낯선 역과 도시를 떠돌다가 지금은 여객전무로 기차를 타는 일을 한다. 역마살 푸는 데는 이만한 직장이 없다고 생각한다. 쉬는 날이면 텃밭도 조금 일구고 도서관에 가서 책도 좀 읽는다. 얼뜨기 농부에 얼치기 시인과 직장인으로 살면서 너무 잘하지 않으려고 한다. 여기 기웃 저기 기웃대다가 이 다섯과 합류하게 되었다. 나는 동시 다섯 편에 시작 노트를 덧붙였다. 다섯이 각기 다른 빛깔이라 그런지 작업하면서 내내 즐거웠다. 시집으로 『자라는 돌』, 『거기 그런 사람이 살았다고』, 『원근법 배우는 시간』, 동시집으로 『새 그리는 방법』, 『어떤 것』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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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26년 02월 25일
쪽수, 무게, 크기
152쪽 | 206g | 125*200*8mm
ISBN13
9788936425326

책 속으로

모란꽃 이파리를 쓸며 바람은 불고
향기를 흩으며 바람은 불어가고
오늘 내가 여기 없어도
내일 내가 여기 있어도
모란은 필 테고
벌 나비는 날아다닐 테고
---「모란이, 그날처럼」중에서

아이 손에 길든 불덩이가
복사꽃 만발한 과수원이 되었다가
솟구쳐 불타는 한마리 새가 되었다가
태양 마차를 끌고 가는 불덩어리 말들이 되었다가
다시 다독이자
까뭇까뭇 별이 돋은 밤하늘이 된다
---「옴팡골에 산밑 집에」중에서

이렇게 손을 펴면 박쥐가 되고 새가 되고
요렇게 깍지를 끼면 토끼가 된단다
심지의 불이 사그라들고 있어요
엄마 엄마, 들리세요?
사납게 문을 흔들어대는 소리
길게 짧게 번갈아 우리를 부르고 있어요
엄마 엄마, 흰 새를 타고 날아가세요
---「그림자놀이 하던 날은 가고」중에서

누렇게 익은 보리밭을 천 이랑 만 이랑 가르며
달려 나가서 논둑에 대가리 처박는 바람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미친 듯 눈에 불을 켜고 씩씩거리며
비틀비틀 달려 내려와서 아무한테나 찍자 붙다
그만 주저앉아 울음을 터뜨리는 바람이라고 쓸 수 있을까
종달새 둥지 속의 새끼들 떨어뜨리고
잘 익은 보리밭 분탕질 쳐 쓰러뜨리고
새까맣게 깜부기나 날리면서
어디 외진 진구렁 같은 데나 가 쭈그려 앉아
풀꽃에나 엉기어서
흔드는 바람이라고 할 수 있을까
---「나의 어린 신」중에서

도라지 꽃망울이 지니고 온 색깔이 조금씩 풀어지고
밭을 갈던 아부지가 희미하게 웃으며
귀퉁이가 깨진 낮달을 파내 허공에 던져요
나는 아직도 연둣빛 속인데
실금이 간 꽃망울 속을 낮달이
기웃이 들여다보고 있어요
---「도라지 꽃밭으로」중에서

저 노랑을
저 파랑과 하양과 붉음을
지나지 않으면 어스름이 내려오지 않는다지요
거무죽죽한 날개를 떨쳐입은
숭숭 검은 털 배긴 어둠이 오지 않는다지요
나는 등잔에 기름도 채워두고
심지도 가지런히 잘라두었지만요
기다란 더듬이
소리 없는 날갯짓의 올빼미 같은 어스름이
검은 수레를 타고 곳곳에서 번지듯 스미어 올 때
차마 불을 그을 수 없었음을
뭐라고 해야 할지
---「수묵」중에서

귀퉁이 깨진 호롱아
내가 흘린 유리구슬들아
찢어진 털신아
귀뚜라미와 노래기와 지네 들아
밤송이로 막아놓은 쥐구멍 속의 쥐들아
숯검댕 묻은 몽당빗자루야
잘들 있었는가
여기서 잘들 살고 있었는가

---「마루 밑에 살던 것들에게」중에서

출판사 리뷰

순하고 애틋한 언어로 되살려내는 지난날의 풍경

진실한 마음이 깃든 선한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송진권의 시에는 자연의 정기와 사람의 온기가 서려 있다. 시인은 “시간의 적층으로 인해 납작하게 눌려 있는 말이 아니라 생생한 현장의 말과 현장의 감정”(해설)으로 “귀퉁이 깨진 호롱” “찢어진 털신” “귀뚜라미와 노래기와 지네 들” “숯검댕 묻은 몽당빗자루”(「마루 밑에 살던 것들에게」) 등 삶의 구석으로 밀려나 있는 존재들을 하나하나 불러낸다. 쉽게 스쳐 사라져간 이들에게 다정하게 안부를 물으며 이들의 내력과 “타고난 팔자”(「나의 어린 신」)의 ‘내림’을 꼼꼼히 새겨둔다. 그런가 하면 “안 죽으니께 살아지는 거”라며 “속에 태산 같은 짐을 쟁이구 사는”(「여이」) 물크러진 삶의 비애와 생의 덧없음을 때로는 슬픔을 담은 소리로, 때로는 해학적으로 전복하여 보여주기도 한다.

시인에게 유년의 기억은 단지 추억이나 회상이 아니라 “앞서간 사람들이 앉았던 흔적을 더듬어보는 일”(「기억해야 하는 감각」)이다. 시인은 고향 사람들의 질박한 삶을 진솔하게 복원해낸다. 특히 “독사같이 바랭이같이 대가리 쳐들고 살아나 밥 빌고 쌀 빌어”(「시인 한흑의 모(母)」) 자식들을 키워온 부모들의 헌신과 평생을 일로 살아온 노동의 숭고함을 뭉클한 필치로 그려내는 시인은 “손톱이 으등그러지고 손에 풀물 들어 갈라지고/지문도 다 지워”진 어머니의 “일 많이 한 손”(「피자두」)과 “무녀리라고 손가락질당하”면서도 “궂은일 다 당신이 하시”던 아버지의 “마디마디 못이 배긴 그 손”이 단순한 노동의 도구가 아니라 “식구들 건사”(「일 많이 한 손 1」)하고 삶을 지켜온 강인한 생명력의 원천이었음을 되새긴다.

“다시 또 어느 때 어느 곳으로 스밀지
골똘히 생각하기도 하는 것이다”
순환하는 계절처럼 이어지는 생의 돌림 노래


표제작 「그림자놀이 하던 날은 가고」에서 알 수 있듯 이번 시집에 수록된 많은 시편이 ‘그림자놀이’가 끝난 이후, 생이 사라지고 난 자리를 그려내고 있지만 시인은 죽음이나 소멸을 단순히 슬퍼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순환의 과정으로 받아들인다. 그렇기에 “곰팡이가 피고/정지엔 녹슨 가마솥이 굴러”다니는 빈집의 쓸쓸한 정경은 “오늘사 올라나 내일이나 올라나”(「못골 큰집」) 누군가를 애틋하게 기다리는 재회의 장소로 거듭나고, 화단의 꽃들이 말라가는 곳에서도 “이팝꽃도 고봉으로 피워놓고/꾀꼬리 울음도 개울물 소리랑 잇대어놓고/살자고 살자고/여기서 그냥 살자고”(「그윽한 밤에」) 속삭이는 생명의 기척을 느끼는 것이다. 시인은 가뭇없이 생의 뒤편으로 사라져간 것들을 지금-여기의 삶 한가운데로 다시 불러들이며, “내가 어디만큼 떠내려와 있는지” “내가 벗어놓은 허물들이 다 어디로 흘러갔을지”(「머나먼 골짜기」) 골똘히 생각해본다.

그러므로 ‘그림자놀이’의 시간은 가고 서늘한 현실이 당도해 있는 곳에서도 시인은 절망에 머물지 않고 다음을 그려낸다. 놀이는 끝났을지언정 “우리가 부르던 노래”(「그림자놀이 하던 날은 가고」)는 여전히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시인은 그 노래를 나침반 삼아 “옛날로 가는 지도”(「옛 노래의 도랑 가에서」)를 그려가며 “가도 가도 끝없는 행로(行路)”(「저 꽃밭」)를 묵묵히 걸어나간다. 가슴속에 쟁여둔 오래된 기억 속의 풍경들을 “아직도 잊지 않았다고” “아니 잊지 않으려고” “그래도 잊힐까 싶어서”(「물까마귀」) 시로 써나간다. 이처럼 모든 것이 사라진 자리에서도 다시 한번 꽃밭을 일궈내는 송진권의 시는 소멸 이후에도 결코 멈추지 않는 생의 끈질긴 맥박을 증명해 보이며 우리를 “여름꽃들이 화사하게”(「붉은 실」) 피고 있는 새로운 자리로 데려갈 것이다.

추천평

소년이 언덕길을 내려온다. 나무 그늘에 시를 풀어놓고, 그는 풀밭에 드러눕는다. 구름이 큰 눈을 깜빡거리며 지나간다. 시는 되새김질하며 느긋하게 풀을 뜯는다. 거기, 함께하던 사람의 목소리가, 어울렸던 풍경이 풀물처럼 번진다. 도라지꽃 쌉싸름한 향기가 묻어나는 것 같기도 하다. 땀 맺힌 소년은 개울로 뛰어든다. 가만가만 흐르던 물이 까르르, 웃음을 흩뿌린다. 멀리서 멀뚱멀뚱 바라보던 시가 음─머, 긴 여운으로 운다. 소년은 다가가 등을 쓸어주면서 “보슬비두 되구/홍수가 되구/수수만리 흐르는 크나큰 물두 되”는 시에게 “울어라 더 울어” 말을 건다. 그리고 저녁을 건너 적막한 집으로 돌아간다. 그의 시 속에는 소를 닮은 소년이 산다. 소는 어디에서나 함께하는 시이기도 해서, 선한 눈을 깜빡이며 세상을 바라본다. 잊어버린 자아가, 돌아가야 할 고향이 문장마다 숨 쉰다. 결코 놓아서는 안 되는 “기억해야 하는 감각”이다. 그래서인지 그의 시를 대하면 오랜만에 고향에 온 듯 마음이 “다 근지럽다”. 시집의 곤한 등을 다독이게 된다. 그의 이야기에 기대 누워 음─머, 순한 오늘을 꿈꿔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 길상호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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