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이 언덕길을 내려온다. 나무 그늘에 시를 풀어놓고, 그는 풀밭에 드러눕는다. 구름이 큰 눈을 깜빡거리며 지나간다. 시는 되새김질하며 느긋하게 풀을 뜯는다. 거기, 함께하던 사람의 목소리가, 어울렸던 풍경이 풀물처럼 번진다. 도라지꽃 쌉싸름한 향기가 묻어나는 것 같기도 하다. 땀 맺힌 소년은 개울로 뛰어든다. 가만가만 흐르던 물이 까르르, 웃음을 흩뿌린다. 멀리서 멀뚱멀뚱 바라보던 시가 음─머, 긴 여운으로 운다. 소년은 다가가 등을 쓸어주면서 “보슬비두 되구/홍수가 되구/수수만리 흐르는 크나큰 물두 되”는 시에게 “울어라 더 울어” 말을 건다. 그리고 저녁을 건너 적막한 집으로 돌아간다. 그의 시 속에는 소를 닮은 소년이 산다. 소는 어디에서나 함께하는 시이기도 해서, 선한 눈을 깜빡이며 세상을 바라본다. 잊어버린 자아가, 돌아가야 할 고향이 문장마다 숨 쉰다. 결코 놓아서는 안 되는 “기억해야 하는 감각”이다. 그래서인지 그의 시를 대하면 오랜만에 고향에 온 듯 마음이 “다 근지럽다”. 시집의 곤한 등을 다독이게 된다. 그의 이야기에 기대 누워 음─머, 순한 오늘을 꿈꿔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