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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부모란이, 그날처럼옴팡골산밑 집옴팡골에 산밑 집에저 꽃밭그래도 저 꽃밭붉은 실시인 한흑의 모(母)그윽한 밤에그림자놀이 하던 날은 가고고양이는 괜찮아해바라기씨 이야기제2부찔레 덤불 속나의 어린 신도라지 꽃밭으로용암사 해돋이봄달, 자목련장마수묵모란에게호랑지빠귀울고 가는 저 기러기제3부버들피리 꺾어 불던마루 밑에 살던 것들에게머나먼 골짜기피자두못골 큰집삼세번고들빼기 꽃이동기간에가시지 않는 비린내일 많이 한 손 1일 많이 한 손 2노제(路祭)2024 겨울, 못골꾸구리가 앉았던 데제4부소 등가죽의 떨림같이어디로 가는 배냐물 먹는 논믿을 만한 구석방하착(放下着)쇠죽 안칠 때능이가 나는 곳부부노이히 삼촌을 생각함 3신들의 황혼늦게 온 손님여이봄나들이 사진 속장날 3물멀미상봉(相逢)여울목제5부물까마귀여름은 어떻게 오는가옛 노래의 도랑 가에서기억해야 하는 감각바랭이와 쇠비름은소쩍새의 위장술두릅 순은 몇번 꺾나결대로스무고개밤눈 내리니작약무서운 기다림먼 훗날해설|김준현시인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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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하고 애틋한 언어로 되살려내는 지난날의 풍경진실한 마음이 깃든 선한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송진권의 시에는 자연의 정기와 사람의 온기가 서려 있다. 시인은 “시간의 적층으로 인해 납작하게 눌려 있는 말이 아니라 생생한 현장의 말과 현장의 감정”(해설)으로 “귀퉁이 깨진 호롱” “찢어진 털신” “귀뚜라미와 노래기와 지네 들” “숯검댕 묻은 몽당빗자루”(「마루 밑에 살던 것들에게」) 등 삶의 구석으로 밀려나 있는 존재들을 하나하나 불러낸다. 쉽게 스쳐 사라져간 이들에게 다정하게 안부를 물으며 이들의 내력과 “타고난 팔자”(「나의 어린 신」)의 ‘내림’을 꼼꼼히 새겨둔다. 그런가 하면 “안 죽으니께 살아지는 거”라며 “속에 태산 같은 짐을 쟁이구 사는”(「여이」) 물크러진 삶의 비애와 생의 덧없음을 때로는 슬픔을 담은 소리로, 때로는 해학적으로 전복하여 보여주기도 한다.시인에게 유년의 기억은 단지 추억이나 회상이 아니라 “앞서간 사람들이 앉았던 흔적을 더듬어보는 일”(「기억해야 하는 감각」)이다. 시인은 고향 사람들의 질박한 삶을 진솔하게 복원해낸다. 특히 “독사같이 바랭이같이 대가리 쳐들고 살아나 밥 빌고 쌀 빌어”(「시인 한흑의 모(母)」) 자식들을 키워온 부모들의 헌신과 평생을 일로 살아온 노동의 숭고함을 뭉클한 필치로 그려내는 시인은 “손톱이 으등그러지고 손에 풀물 들어 갈라지고/지문도 다 지워”진 어머니의 “일 많이 한 손”(「피자두」)과 “무녀리라고 손가락질당하”면서도 “궂은일 다 당신이 하시”던 아버지의 “마디마디 못이 배긴 그 손”이 단순한 노동의 도구가 아니라 “식구들 건사”(「일 많이 한 손 1」)하고 삶을 지켜온 강인한 생명력의 원천이었음을 되새긴다.“다시 또 어느 때 어느 곳으로 스밀지골똘히 생각하기도 하는 것이다”순환하는 계절처럼 이어지는 생의 돌림 노래표제작 「그림자놀이 하던 날은 가고」에서 알 수 있듯 이번 시집에 수록된 많은 시편이 ‘그림자놀이’가 끝난 이후, 생이 사라지고 난 자리를 그려내고 있지만 시인은 죽음이나 소멸을 단순히 슬퍼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순환의 과정으로 받아들인다. 그렇기에 “곰팡이가 피고/정지엔 녹슨 가마솥이 굴러”다니는 빈집의 쓸쓸한 정경은 “오늘사 올라나 내일이나 올라나”(「못골 큰집」) 누군가를 애틋하게 기다리는 재회의 장소로 거듭나고, 화단의 꽃들이 말라가는 곳에서도 “이팝꽃도 고봉으로 피워놓고/꾀꼬리 울음도 개울물 소리랑 잇대어놓고/살자고 살자고/여기서 그냥 살자고”(「그윽한 밤에」) 속삭이는 생명의 기척을 느끼는 것이다. 시인은 가뭇없이 생의 뒤편으로 사라져간 것들을 지금-여기의 삶 한가운데로 다시 불러들이며, “내가 어디만큼 떠내려와 있는지” “내가 벗어놓은 허물들이 다 어디로 흘러갔을지”(「머나먼 골짜기」) 골똘히 생각해본다.그러므로 ‘그림자놀이’의 시간은 가고 서늘한 현실이 당도해 있는 곳에서도 시인은 절망에 머물지 않고 다음을 그려낸다. 놀이는 끝났을지언정 “우리가 부르던 노래”(「그림자놀이 하던 날은 가고」)는 여전히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시인은 그 노래를 나침반 삼아 “옛날로 가는 지도”(「옛 노래의 도랑 가에서」)를 그려가며 “가도 가도 끝없는 행로(行路)”(「저 꽃밭」)를 묵묵히 걸어나간다. 가슴속에 쟁여둔 오래된 기억 속의 풍경들을 “아직도 잊지 않았다고” “아니 잊지 않으려고” “그래도 잊힐까 싶어서”(「물까마귀」) 시로 써나간다. 이처럼 모든 것이 사라진 자리에서도 다시 한번 꽃밭을 일궈내는 송진권의 시는 소멸 이후에도 결코 멈추지 않는 생의 끈질긴 맥박을 증명해 보이며 우리를 “여름꽃들이 화사하게”(「붉은 실」) 피고 있는 새로운 자리로 데려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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