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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당 칸은 없다
장철문
창비 2025.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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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제1부

악의에게

식당 칸은 없다
소를 보다
숲은 고요하지 않다
공양
우안거
한파주의보
네 얼굴과 그것에 대하여
물풍수 이야기
발을 닦으며
성지순례

제2부


임종
능선 너머
그 오뉴월 한나절
꾸지뽕 쓰레빠
석다
우동과 자전거
방울벌레 울음소리를 물었다
늦은 임종
통증에 대하여
그 생에도 보리똥나무가 있을까?
왜 많은 가지와 잎을 가졌을까?
발자국

제3부



잠긴 돌
호두나무 잎사귀가 있는 저녁
낙화 동백
봄 내
거기 지금
동백
서어나무에게 간다
곁에 없고
불어라, 바람
수련
연두 생각

제4부


놀다
용의 자취를 기록함
용이 알을 품을 때
불확실성 시대,라는 말을 들었다
나의 어여쁜 루어
산도라지밭에서
작은 미술관을 나오며

저자 소개1

1994년 『창작과비평』을 통해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시집 『바람의 서쪽』 『산벚나무의 저녁』 『무릎 위의 자작나무』 『비유의 바깥』, 동시집 『자꾸 건드리니까』, 포토포에지 『날개를 가진 자의 발자국』 등이 있으며 여러 어린이책을 펴냈다. 백석문학상, 서정시학상 등을 수상했으며 현재 순천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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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25년 10월 24일
쪽수, 무게, 크기
124쪽 | 176g | 125*200*7mm
ISBN13
9788936425234

책 속으로

네가 여기 있었구나
여기 피어 있었구나

떨고 있구나

괜찮아,
함께 있어줄게

마른 잎사귀 사이에 검은
뿌리를 두었구나

괜찮아,
부러뜨리지 않을게
돌아갈 때까지 함께 있을게

아주 작은 씨방을 가졌구나
겁먹은 내 심장을 닮았구나
--- 「악의에게」 중에서

맛은 일어나고 사라진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것처럼
맛은 사라진다
김밥이 차곡차곡 사라지는 것처럼
달다는 감각과
달다는 것을 아는 지각은 각기 일어나고 사라진다
지나간 사랑이 다시 오지 않는 것처럼
짜다는 것은 단무지 속에 있지 않다
혀 속에 있지 않다
기차의 첫째 칸과 둘째 칸과 셋째 칸이 서로 같지 않은 것처럼
첫째 맛과 둘째 맛과 셋째 맛이 각기 일어나고 사라져서 다시 오지 않는다
아버지가 다시 오지 않는 것처럼
맛은 없다
단무지와 혀 사이에서 일어나서 사라졌다
(…)
맛은 지나갔다
한번 일어난 맛은 다시 일어나지 않는다
다시 사라지지 않는다
여러 칸을 건너왔다
셋째 칸에서 일어나서 일곱째 칸의 지인을 만나러 왔다

KTX는 달리고, 식당 칸은 없다
--- 「식당 칸은 없다」 중에서

수행자들이 서 있다. 줄지어 공양간에 서 있다. 밥을 뜨려고 식판을 들고 서 있다. 밥과 국을 더는 소리를 들으며, 밥을 뜨고 씹는 소리를 들으며 서 있다.

(…)

수행자들이 마음을 가진 슬픔으로 와서 몸을 가진 슬픔으로 서 있다. 빛바랜 흑백사진처럼, 동작이 툭, 툭, 끊겨서 이어지는 옛날 활동사진처럼.

수행자들이 몸을 먹이려고 서 있다. 혼자 서 있다. 저마다 저에게서 혼자 서 있다. 흐릿하게 서 있다
--- 「공양」 중에서

어둠이 내려앉는 것을 보았네
가슴 한쪽이 내려앉듯이

도로에서 오는 소음은 하나도
건드리지 않고
어둠이 내려앉는 것을 보았네

수락할 수 없는 것을 수락하던
가슴처럼

(…)

벗어놓은 옷가지를 건드리지 않고
수락할 수 없는 것을 수락하는
연습처럼

툭, 어둠이 내려앉는 것을 보았네
--- 「발을 닦으며」 중에서

페달을 밟아서 우동을 먹으러 간다
마음이 허기를 수락하고
힘줄로 하여금 페달을 밟게 한다

(…)

구르는 바퀴의 속도를 돌이켜
페달을 거꾸로 돌리면
언제나 허기가 주인이었다

이 허기 때문에
들 너른 외가(外家)의 쌀밥이 눈에 선했고,
이 허기가 뒤늦게
낯선 도시의 공무원이 되게 했다

어머니는 출가하겠다는 아들을 뒤세워
삼겹살을 끊어다 구웠다
이거 묵고 그냥 살자,
어머니의 인중이 문풍지처럼 떨렸다
--- 「우동과 자전거」 중에서

방울 같은 걸 흔드는 건 아닐 거야
떠는 거지
자꾸 떨어서
떨림의 파문을 보내는 거지
운다는 게

슬픈 건 아닐 거야
운다는 건
떤다는 거
노래하는 것도
떠는 거지
(…)
사랑이라는 게
그게
어디 있는 건 아닐 거야
떨림의 파문을
주고
또 받는 거
그냥
떨림이 오고 가는 거
빈 거지
방울 같은 게 어디 있는 건 아닐 거야
--- 「방울벌레 울음소리를 물었다」 중에서

그립다는 말 참 하릴없는 말 그리고 또 그린다는 말 그리고 또 그리게 된다는 말 바위벽에 고래를 새기듯 동굴 벽에 검은 암소를 그리듯 긁고 파서 지울 수 없다는 말 아리아리 쓰리쓰리 아라리가 난다는 말 속절없는 말 놓아먹이는 말처럼 달리는 말 갈기를 날리며 치달리는 말 손 놓고 쳐다볼 수밖에는 없는 말 구릉을 가로질러 숲으로 들어가는 말 가지에 쓸리고 가시에 찔리는 말 헐떡이는 말 지쳐 함께 걸을 수밖에는 없는 말 몸짓마다 살랑이는 말 잎새마다 설레는 말 벗은 발처럼 늦춰지는 말 가만가만 숨결에 오는 말 바라볼 수밖에는 도리 없는 말 턱, 둔덕을 내려서는 말 고개를 수그려 몸을 내려놓는 말 그린다는 말 글이라는 말 참 하릴없는

--- 「말」 중에서

출판사 리뷰

“광목처럼 풀리는 새벽 강에 나가서
주낙을 걷어 오는 사내가 되고 싶은 날이 있었다”
묵묵한 시선과 쓰기로 이어지는 내면의 순례

장철문의 시는 격정적이지 않음에도 울림이 깊다. 그 울림은 일상의 미세한 틈을 묵묵히 들여다보는 시선에서 비롯된다. 그는 언제나 거창한 사건보다는 “페달을 밟아서 우동을 먹으러”(「우동과 자전거」) 가거나 “휴게소 뒷길이나 서성이”(「옥천사 가는 길」)는 소박한 여정 위에서 사색에 잠긴다. 본래 허름한 세속의 순간들이 곧 깨달음에 이를 수 있다고 믿기는 어렵다. 그럼에도 “궁핍과 피로 속”에서의 오랜 생활 끝에 뭇 존재들이 새기는 “어떤 형태와 색”(「작은 미술관을 나오며」)을 찾아 헤매는 과정은 시인의 고유한 수행이자 쓰기의 방식이 되었다. 그래서 그의 시에서 성(聖)과 속(俗)의 경계는 필연적으로 맞닿는다. 시인은 이제 안다. 깨달음과 욕망은 결국 한 몸의 그림자라는 것을. 붓다의 다비장을 찾은 순례길에서 “청년 둘이 벤치에 앉아서 스마트폰”으로 “야동을 돌려보”(「성지순례」)는 풍경을 담담히 적어두는 시선은 허기를 달래기 위해 들른 휴게소의 뒷길에서 빛바랜 동백을 망연히 바라보던 자신을 회고하는 일과 닮았다. 거룩함은 세속에 깃든다. 시인은 이제 수행자의 눈빛으로 주변을 바라본다.

“흰 치아를 드러낸 미소와
말소리만은
아직 진동을 멈추지 않고 있다”


삶과 죽음, 탄생과 소멸을 대하는 시인의 태도 역시 그 연장선에 있다. “햇살은 거기 있으나 등짝의 따스움은/벌써 가고없는” 세계를 그리면서도 시인은 “아무려나/좋다!”(「불확실성 시대,라는 말을 들었다」)라고 말하면서 사라짐을 슬퍼하기보다 사라지는 순간의 온기를 붙잡는다. “땅에 붙박인 나무”들이 “필사적으로 가지를 뻗고 잎사귀를 넓”(「숲은 고요하지 않다」)혀가는 생명의 안간힘을 목도하면서 상실과 이별은 삶의 끝이 아니라 또다른 시작임을 새로이 직감하기도 한다. 그는 죽음 이후에 무엇이 있는가에 천착하지 않는다. 다만 이생을 함께한 이의 “보리똥나무 가지를 흔들던/자디잔 웃음소리”를 “아껴 먹는 생의 식량”(「그 생에도 보리똥나무가 있을까?」)으로 삼을 뿐이다. 상실과 결핍의 고통을 견디며 삶의 가능성을 찾아가는 이 과정을 시인은 ‘슬픔’과 ‘사랑’이 하나로 엮이고 섞이는 “떨림의 파문”(「방울벌레 울음소리를 물었다」)이라 이른다. 결핍 속에서 충만을, 소멸 속에서 생성을 길어 올리며 그가 기록하는 것은 탄생하고 사라지는 존재의 순환 속에서 끊임없이 재생되는 생의 숨결이다.

시인은 빛바랜 흑백사진을 들추듯 아득한 기억 속 정경을 ‘지금-여기’의 풍경으로 되살려내기도 한다. 평생을 “허기가 시켜서” 떠돌던 시인의 삶 위로, “출가하겠다는 아들을 뒤세워/삼겹살을 끊어다 구”(「우동과 자전거」)워 주던 어머니의 다정한 목소리와 “임종도 없이”(「늦은 임종」) 보내야 했던 할머니의 쓸쓸한 얼굴이 포개진다. 이제 어머니도 할머니도 세상에 없고, 시인은 “어머니의 본관과 이름이 박힌/섬돌”에 “꾸지뽕 쓰레빠나 두어켤레 던져두”(「꾸지뽕 쓰레빠」)는 것으로 그리움을 대신하고, “콧물에 눈물을 섞어서” 할머니의 “늦은 임종”(「늦은 임종」)을 지켜본다. 장철문에게 시란 이렇듯 부재의 자리를 비워둔 채 그 안에 남은 온기를 더듬는 일이자 사라진 이들의 숨결을 다시 불러내는 언어의 형식이다.

“소실된 길 끝에 길을 놓아서”
새로이 내딛는 걸음


“늘 길에서 비껴”(「옥천사 가는 길」)나던 고단한 삶 속에서 “두려운 도시의 거리와/여러 직장과/해안과 오래된 골목”(「능선 너머」)을 오가는 동안 시인은 막다른 곳에 다다르거나 길을 잃기도 했다. 그러나 시인은 이제 비로소 “소실점을 향해 가”(「작은 미술관을 나오며」)던 길 위에서 “순간의 생과 지나간 생과 다가올 생”이 서로를 향해 자유롭게 “유영하고 뒤척이는”(「용이 알을 품을 때」) 새로운 길을 독자들 앞에 열어두었다. 그 길을 묵묵히 걸으며 시인은 “가만가만 숨결에 오는 말”(「말」)을 받아 안아 “써야 할 시”(「숲은 고요하지 않다」)를 오래오래 써나갈 것이다. “아직 시인이라는 것”(시인의 말)에 감사하며.

시인의 말

아직 시인이라는 것이 고맙다.

2025년 10월
장철문

추천평

시는 구도인가, 시는 윤회인가, 시는 아무것도 아닌가. ‘슬픔을 가진 몸’으로 앉아 ‘슬픔을 가진 마음’으로 물었다. 시인은 길 없이도 갔다 길 없이도 왔다. 부처가 열반에 들었다는 성지 쿠시나가르가 “친구끼리 야동을 돌려보고” “가족이 둘러앉아 수건돌리기를 하는” 근린공원임을 발견하고 왔다. 성(聖)과 속(俗)이 한통속임을 보고 왔다. “출가하겠다는 아들”에게 “삼겹살을 끊어다” 구워주며 “이거 묵고 그냥 살자”고 하시던 어머니에게로 돌아오듯 그냥 왔다. 누군가에게는 성지인 곳이 누군가에는 근린공원이 되기도 하는 ‘엔가레 세로’ 같은 시간을 발견하고 돌아왔다. “전북여객을 타고 나와서” 속세를 떠돌면서도 시인이 알처럼 품고 다니던 할머니 같고 어머니 같은 순하고 정하고 순정한 시를 들고 왔다. 참 좋다! 시는 알인가, 시는 허기인가, 시는 “검은 잎을 붙들고 새잎을 발행하지 못하고” 있는 서어나무의 죽음까지도 품은 채 빗소리를 발행하고 있는 숲인가. 시인에게 물어도 답은 하나도 없거나 아주 많거나 하겠으나 누군가 내게 부처의 미소를 본 적 있느냐 묻는다면, 흰 이를 가지런히 드러내며 환하게 웃는 시인의 미소와 시인의 시가 그와 같다고 하겠다. - 안현미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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