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길순의 시 쓰기는 뱀의 식사와 같다. 그래서 그는 “벌릴 수도/다물 수도 없는 입을/커다란 황소개구리가 틀어막고 있다”(「처서」)고 쓴다. 그에게 쓰기는 삼키기이다. 그는 ‘구례에서 오는 당숙’을 삼키고 “스무발이나 서른발쯤/총소리”(「구례」)를 삼키고, “오이 농사를 짓는 동호씨”를 삼키고 그가 몰고 오는 “검은 소나기”(「낮 동안의 일」)를 삼키고, “사람이 사람을/자동차가 자동차를”(「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덮치고 짓이기는 오늘의 삶을 삼킨다. 그의 식탐은 겨울 채비를 하는 뱀의 그것과 다르지 않다. 그래서 그의 쓰기는 삭이기이다. 그는 한낮의 풀밭에 무방비로 엎드려 그 삼킨 것들을 삭인다. 어불성설, 그것은, 무모하게도, 그 검고 또 검은 것들을 땅굴처럼 검은 배 속에 품기이다.
소화와 배태가 착종된 그의 쓰기는 “폭포에서 쏟아지는 물을 맞으며/엄마와 나는 발가벗고 기다랗게 누워” “발을 맞대고 한 몸이 되기 위해 태어난 사람처럼/그렇게 누워”(「보아뱀과 오후」)에서 보듯 타자와 자기를 감고 한 몸으로 낳으려 한다. 그래서 그의 쓰기는 낳기이다. 그는 “검은 짐승의 눈빛과 마주칠 때”에 대하여 쓰지만, 정작 그가 마주한 눈빛은 그가 삼킨 타자의 것이면서 동시에 그것을 삼킨 자기의 것이다. 그래서 그는 “얼마나 많은 몸들이 내 몸을 다녀갔는지/어디를 쏘다니다 돌아온 것처럼” “잠 속으로/잠 속으로/잠 속으로//어느새 나는 아이를 낳고 누워 있다”(「검은 짐승의 눈빛과 마주칠 때」)고 쓴다. “수많은 검을 꽂은 듯” 팽팽한 고요를 품고, “죽은 세상, 목숨을 걸고”(「오늘의 갈대」) 저를 쓰고 있는 것이다. 우리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