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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부 사라진 흰 천 대신에루꼴라 재배 일기아기 돌보기내가 사랑하는 얼룩말사랑과 희망이 넘치는지구적인 면모빈 잔무심코 발견되는마음 오르기가장 먼 곳말하는 희망우리에게는 천사가 필요하다제2부 나 여기 있어!동생을 줍는다비밀 친구무엇이든 졸업하고 싶어하는 여학생목마나의 과외 선생님친구의 애인의 애인의 애인의……저녁 식사 모임잡을 수 없는 것메이드 김양단지 1인실만큼의 엔딩어딘가 익숙하고 아무것도 아닌반복적 아웃멀쩡히 서 있는 것이 없도록 한다제3부 내 친구가 묻힌 곳을 알고 있다두나모르는 나라늙은이로 보내는 밤정오의 구분이 여름의 설계도고양이 왈츠의 초월성개들이 있는 호수저녁이 없는 식탁날씨는 기운다눈 감기티백 위의 남자곧 도착한대서커스제4부 지구의 중심은 조용하다천사와의 드라이브홀로그램 되기사막의 투어 가이드사람 같지 않은 슬픔찾을 수 없는 것전혀 알지 못하는 사람의 소식어떻게 생겼나요?자꾸만 불이 붙는다해부 시간잘 모르는 친구재탄생해설|최다영시인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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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희의 다른 상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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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에도 뼈가 있다는 것이 믿어지니?”상처마저 끌어안고 성장케 하는 목소리김상희의 시에서 눈에 띄는 것은 바로 마음의 상처가 자라는 풍경이다. “마음에도 뼈가 있다는 것이 믿어지니?”(「마음 오르기」)라는 물음은 시집 전체를 관통하는 질문처럼 읽힌다. 시인에게 마음은 추상적인 관념이 아니라 늙고 병들고 상처 입으며 자라는 존재이다.부드러운 털을 가진 짐승이 발목을 스치며 지나간다 어느 날은 참지 못하고 안아버렸지 집으로 데려와 따뜻한 물을 건넸다 짐승은 빠르게 자랐다 이빨이 쑥쑥 나고 다리가 길어지고 맘마 맘마 엄마 엄마 발음할 줄 알게 되고 웃기도 하고 울기도 하고 화를 내고 이내 슬픔을 가지게 되고 (…) 나는 아주 먼 곳까지 걸었다 부드러운 털을 가진 짐승이 발목을 스치며 지나간다 나의 사랑스러운 짐승인가 내가 도려낸 바로 그 짐승인가―「가장 먼 곳」 부분내가 키우고 “내가 도려낸 바로 그 짐승”은 상처받은 마음 자체를 나타낸다. 그 마음이 자라는 시간을 함께한 자리에서 그것이 사랑인지 상실인지는 끝내 판가름 나지 않지만, 시인에게 있어 그것은 성장과 다름이 없다. 그러니 성장이란 상처를 극복하거나 외면하는 것이 아니라, 그 미해결의 무게를 지닌 채로도 계속 나아가는 일인 셈이다. “사람을 사랑하게 되었어”(「마음 오르기」)라는 고백과 “의미를 잃어버린 채로도 의미가 있을 때”(「재탄생」)라는 구절은 각각 사랑과 상실이라는 상반된 얼굴을 하고 있지만, 그 둘 다 정해지지 않은 채로 끌어안고 걸어가는 시간이라는 점에서 다르지 않다. 시인이 말하는 성장이란 바로 그렇게, 사랑인지 상실인지 끝내 알 수 없는 채로도 계속되는 시간의 다른 이름일 것이다.“두나는 거기서부터 시작된다”이름을 놓치는 자리에서 태어나는 이름김상희의 시선은 늘 세상의 중심보다는 “밟혀 죽을 것 같은 작은 것들”(「말하는 희망」)이 있는 가장자리를 향한다. 그의 눈길이 닿는 곳에는 “서글플 만큼 어린 소녀가 모퉁이를 돌아 달려오는” 풍경이 있고, “그저 지나갈 뿐”(「지구적인 면모」)인 무력한 존재들이 서 있다. 그는 그 모서리 너머로 사라지는 이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무심하게 흘러가는 비정한 현실을 직시하며 어디선가 외롭게 죽어가고 있을 “모르는 사람의 이름”(「전혀 알지 못하는 사람의 소식」)을 불러보고, “그의 이름을 몰라도 그를 애도할 수 있다”(「티백 위의 남자」)고 되뇌며 스스로 그 이름의 자리를 대신 지키고자 한다. 그러나 이름을 불러 누군가의 자리를 지켜주는 일과, 이름으로 그를 어떤 틀 안에 가두는 일은 어쩌면 한끗 차이인지도 모른다. 그 위태로운 경계를 표제작 「두나」는 정면으로 파고든다.인간이 되자, 인간이 되자, 두나에게 말하면 두나는 금세 투명해진다. 참을 수 없다는 듯 닦여버린다. 지워져버린다. (…) 내가 두나를 불러서 두나는 두나가 된 것인데 내가 두나를 부르지 않으면 두나는 두나보다 더 멀리 갈 수 있을 것 같은데. 두나의 어깨를 붙잡는다. 새로운 종과 처음 닿는 것처럼 깜짝 놀라 두나를 본다. 나는 두나를 놓친다. 두나는 더 멀리 간다. 두나 없는 두나가 고개를 든다. 두나는 거기서부터 시작된다.―「두나」 부분화자는 청소 로봇인 두나에게 “인간이 되자, 인간이 되자” 말을 걸지만 두나는 인간에 가까워지기는커녕 투명해지고 지워질 뿐이다. “내가 두나를 불러서 두나는 두나가” 되었듯 이름을 준다는 것은 곧 존재를 그 자체로 존중하지 않고 어떤 틀 안에 붙들어두는 일이기도 한 것이다. 그래서 화자가 끝내 두나를 놓치는 순간, “두나 없는 두나가 고개를” 들고 “두나는 거기서부터 시작된다”. 이는 화자와 두나를 이어주던 이름이 끊어지는 순간이자, 그 이름 위에 세워져 있던 관계와 세계가 함께 무너지는 순간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 자리에 남는 것은 폐허만이 아니다. 이름이 지워진 뒤에야 비로소 고개를 드는 “두나 없는 두나”처럼, 무너짐은 이름 너머의 존재가 처음으로 스스로 나타나는 자리이기도 하다. 상처 입은 채로도 자라나는 마음처럼, 누군가 지어준 이름과 역할을 벗어난 자리에서, 관계가 끊어지고 세계가 무너지는 바로 그 자리에서 진짜 이야기는 시작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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