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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
들어서며 1 저마다의 삶이 각자의 마음을 앓고 있을 때 침묵 만남 천변에서 가만히, 중간 야간 진료 장마가 사람을 지나가는 이유 옛날 노래는 다 잊었지만 푸르지 않아도 우리들은 자란다 슬픔이 지나간 자리 어려운 부탁 젊음과 늙음 인터뷰 섬 2 돌덩이를 쪼개는 식물의 뿌리처럼 상계동─그의 전부 한겨울 밤의 꿈 사월에 꽃이 지면 사랑이 아니라 말하지 말아요 우리의 빙하가 녹는다는 것 봄날의 개를 좋아하세요? 마지막 역할 2019년 12월 29일 서로의 냄비를 끌고서 그 겨울의 해프닝 연애편지─은지에게 우리는 모두 한번쯤 상계동에 살았겠지요 3 무의 투명함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인간이라는 것 조금씩, 아주 조금씩 손목 미옥 누나에게 껴안는 모습 노동이라는 형벌 나는 여기서 내리지 않는다 나는 너를 원해Je Te Veux 공평한 날씨는 없다는 것 하얀 곰돌이 자폭 지금부터는 다짐 일요일 가장 깨끗한 절망 저린 어깨 2021년 5월 31일 나가면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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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붉어지는 감을 보고 있으면 지난여름의 멍울이 쌀쌀한 허공에 맺힌 듯 보이기도 한다. 감과 마찬가지로 봄에 꽃이 피면 나는 내내 울적해진다. 남들 꽃놀이 갈 때 집에 틀어박혀 이불을 뒤집어쓰고 있는 사람이 나다. 이런 기질을 줄곧 천형처럼 여기며 살았다. 가라앉은 삶을 드러내는 일이 과연 누군가에게 쓸모 있는 일이 될 수 있을까. 그런 확신은 시인으로 호명된 후로도 내내 한 번도 가진 적이 없다.
--- p.4 복종은 누군가 나의 무릎을 꺾는 일이고 순종은 스스로 무릎을 꿇는 일이다. 내가 말할 수 있는 건 나의 우여곡절뿐이고 이 책을 읽는 당신에게는 당신의 우여곡절이 있겠다. 그렇게 만들어진 나의 아름다움과 너의 아름다움이 다를지언정, 너의 무릎이 꺾일 때 나는 언제까지고 옆에서 함께 꿇는 무릎이고자 한다. 그게 내가 세상에서 할 줄 아는 유일한 작법이고 다른 방식의 사랑이 아직 생각나지 않는다. --- p.7 잘 만들어진 행복에는 시간이 흘린 피들이 묻어 있었다. 그 피들을 마른 헝겊으로 닦고 싶었다. 간혹 반들반들하게 닦인 기억에는 우스꽝스럽게 구부러진 내 얼굴이 다시 묻었다. 내가 당신들에게 악몽이 아니었기를. 내게 당신들이 결국 불행이 아니었음을 이제는 알 것 같으므로. 이 글을 적는 오늘 밤은 갑작스런 겨울이 왔다. 본가에 두고 온 두꺼운 외투들이 생각났다. 내일 나는 조금 떨면서, 다정했던 어깨들을 만날지 모르겠다. 앞으로는 아름답지 않아도, 괜찮을 것 같다. --- p.17 물이 차분했고 길이 순했다. 개천을 따라 오리들이 높게 날았다. 보랏빛 저녁이 오고 있었다. 천변을 따라 늘어선 술집에서부터 고소하거나 달큼한 냄새가 따라오기도 해서 차고 투명한 소주 생각이 들었다. 문득 익숙한 길에 접어들기 전까지는. 아, 여기는. 하고 싶은 말을 하고 싶은 만큼, 살고 싶은 대로 살고 싶은 만큼. 그렇게 살아보려고 나는 너무 많이 돌아다녔던 건 아닐까. 남에게 손 벌리는 일은 또 죽기만큼 싫어서 괜찮은 표정을 연습해가며 숨어 다니고는 했지만. 하는 수 없이 울어야 끝날 것 같은 일이 생길 때는 물가에서 울었다. --- p.19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과, 자신을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 그 중간에 있을 수는 없을까. 자의식 과잉과 자의식 결핍의 어느 부분에서 우리는 늘 흔들리며 사는 것 같다. 집 안의 불을 어둡게 해두고 벽에 비치는 그림자를 볼 때 면, 사물의 고요함을 배우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흔들리지 않는 편안함 같은 것. 끝내 자꾸 흔들리느라, 어떤 감 정은 구토처럼 쏟아진다. --- p.22 소란스럽고 외로운 ‘나’는 이제 ‘우리’를 숨겨진 주어로 하는 시들을 생각합니다. 기어코 허름한 열망이겠지만, 시가 바로 자유의 내피라는 누군가의 말을 믿는다면, 나는 함께 살아볼 수도 있을 겁니다. 사람과 생활과 어쩌면 죽음까지도. 그러기 위한 무언가를 해보려고 합니다. 왜 그걸 하냐는 질문엔 아직도 적절한 대답을 찾지 못했습니다. 다만, 쓰는 날들과 쓰지 못하는 날들이 있을 겁니다. 그것을 이제 압니다. 영원히 없는 대답을 끝내 찾으려 헤매다가 끝날 수도 있겠지만, 이제는 괜찮습니다. 용기의 일일 것입니다. --- p.58 사람이 기억을 견디지 못하는 게 아니라, 기억이 사람을 견디지 못하기도 한다. 마음은 문과 문틀 사이에 달린 경첩 같은 것이어서, 어떤 기억은 사람을 뛰쳐나가며 마음을 밀어 접는다. 나는 그 과정을 슬픔이라고 부르지만, 슬픔을 통해서만 알 수 있는 어떤 진실이 있을 것이다. 올해 사월은 아무리 만져도 사라지지 않는 모래 위에 비친 예쁜 달그림자거나, 서쪽 하늘로 지며 동쪽에서부터 빛을 불러오는 사월이 되었으면 좋겠다. 결국, 살아 있는 모두에게 말이다. --- p.83~84 소소하고 확실하다는 건 얼마나 강력한가. 약속도 일정도 없이 휴대폰을 무음으로 만들고 누워 맨살로 느끼는 여름의 홑이불과 겨울의 솜이불이 주는 감촉. 찻잔 속의 티백 위로 뜨거운 물을 조금씩 흘리면서 물감처럼 번지는 차의 빛깔을 보는 건. 일주일의 옷들을 전부 넣고 세제보다 섬유유연제를 가득 붓고 티셔츠와 수건과 양말과 속옷들이 비눗물 속을 돌아다니는 걸 쳐다보며 세탁기 앞에 쪼그려 앉는 시간, 세계의 북적거림이 내게 올 수 없고 나도 그 어떤 세상이 필요하지 않은, 아주 사소하고 견고한 순간이란 건. --- p.160 나는 꽤 많은 시간을 허투루 쓰곤 했지만, 그래도 하고 싶거나 해야 하는 일을 많이 건너뛰지 않고 살아온 것 같은데. 어쩐지 오늘은 그 모든 시간이 나를 겨우 반 발짝 정도만 앞으로 가게 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수많은 타인과의 비교가 결국 자신을 비참하게 하는 일이겠지만, 그늘인 줄 알고 쉬려던 곳이 누군가의 그림자 밑이라는 걸 알았을 때는 섬뜩함을 느끼고 다시 자리를 털고 일어났습니다. 자신에게 칭찬보다 비난의 입술을 가지는 게 더욱 쉽습니다. 그런데 나는 어디로 가려고 했던 걸까요. --- p.174 어쩌면 희망을 만들고 희망으로 지탱해야 한다는 믿음이 사실은 너무 아프고 강압적인 착각은 아니었을까. 깎고 자르고 뽑아서 조립해놓은 희망이 우리를 데려갈 곳은 결국 아무 데도 없는 건 아닐까. 발생하지 않는 희망을 길고 어둡게 끝까지 기다리며, 내가 다만 할 수 있는 일은 지금 없는 희망이 아니라 눈앞에 놓인 너의 견고한 고통에 참여하는 일은 아니었을까. 희망이 아닌 고통에 순종하는 방법. 그날의 우리는 서로를 연주하는 방법을 모르고 지나가버렸는지 모른다. --- p.187 사랑의 자세를 가지고 세상과 모두에게 화평하여지자고 말하는 건 너무나 허무하고 맹랑한 생각이라는 걸 안다. 철없고 우습다. 우리는 각자 하나의 우주고, 섞일 수 없는 고유의 세계다. 그러나 언젠가 한 번쯤은 각자의 극장 속에서 상대의 무게를 조금 지탱해주는 저린 어깨가 될 수는 없을까. 잠시나마 섞이지 않는 서로의 우주를 포개면서 살아갈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런 사랑을 감히 요청하고 싶은 날들이 지나고 있었다. --- p.22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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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마다의 삶이 각자의 마음을 앓고 있을 때,
작은 통증들이 모여 만든 도시가 매일 밤 빛으로 욱신거린다” 슬픔과 불행의 섬세한 탐색자가 써내려간 환희와 안도의 문장들 이 책의 제목인 『나의 아름다움과 너의 아름다움이 다를지언정』에는 많은 의미가 있다. 하나는 사랑하는 연인을 위한 마음, 또 하나는 세상에서 ‘나와 너의 우열을 가리려는 자’들을 향한 날카로운 비판, 그리고 마지막으로 세상의 소외된 자들의 눅진한 슬픔의 기억을 그러모아 조금이라도 고통을 나누고픈 시인의 노력. 시인은 이 책의 첫 번째 장에서 ‘자신을 사랑하지 못해’ 오는 고통을 이야기한다. 불광천 천변을 따라 걷다가 죽음이 만든 가상의 형체와 싸우기도 하고, 한없이 함께 웃고 기억을 떼어 나누던 사람에게 배신을 당해 야간 진료실에 갈 정도로 몸이 아프기도 한다. 장마가 지나가는 어느 새벽에는 사랑하는 이를 잊기 위해 도저히 걸어서는 갈 수 없는 집까지 폭우를 끌어안고 걸으며 물에 젖은 자신의 신발을 벗어던진다. 떠나보낸 이가 남긴 감자조림을 집어먹으며 몰래 울음을 터뜨리기도 하고, 아버지를 상실해 비어버린 사촌동생의 마음의 공간을 함께 메우며 그와 아이스크림을 나누기도 한다. 인간은 어쩌면 불행과 슬픔을 위해 태어난 존재들일지도 모른다. 어떤 이는 자신의 곤궁함을 피하기 위해 또 다른 곤궁함으로 투신하는 식으로 삶을 애처롭게 이어나가고 있을지도 모른다. 시인은 그렇게 자신을 고통 속에 몰아넣는 방식으로 세상의 슬픔을 간직해왔지만 끝내 그 사나운 시간이 지나가고 나면 누군가와 함께 앉을 수 있는 빈자리가 생긴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리고 어쩌면 영원히 없는 대답을 찾으려 헤매다가 끝날 수도 있겠지만 이제는 괜찮다고, 용기의 일일 것이라며 그의 내면의 단단함을 이 책에서 보여준다. “시간은 상실로 비어버린 마음의 공간을 덮어 감추기도 하지만, 어떤 상실은 끝내 살아가면서 계속해서 구멍이 나기도 한다. 마치 도로 위의 싱크홀처럼. 행복의 문제도, 불행의 문제도 아니다. 사람이 타고 태어나는 성격의 건강함도 문제가 아니다. 슬픔을 이해받지 못하는 자들은 세상을 사납게 살아간다. 슬픔은 사람에게 그런 식으로 자국을 남기기도 하니까. 다만, 사나운 시간이 지나가고 나면, 그 빈자리에 누군가와 함께 앉을 수 있는 의자가 놓이기도 한다. 조용히 누군가와 앉아서 아이스크림 하나라도 나눠 먹을 수 있는 그 자리가.”_46~47쪽 “어떤 불행은 돌덩이를 쪼개는 식물의 뿌리처럼 시간을 따라 천천히, 사람의 마음을 쪼갠다” 타자의 가냘픈 고통을 껴안으며 자신의 무릎을 내어주는 예술가의 삶 시인은 표현하지 않고서는 도저히 버틸 수 없는 이 사회의 고통을 두 번째 장에서 미메시스적으로 풀어나간다. 그 시작은 시인에게 늘 복합적인 감정을 안겼던 아버지로부터였다. 온전치 못한 가정에서 태어나 할머니의 손에서 자란 아버지, 연탄불을 갈다 한쪽 눈을 잃어버려 생애 내내 차별당하며 억울한 삶을 살아왔던 그. 시인은 수도 없이 아버지를 미워하고 불쌍해했지만 자신의 슬픔을 삼키느라 모두를 슬프게 했던 그를 보며 자신은 절대 그러지 않을 것이라 다짐했다. 그래서인지 시인의 글에 담긴 절망과 슬픔은 늘 내면을 향한 슬픔이 아니라 밖을 향한 슬픔으로 돋아나 있다. 시인은 ‘상계동’이라는 그늘진 공간에서 유년시절을 보냈을 때의 이야기를 하기도 하고, 이따금 말을 걸어오던 ‘일진’ 친구가 어느 날 오토바이 사고로 죽었음에도 쉬쉬했던 학교의 분위기를 떠올리며 현재까지 복잡 미묘한 감정에 빠지기도 한다. 『이방인』의 주인공 뫼르소를 떠올릴 때면 고 변희수 하사를 끝내 외면했던 세상에서 “나 역시도 당신의 아픈 세상의 일부여서 정말 미안하다”며 고통스러워하고, 꽃 피는 ‘4월’을 떠올릴 때면 세월호 사건과 제주 4·3항쟁, 4·19혁명 등 시대와 사람에게 많은 비극을 안긴 ‘사월死月’에서 벗어나, 살아 있는 모두에게 모래 위에 비친 예쁜 달그림자인 ‘사월沙月’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소망한다. 겨울의 자선냄비 앞에서는 큰 냄비에 노끈을 달아 어린아이들을 태워 다니는 시리아 난민이 떠올라 아파한다. 그렇게 시인은 예술가로서의 인식을 게을리하지 않으며, 언어 속에 자기를 내던져 단순한 유희나 자의적인 것이 아닌 ‘추함의 메타포’를 담은 글을 통해 고통에 정면으로 맞선다. 세상에 ‘복종’하기보다 제 스스로 ‘순종’하며 타인이 꿇는 무릎 옆에 자신의 무릎을 내어주며 함께하는 방식으로 삶을 이해하고자 한다. “아무리 가려서 감춘다고 할지라도 우리는 상처받기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 가끔, 삶에 시간을 덧발라서 우리는 스스로를 속이기도 하겠지만, 나와 당신의 행복은 어쩌면 이미 세상에 없는 희망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니까 삶이 우리에게 형벌이라고, 무너지고 부서지고 가끔은 주저앉아 울면서 허물어져도 괜찮겠다. 그럼에도 다음, 다 음으로. 눈물을 닦아주듯 서로의 표정을 가만히 매만질 수 있는 시간들이 있다면. 그렇다면 우리는 회복하고 있다고 믿어도 좋겠다.”_179쪽 “보글보글 끓는 냄비의 무가 투명해지기를 기다리는 이유는 그걸 주고 싶은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나와 네가 그토록 하나뿐이어서 애틋하게 살았으면 좋겠다” 가장 깨끗한 애정의 소네트, 사소하고 견고한 순간의 기록 이 책은 시인이 사랑하는 연인에게 바치는 ‘가장 깨끗한 애정의 소네트’이기도 하다. 시인은 옆에서 돌아누워 잠든 연인의 뒤통수에 코를 박고 샴푸 냄새를 맡으며 “지금의 나와 너는, 온전한 나와 너의 오리지널”이기에 “대체 불가능한 고유의 너와 내가 그토록 하나뿐이어서 애틋하게 살았으면 좋겠다”고 고백한다. 절망과 고통의 생의 한가운데에서 “이 익숙한 샴푸 냄새 같은 단순한 진실이 인류의 모든 역사보다도 더욱 확실하고 안전하다”고 느낀다. 그리고 이 마음도, 인간이기에 가능한 것인지 되묻는다. 아무 약속도 일정도 없이 휴대폰을 무음으로 하고 누워서 맨살로 느끼는 여름의 홑이불과 겨울의 솜이불이 주는 감촉, 찻잔 속의 티백 위로 뜨거운 물을 조금씩 떨어뜨릴 때 물감처럼 번지는 차의 빛깔, 일주일의 옷들을 전부 넣고 세제보다 섬유유연제를 가득 붓고 티셔츠와 수건과 양말과 속옷들이 비눗물 속을 돌아다니는 걸 쳐다보며 세탁기 앞에 쪼그려 앉는 시간. 시인은 이처럼 소란한 세계 속에서 눈물을 닦아주듯 서로의 표정을 매만질 수 있는 시간이 있다면 우리는 잠시나마 회복해 도달할 수 있는 세계가 있을 것이라고 다정한 말을 건넨다. “사랑의 자세를 가지고 세상과 모두에게 화평하여지자고 말하는 건 너무나 허무하고 맹랑한 생각이라는 걸 안다. 철없고 우습다. 우리는 각자 하나의 우주고, 섞일 수 없는 고유의 세계다. 그러나 언젠가 한 번쯤은 각자의 극장 속에서 상대의 무게를 조금 지탱해주는 저린 어깨가 될 수는 없을까. 잠시나마 섞이지 않는 서로의 우주를 포개면서 살아갈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런 사랑을 감히 요청하고 싶은 날들이 지나고 있었다.”_220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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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현우 시인이 이렇듯 불행과 슬픔에 대한 섬세한 탐색자라는 사실을 이전에는 몰랐다. 장마로 물이 “살찐” 홍제천을 걷고, 밤의 한강에서 신성처럼 아끼던 책들을 하나씩 버리며, “자신의 슬픔을 삼키느라 모두를 슬프게 하지 않으려는” 시인의 사납지 않고 소란스럽지 않은 걸음걸음. 그가 지시하는 세상에서도 “돌덩이를 쪼개는 식물의 뿌리처럼” 마음을 부서뜨리는 통증은 계속된다. 하지만 결국 엄마에게 발견되지 못해 무용이 되어버린 유서를 써본 아이가 불행에 대해 속 깊게 헤아릴 때, 스스로 허술한 목줄을 끊고 위험한 차도를 건너 따라와 마침내 가족이 된 유기견 코코와 그가 거실 창문을 열고 쪼그려 앉아 봄 냄새를 맡고 있을 때, 우리는 기꺼이 믿게 된다. 단단한 슬픔에 대한 대처는 무엇을 하는 것이 아니라 차라리 하지 못하는 것이고, 그 용기 없고 우유부단한 머뭇거림 덕분에 어쩌면 불행은 하나의 해프닝이 된다는 사실을. 그러니 “온통 상처로 채운 영혼을 끌고서라도” 사랑해준 이에게 기어코 돌아가자는 이 신중한 탐색자의 제안을, 내가 눈물을 참으며 읽어낸 이 환희와 안도의 문장들을, 모든 사람들이 선물처럼 받아 안을 수 있기를 기쁜 마음으로 빈다. - 김금희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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