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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부유서산그늘이 다가온다자연의 손바닥햇살이 뿌려지는 한낮평평하다변신술가만히 바라보고 있으니연록의 시절별 볼 일 없는 데만 가게 된다비린내나는 자신을 꽁꽁 감싸고 있는 당신이 답답하다장수풍뎅이는 나를 닮았다해변에 낚싯대를 걸고무거운 옷을 입고 산다가끔은 나도 정신을 어딘가에 놓아둔 채 살고 싶다나의 돌이가 없는 사람제2부꽃향기 날리는 밤에이름비웃음을 사다할 일 많은 사람들독사가 팔짝 뛰었다봄은 백 미터 달리기 출발선에 있다가벼운 고독어둠의 새와 놀다늦봄나의 집아내의 큰일파도는 바위를 치며 묻는다그날의 학교평화의 얼굴통학 버스는 오후 4시에 학교에서 출발한다제3부창밖이 멀다7월여행 좀 다녀오라고?옥수수가 익어가는 여름솜사탕좋은 일새끼를 물리치다조용히 살다 조용히 갔다꼽등이를 먹었으면 꼽등이가 됐을까?꼭 의미가 있어야만 사는가내 집 앞 도랑물은 졸졸졸졸 흐른다은은한 달빛을 받으며 서 있었다뒷다리가 하나 없던 어린 고양이가 어미를 따라 형제들과 함께 세상으로 나갔다가 홀로 돌아와 죽었다봄비 소리내가 바라보며 사는 소백산맥의 북면은 겨울 내내 하얀 얼굴이다햇빛은 아무 데나 비춘다제4부2023, 맑은 봄날이었다눈물암병동 가는 길죽음을 기다리다하늘도 단풍으로 물드는가단풍잎이 바람에 떨어져 산등성이 너머로 날아간다땅뽕나무 아래를 지날 때굴국은 공평하게 먹어야나는 누워 있는데갓난아기 손만 한 함박눈이 내리는 모습을바라본다오랜만에어이하랴얼굴울음소리발문|고형렬시인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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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나 아닌 것의 경계가 있는가?나는 이 물음에 대해 답을 얻지 못했다”자연의 일부라는 생생한 실감시인이 지향하는 세계는 인간과 자연의 위계가 사라진 '평평한' 공간이다. 그에게 인간은 만물의 영장으로서 자연 위에 군림하는 주인이 아니라, “너도 나도 자연이란 몸의 세포 하나하나”로서 “자연의 손바닥 안”(「자연의 손바닥」)에 깃들어 사는 미미한 존재일 뿐이다. 그런 자연은 포용이나 배제의 의도 없이 “아무 곳으로나”(「햇빛은 아무 데나 비춘다」) 향하는 햇빛과 같다. 시인이 자연 생명들과 맺는 관계 역시 사람들과 맺는 관계와 마찬가지로 더 중요하거나 덜 중요한 구석이 없다. 그는 그 자체로 인간 중심적 세계관을 넘어 뭇 존재들 사이의 경계를 자유롭게 허무는 방향으로 나아간다. 인간의 오만함과 가식을 꼬집고, 생활을 위해 살생을 저지르는 자신마저 있는 그대로 서술한다. 때로는 “좀 사귀어보자”고 하는 밤 부엉이의 유쾌한 울음소리에도 “그런 맘 없다”(「어둠의 새와 놀다」)며 홀로 숲길을 걷기도 한다. 자연의 일부로 살아가면서 동시에 단독자로서 자신을 끊임없이 가다듬는 일이다.한편 시인은 북적이는 사람들을 피해 “별 볼 일 없는 데만 가게 된다”고 자조적으로 진술하며, 간혹 회의가 들기도 하지만 “고치려 하지 않으며 산다”(「별 볼 일 없는 데만 가게 된다」)고 덤덤하게 말한다. 이는 세속적인 욕망에 휩쓸리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현이기도 하다. 그는 자신만의 속도로 살아가면서 “매일매일 희한한 세상을 마주하게 되니 산다는 게 좋은 일”(「좋은 일」)이라고 감각한다. 평범한 일상 속 소박한 만족감이 돋보이는 시편들은 산다는 건 그 자체로 이미 충만하다는 통찰을 담고 있다. 너무 많은 사람, 너무 많은 연결에 자신의 마음이 어떠한 모양을 하고 있는지조차 흐릿해지는 때에, 시인의 정갈한 언어는 “산과 산 사이를” 울리는 “닭 울음소리”(「가벼운 고독」)도 들릴 만한 고요의 세계로 독자들을 초대한다.삶이 죽음을 향해 가고 죽음이 삶을 바라보게 하는처절하게 쓸쓸하고 아득하게 밝은 세상의 순환시집에는 간혹 비릿한 “피와 살의 냄새”(「비린내」)가 풍기는 죽음의 그림자가 얼비친다. 특히 “바람이 불어도 흩어지지 않고 비가 와도 씻기지 않는 얼굴”(「어이하랴」)이라며 떠난 형님을 그리워하는 시편들은 유독 아프게 다가온다. 모든 것이 순환임을 받아들인 시인에게도 가까운 친지의 죽음은 통절하고 애틋하다. 그러나 시인은 결국 죽음조차도 삶의 한 과정으로 껴안는 넉넉함을 보여준다. 첫 시 「유서」에서는 “남의 몸을 먹으며 살았으니 육체나마 숲의 동물들에게 돌려줘야겠다”면서 죽음을 단절이 아니라 새로운 생명으로 이어지는 순환으로 받아들이는 자연회귀의 정신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또 함박눈 내려 환해진 겨울에는 아들의 탄생과 아버지의 젊은 시절에 관한 추억을 되새겨보기도 한다. 마지막 시 「울음소리」에서 형님의 “사십구재 전날 밤” “어둠을 먹”는 조카딸의 통곡을 들으면서, 처절하게 슬퍼하는 마음이야말로 죽음을 밝히는 아득한 등불임을 상기시킨다.충만한 봄의 기운이 오히려 쓸쓸하게 느껴지는 순간은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다. 시인 역시 “봄은 죽음의 또다른 얼굴”('시인의 말')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동시에 시인은 늦겨울 봄을 기다리는 꽃눈과 잎눈의 조바심을 관찰한다. 가장 서늘하고 낮은 땅에서 가장 환하고 높은 햇살을 살펴보고, 보도 공사에 다치게 될 수선화를 걱정한다. “드러나지 않게 피어나는 꽃”에서 “죽은 사람들의 얼굴”(「꽃향기 날리는 밤에」)을 발견하는 시인의 감각은 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산중 세계의 진경을 고스란히 전한다.유승도의 시는 화려한 수사나 난해한 은유 대신 직설적이고 일상적인 문장으로 우리의 가슴을 파고든다. 고형렬 시인은 발문에서 이번 시집을 “절묘한 구성을 얻은 한편의 삶”이라 평하며, “문명의 반대편에 서 있는 수많은 우울과 자책의 저녁을 보낸 자의 아침 노래”라 이른다. 시인이 결국 도달하는 지점은 '비움'과 '순응'의 상태이다. 시인은 “자신이 산산이 깨어지는 소리”(「파도는 바위를 치며 묻는다」)를 들으며 자아를 성찰하면서, '인간 중심'에서 '자연 중심'의 새로운 길을 열어 보인다. 세속의 화려한 중심보다는 '별 볼 일 없는' 풍경 속으로 잦아들며, 비워냄으로써 비로소 풍요로워지는 무위의 미학을 성취한다. 시인이 바라보는 있는 그대로의 세계는 역설적으로 평정심과 평안함을 불러일으킨다. 끝없는 자연 앞에서 삶으로부터 죽음을 받아들이고 죽음으로부터 생명의 빛을 틔워내는 시인의 발걸음이 우뚝하고, “시라는 겉옷을 입고”(「무거운 옷을 입고 산다」) “가만히 가만히 살자”(「가벼운 고독」)고 읊조리듯 다짐하는 마음이 사뭇 겸허하다.시인의 말‘유승각’이라는 이름으로 살았던 둘째 형님이 돌아가신 지도 오년이 넘는 세월이 흘렀다.올해도 예전과 다름없이, 봄기운이 돌자 생강나무와 산수유가 꽃을 피웠다. 뒤질세라 수선화와 제비꽃도 피었다. 벌과 나비를 부르며 자신도 꽃나무임을 알리던 회양목은 며칠 사이에 꽃을 떨구어낼 태세다. 꽃대를 올리고 노란 꽃을 피운 꽃다지가 ‘나도 있다’며 마당가를 쓰다듬는 바람 따라 일렁인다. 죽은 이들이 다시 일어선 모습이다.봄은 죽음의 또다른 얼굴임을 생각한다.2026년 4월봄꽃의 향기가 오가는 산 중턱 오두막에서유승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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