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자동차 산업의 상징적 중심지라면 자연히 미시간주 디트로이트라는 도시가 떠오른다. 한때 빅3로 불리는 제너럴모터스, 포드, 크라이슬러가 전성기를 구가하던 도시다. 하지만 나에게 디트로이트는 자연스럽게 라인홀드 니버(Karl Paul Reinhold Niebuhr, 1892~1971)를 생각하게 된다. 산업화의 한복판에서 노동자들의 삶을 보며, 그는 개인의 도덕성과 사회의 비도덕성 사이의 긴장을 신학적으로 해석해냈던 목회자며 신학자였다. 그러나 이제는 그 도시에 또 한 사람을 함께 떠올리게 된다. 그곳 허허벌판에 교회를 개척하여 34년이란 긴 세월 동안 목회하면서 고단한 이민자들의 삶을 가까이에서 품어 온 친구 오용주 목사다.
나는 그를 수십 년 동안 알아 온 사람으로서, 이 책을 조금은 다른 마음으로 읽었다. 이 책은 어떤 특별한 사건을 기록한 책이 아니다. 오히려 지나가는 일상, 누구나 겪을 법한 이야기들이 조용히 쌓여 있는 책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평범한 이야기들이 읽는 이의 마음을 오래 붙든다. 아마도 그것은 저자가 그 일상을 바라보는 신학적 눈이 남다르기 때문일 것이다. 이제 45년이라는 타국에서의 긴 시간을 지나 인생의 석양 녘에 다시 한국으로 돌아온 저자에게, 이 땅은 익숙하면서도 낯선 곳이었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그의 글에는 우리가 너무 익숙해 미처 보지 못했던 것들이 새롭게 드러난다. 익숙한 풍경이 낯설게 보이고, 당연하게 여겼던 삶이 다시 질문으로 다가온다. 나는 그 시선이 참 고맙게 여겨진다.
책은 저자의 귀환과 함께 시작된다. 제1장에서 저자는 45년 만에 돌아온 고국에서 느끼는 이방인 의식, 사회의 양극화, 소통의 단절을 통해 질문이 제기한다. 인간의 가치는 무엇으로 결정되는가? 성취인가, 존재인가? 여기서 저자는 분명히 선언한다. 인간의 존귀함은 성취가 아니라 하나님의 선택과 사랑에서 나온다고. 제2장에선 좀 더 개인적인 서사를 들려준다. 삶의 여정으로 이민 목회 이야기다. 은퇴를 통해 지난 삶을 돌아보며, 저자는 “하루치 만나”로 살아온 신앙을 고백한다. 이민교회 목회하면서 겪었던 세대 갈등, 문화 충돌, 유동성 등을 뒷거울(rear mirror)로 바라본다. 제3장에서 저자는 내면으로 이동하면서 “여백의 삶”의 소중함을 꺼낸다. 저자는 바쁨과 성취 중심의 삶을 해체하고 “누림”과 “쉼”이라는 신앙적 미학을 제시한다.
북미 개혁파(CRC) 목사로서 평생을 살아온 저자답게 4장은 저자의 신학적 자세를 선명하게 드러낸다. 왕국 신학(Kingdom theology)이라는 “하나님 나라”를 신학적 중심으로 삼고 십자가의 사랑, 낮아짐의 위대함, 일상의 신비, 하나님 나라의 현재성을 다룬다. 하나님 나라는 미래가 아니라 지금 여기에서 살아내는 삶의 방식이라는 저자의 주장은 개혁파(특히 카이퍼리안) 신학의 묵직한 면모를 보여준다.
저자는 다문화학(intercultural studies)로 박사학위를 취득한 학자 목사다. 제5장은 책에서 가장 날카로운 부분으로 한국 교회의 구조적 문제를 문화-신학적 진단과 함께 비판적 통찰을 담고 있다. 한국 교회 안에 잠재한 유교, 도교, 무속 신앙의 잔재를 드러내고, 예배와 삶의 분리 비판하면서 상식적 신앙과 통전적 사고를 추구하라고 권면한다.
제6장은 실천 영역으로 공동체와 리더십을 다룬다. 권위가 아닌 섬김과 관계 중심 리더십 강조하는 점은 우리가 다시금 차분하게 기억해야 할 가르침이다. 저자는 매우 적절하게도 말과 경건, 공동체 가치, 소명 등을 다루면서 삶을 해석하는 지혜의 언어로 마무리한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며, 저자가 오랜 세월 한자리에서 사람들을 섬겨 온 목회자라는 사실을 다시 느꼈다. 그가 쓴 문장 하나하나에는 사람을 향한 이해와 기다림이 배어 있다. 그래서 이 책은 읽는 내내 마음을 서두르게 하지 않았다. 오히려 잠시 멈추어, 내 삶을 돌아보게 만든다. 어쩌면 이 책은 새로운 것을 말하려는 책이 아니라, 우리가 이미 알고 있으나 잊고 살아가는 것들을 다시 떠올리게 하는 책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더 오래 마음에 남는다.
나는 이 책을, 바쁜 걸음을 잠시 멈추고 싶은 이들에게 권하고 싶다. 그리고 자신의 삶을 하나님 앞에서 다시 바라보고 싶은 이들에게도 조용히 건네고 싶다. 나는 지금 봄비가 가랑거리며 내리는 조용한 숲에서 이 글을 쓴다. 향내 나는 커피 한 잔을 앞에 두고 63편의 단품 에세이를 하나씩 읽어간다. 잠시 덮고 창밖을 내다본다. 여운이 남는 이 책을 여러분들에게도 추천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