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온의 아이들』에는 우리가 절대 잊을 수 없는, 결단코 빠르게 잊혀 가는 과거의 기억으로 남겨 둘 수 없다는 작가의 결의가 날카로운 비수처럼 곳곳에 숨겨져 있다. 온몸에 크고 작은 상처를 입은 아이들이 제사장 ‘박쥐’라는 괴이한 남자가 통치하는 환상의 섬 라온에 도착한다. 이 신비로운 섬에서 아이들은 잃어버린 기억을 찾기 위해 사력을 다한다. 기억을 되찾아야만 자신이 누구이며 어디서 왔는지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제사장과 붉은 사막인에게 대항하는 과정은 시종일관 흥미진진하다. 그러나 이는 ‘라온’이란 은유의 껍질을 벗겨 내지 못한 단편적인 시선이라고 할 수 있다. 눈치 빠른 독자라면 소설의 중간쯤에서 라온이 어떤 섬인지, 아이들이 누구인지를 알아차리고는 엄청난 충격에 휩싸이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 강렬한 충격은 우리가 속한 세계를 명징하게 인식하는 지름길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