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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을 만드는 사람
추천사 작가의 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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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윽고 담배꽁초를 구둣발로 짓이긴 사내가 손가락을 까닥거리자 아버지가 아이의 등을 떠밀었다. 아이가 주춤주춤 다가가자 사내가 왼손으로 아이의 머리를 움켜잡고 다른 손으로 목과 팔과 다리의 뼈를 강하게 눌렀다. 아이의 몸이 사로잡힌 물고기처럼 파닥거렸다. 마지막으로 사내는 아이의 입을 벌려 손가락으로 치아를 흔들어보고 나서야 손을 놓았다. 그런 사내를 지켜보는 아버지의 눈빛이 불안하게 흔들렸다. 손수건을 꺼내 손을 닦은 사내가 싯누런 봉투를 내던지며 나직하게 지껄였다.
“빌어먹을 놈.” 아버지가 봉투를 집어 들고 환하게 웃으며 바를 향해 걸어갔다. 아이를 앞세운 사내가 술집을 빠져나갔다. 사내에게 떠밀려가던 아이가 선술집 문설주를 붙잡고 울음 섞인 목소리로 아버지를 불렀다. 바텐더에게 받아든 술잔을 막 입으로 가져가던 아버지가 뒤를 돌아보았다. 그는 싯누런 이빨을 드러내고 손을 흔들었다. 그것이 아버지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그날 이후 네레오는 두 번 다시 아버지를 보지 못했다. 이따금 바람이 심하게 불어오는 날 선술집 어두운 조명 아래 손을 흔들던 아버지가 생각났지만 몇 년 지나자 유령 같은 그 모습이 점차 흐릿해졌고 나중에는 형체도 없이 사라졌다. --- p.50 아리아가 거의 끝나갈 무렵 허공을 응시하던 여자의 얼굴이 천천히 무너져 내렸다. 노래가 끝나고 발코니를 밝힌 불이 꺼지자 새벽 거리에 무서운 정적이 내려앉았다. 한 시간쯤 지났을 때 죽은 여자의 다리가 천천히 벌어졌다. 그리고 벌어진 다리 사이로 검은 형체가 꿈틀거리며 나왔다. 그것은 죽은 어미의 살을 찢고 세상 밖으로 나오는 갓난아이의 머리였다. 세상 누구의 도움도 없이 아이는 제 스스로의 힘으로 어미의 몸을 빠져나오고 있었다. 새벽 공기에 노출된 아이의 머리에서 뜨거운 김이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마침내 어미의 몸을 완전히 빠져나온 아이가 무언가를 잡으려는 듯 손을 들었다. 꽉 움켜쥔 아이의 손에서 뚝뚝 떨어진 핏물이 실핏줄처럼 날이 밝아오는 새벽 거리를 향해 소리 없이 흘러갔다. 아이는 천천히 눈을 뜨고 오랫동안 기다려온 세상을 공허한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이곳은 행려병자로 거리를 떠돌던 내 엄마가 죽은 곳이고 동시에 내가 태어난 곳이에요.” 네레오는 입술을 깨물고 서 있는 아나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몸에서 흘러나온 슬픔이 온몸에 전해졌다. 그것은 어딘지 모르게 익숙한 고통이었다. 타인에게서 동질감을 발견한다는 것은 기쁨이 아니라 또 다른 고통이었다. 아나가 천천히 돌아서서 저 멀리 어둠 속에 우뚝 선 건물을 바라보며 말했다. “난 저곳에서 많은 사람의 축복을 받으며 다시 태어나고 싶어요.” --- p.143-144 웨나를 찾아 세상을 떠돌던 시절 네레오를 가장 힘들게 한 것은 하루 일과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간 사람들이 가족들과 함께 단란한 시간을 보내는 집에서 흘러나오는 불빛을 보는 것이었다. 그 은은한 불빛이 어두운 거리에 서 있는 자신의 몸에 닿을 때마다 날카로운 칼날로 가슴 한쪽을 도려내는 듯한 고통이 밀려왔고 반석에 새겨진 굳은 맹세가 바람 앞의 촛불처럼 흔들렸다. 그때마다 네레오는 그 고통스런 소외감과 결락이 자신이 필연적으로 감당해야 할 몫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영원히 가질 수 없고 도달할 수 없을 것 같은 그 불빛을 지금 자신이 움켜잡고 있었다. 이제 그는 하룻밤 잠자리를 구하기 위해 남의 집 문을 두들길 필요가 없었고 장대비가 쏟아지는 들판을 처량하게 걸어갈 이유가 없었다. 짙은 눈발이 떨어지는 어두운 밤길에서 갈 곳을 찾지 못한 채 방황할 필요도 없었다. 하루 일과를 마치고 감독관 집으로 돌아와 루이사와 저녁 식사를 하고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다 잠이 들면 그만이었다. 마침내 네레오는 가족을 가짐으로써 평범한 일상으로 편입할 수 있었다. 그 누구도 자신의 권리를 침해할 수 없는 일상을 살아갈 수 있게 된 것이었다. 하나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다면 가우초 감독관 자릴 선뜻 내준 목장 주인인 이시도르 하인즈였다. 이시도르가 자신에게 베푼 친절과 배려가 어디서 기인하는지 알고 있었지만 진실을 말할 수 없었다. 진실을 고백하는 순간 자신이 누리는 행복이 산산조각으로 깨어질지 모른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루이사가 그동안 세상을 떠돌아다닌 이유를 물었을 때 대답하지 않은 것도 같은 이유였다. 웨나를 찾아 세상을 떠돌아다녔다는 사실은 무덤까지 가져가야 할 비밀이었다. --- p.195-196 아득히 먼 옛날 베링 해를 넘어 지구의 땅 끝까지 걸어왔던 사람들의 위대한 여정이 끝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지금 이 순간에도 그들의 여정은 계속되고 있었던 것이다. 어쩌면 그들의 여정은 이 세상 모든 사람이 절멸하는 순간까지 이어질 것이었다. --- p.252 이제 그는 자신의 길을 선택해야 했다. 그 길은 세상 그 누구도 알려줄 수 없는 길이었다. 따라서 네레오도 역시 앞서간 자들처럼 순수한 자의지로 자신이 나아갈 길을 결정해야 했다. 대부분의 사람은 확연하게 검증된 길을 선택했다. 그러나 소수의 사람은 모든 사람이 나아간 길을 거부하고 자신만의 새로운 길을 찾아 나아갔다. 그들이 미지의 세계에 새로운 표석을 세울 때 우리 인식의 경계가 확장되었다. 세상의 모든 경계는 그렇게 만들어진 것이었다. --- p.252-253 바람은 공기의 흐름이었다. 그것은 세상 모든 사람이 알고 있는 절대적인 명제였다. 그런데 단 한 사람 네레오 코르소는 그 불변의 명제를 믿지 않았다. 그는 웨나가 상상의 인물이 아 니라 이 고원 어딘가에 실재한다고 믿었고 그것을 증명하기 위해 시시포스처럼 고원 곳곳을 헤매고 돌아다녔던 것이다. 유년 시절에 상상하는 환상은 성인이 되면서 저절로 깨어진다. 그러나 네레오는 그렇지 못했다. 유년의 환상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이다. 그날 자신이 본 네레오의 행복은 거짓이고 허상이었다. 그는 무엇 때문에 전설과 신화의 인물을 좇아 소중한 시간을 탕진한 걸까. 웨나는 신이 아니었다. 따라서 황금과 권력은 물론이고 영생을 약속할 수도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웨나를 찾아다니는 이유는 무엇일까. 진실한 행복을 원해서인가. 그렇다면 네레오의 생각과 판단은 잘못되었다. 진실한 행복은 경계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쌓아올린 성채 안에 있었다. 그 안에 우리가 원하는 모든 것이 있었다. 사랑하는 연인의 달콤한 입맞춤과 친구들의 다정한 위로가 있었고 가족들의 대가 없는 사랑과 헌신적인 보살핌이 있었다. 상처받은 영혼을 치유할 수 있는 성가와 축복의 기도가 있었고 육신의 허기를 채울 수 있는 온갖 음식과 포도주가 있었다. 그래서 우리는 성채 안에서 노래하고 춤추며 일상의 행복을 누리며 살아가는 것이다. 그러나 성채 밖은 그렇지 않았다. 그곳에는 어리석은 미망에 빠진 짐승들이 무거운 사슬을 발목에 매달고 안식처를 찾아 끝없이 방황하고 있었다. 네레오는 황야의 이리처럼 그 어둡고 음습한 땅을 헤매고 다녔던 것이다. 대체 무엇이 그를 경계 밖으로 내몰았던 걸까. 그 어떤 유혹이 그를 미망의 세계로 끌고 간 걸까. --- p.29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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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 살짜리 여자아이를 잔인하게 죽인 퓨마의 사냥을 의뢰받은 예순여덟 살 네레오 코르소는 퓨마를 잡기 위해 협곡으로 떠난다. 그러나 날이 어두워질 무렵 퓨마에게 공격을 당해 정신을 잃고……. 무서운 바람 푸엘체의 전조 속에서 노인은 아득한 과거의 시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술주정뱅이 아버지에 의해 가우초에게 팔려간 여덟 살 소년, 가우초가 될 수밖에 없었던 네레오 코르소는 파타고니아 고원에서 부는 바람이 무서워서 몇날 며칠을 잠 못 이루고 우는데, 늙은 가우초는 그에게 바람의 전설, 웨나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날 이후 웨나는 매일 밤 소년의 꿈속에 나타나고, 웨나의 흔적을 좇아 소년의 여정은 시작된다. 책을 좋아하고 식견과 경험이 풍부한 가우초 후안을 웨나라고 믿기도 했고, 웨나와의 만남이 간절했던 소년은 스무 살 청년이 되자 파타고니아 고원을 떠나 도시로 내려간다. 웨나가 자신의 삶을 원점으로 되돌릴 수 있다고 확신하는 아나를 만났는가 하면 삶의 본질을 확인하기 위해 달을 찾아 사막으로 가는 무리에 섞이기도 했다.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며 떠돌다 소아마비로 몸이 불편한 루이사를 만나 사랑을 하고 결혼도 하지만……. 마침내 자신의 길을 찾은 네레오의 선택은 무엇일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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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도 답을 알지 못하는 질문은
그것을 간절하게 묻는 것만으로도 인생을 달라지게 한다.” -신형철(문학평론가) 2017 문학나눔,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이달의 읽을 만한 책’에 선정되어 문학성을 인정받은 『바람을 만드는 사람』이 개정보급판으로 출간되었다. 광대한 원시의 땅 파타고니아를 배경으로 자신의 길을 찾아가는 한 남자의 일생을 담은 『바람을 만드는 사람』은 수많은 독자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일을 위해 경계 밖으로 나설 수 있도록 용기를 불어넣는다. 당신은 지금 어디에 서 있는가? 경계 밖인가? 경계 안인가? 경계를 벗어난, 자유로운 영혼이 되기 위한 위대한 여정 “아무도 나의 삶을 대신할 수 없고 속박할 수 없다” 오래전 병원 대기실에서 마윤제 작가는 운명처럼 잡지 기사 한 꼭지와 사진 한 장을 만나게 되었다. 파타고니아 고원에 올라가서 양을 키우며 살아가는 목동들의 일상을 취재한 르포 중 예순여덟 살의 목동 네레오 코르소가 자신의 오두막 계단에 앉아 낡은 브라질산 권총을 닦고 있는 사진 한 장은 이 소설의 시작점이 되었다. 거친 바람이 불어오는 황량한 고원에서 홀로 살아가는 노인의 명경처럼 맑은 눈빛과 행복한 표정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인지, 소설이 출간된 지금까지도 그를 사로잡고 있다. 지난 수년 동안 현실의 수많은 사건, 사고를 경험하며 고통스러울 때마다 작가는 아득히 먼 옛날 아프리카를 떠나 베링해협을 넘어 지구의 땅 끝까지 걸어간 사람들의 지난한 여정을 떠올리며 글을 이어나갔다. 안락한 정주의 삶을 버리고 누구도 도달하지 못한 미지의 세계를 향해 나아간 그들이 만든 새로운 표석을 떠올리며 3년이란 긴 시간 끝에 마침내 소설을 완성했다. “주인공 네레오 코르소의 장중한 행로가 마감될 때 마치 내 남은 삶을 당겨 살아버린 것 같았다.” -신형철(문학평론가) 세상의 모든 경계 너머에는 우리가 알지 못한 새로운 땅이 존재한다 오래전 이미 눈에 보이지 않는 균열이 시작된 지구상에서 유일하게 오염되지 않은 곳, 자연이 보존되고 생명이 숨 쉴 수 있는 마지막 은신처인 지구의 땅끝 파타고니아는 세상의 모든 바람이 시작되는 곳이다. 그곳에서 바람을 만드는 존재 ‘웨나’에 대한 전설을 들은 한 소년이 그의 실체를 찾아 평생을 떠돌며 많은 사람을 만나고, 인간의 삶을 돌아본다. 그리고 마침내 자신만의 답을 찾는다. 네레오 코르소는 혼탁한 시대에 세상에 태어난 이유, 자신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를 깨닫는다. 대체 무엇이 그를 경계 밖으로 내몰았던 것일까? 네레오는 우리의 운명이 우연의 산물인지 아니면 천형의 굴레인지, 아득한 세월을 살아온 웨나는 분명 질문에 충분한 답을 해줄 것이라고 믿었고, 그를 찾는 긴 여정 끝에 답을 얻는다. 몰려오는 시간에 굴종하고 운명에 순응하는 것만이 진정으로 행복해질 수 있는 길일까? 일상에서 기쁨을 찾는 것만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전부일까? 소설은 우리 삶의 본질, 진리, 진실에 한 발짝 다가서려는 한 남자의 일생의 서사가 장엄하게 펼쳐진다. 이야기를 통해서 독자에게 자신이 서 있는 자리에 대해 끊임없이 생각하게 하고, 소통으로 공감과 감동을 이끌어낸다. 길을 찾는 독자들에게 마윤제 작가만의 진중한 언어와 이야기로 위로와 격려, 용기를 준다. 작가의 말 어느 날 친구로부터 자신이 참여하는 종교 행사에 동참해달라는 부탁을 받고 동행했다. 넓은 회당은 평일 저녁임에도 불구하고 몰려든 사람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잠시 후 어렸을 때 교회에서 본 익숙한 광경이 펼쳐졌다. 차례로 연단에 오른 사람들이 간증하는 모습을 지켜보다 무심코 주위를 돌아보았는데 묘한 기시감이 들었다. 연단을 뚫어지게 쳐다보는 사람들의 경건하고 엄숙한 표정과 눈빛 때문이었다. 빈자리 없이 회당을 채운 사람들은 한 사람도 빠짐없이 무언가를 간절하게 갈구하고 있었다. 아니 무언가를 절실하게 찾아 헤매고 있었다. 그 순간 심연 속에서 한 노인의 온화한 얼굴이 떠올랐다. 오래전 병원 대기실에 놓인 잡지에서 본 네레오 코르소라는 늙은 목동이었다. 연중 내내 거친 바람이 불어오는 저 황량한 고원에서 살아가는 노인의 눈빛이 어찌 이리 명경처럼 맑은가. 친구도 가족도 없이 뜨거운 햇살과 바람에 삭아가는 작은 오두막에서 홀로 살아가는 노인은 어째서 이렇게 행복을 표정을 짓고 있는 걸까. 나는 이런 의문을 품고 2013년 8월 중순부터 지구 반대편, 파타고니아 평원으로 불어오는 거친 바람을 상상하며 이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 한 줄의 글이 우리에게 무엇을 해줄 수 있느냐고 반문하는 시대에 지구 반대편 파타고니아 고원의 한 목동의 이야기가 과연 어떤 의미가 있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세상 곳곳에는 계절이 변하면 농부들이 들판으로 나가 땅을 갈고 씨를 뿌리듯, 작가들은 책상에 앉아 묵묵히 한 줄의 글을 써나간다. 그들은 뜨거운 여름이 지나가고 탐스런 열매를 수확할 수 있는 가을을 기대하지 않는다. 그저 움직일 수 있는 육신과 생각할 수 있는 영혼이 있기에 하얀 여백을 채워간다. 한 가지 바람이 있다면 수많은 번민과 고통 속에서 만들어진 한 줄의 글이 우리 가던 걸음을 멈추고 지금 서 있는 곳이 어디인지 잠시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작은 소망이 있을 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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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미 파타고니아의 고원 지대, 압도적으로 불어오는 바람이 신의 현현(顯現)처럼 느껴지는 그곳에서, 바람을 만드는 존재 ‘웨나’에 대한 전설을 들은 한 소년이 그의 실체를 찾아 평생을 떠도는 이야기. 윗세대에게는 헤르만 헤세의 철학적 구도소설을, 아랫세대에게는 파울로 코엘료의 영적 로망스를 떠올리게 할 이런 이야기를 나는 본래 좋아하는 편이 아니었다. 소설에 미달하는 교훈담이 되거나, 소설을 낮춰보는 형이상학을 자임하는 경우를 더러 봤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소설은 달랐다.
내가 변했기 때문일까, 이 작가가 워낙 잘해냈기 때문일까. 내가 알기로 늘 어딘가로 떠나기를 주저하지 않는 이 작가가 그만의 ‘천로역정(天路歷程)’을 써낸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지만, 내가 책상머리에 앉아 이 소설을 기이한 절박함 속에서 완독한 것은 뜻밖이었다. 예전 같으면 추상이나 관념으로 느껴졌을 주인공 네레오 코르소의 필생의 여정을 연민과 긴장 속에서 따라갔고, 그 장중한 행로가 마감될 때는 마치 내 남은 삶을 당겨 살아버린 것처럼 먹먹한 피로감마저 느꼈으니 말이다. 지금의 나 역시 ‘웨나’를 찾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 삶에 불어오는 저 바람이란 무엇이며 그 바람을 만드는 존재란 또 누구인지를, 그러니까 생의 궁극적 의미가 어디에 있는지를 묻고 있기 때문이다. 이 소설이 현명하게 보여주듯 종교의 위안, 혁명의 성취, 가정의 행복, 이성의 확신, 그 밖의 그 어떤 것도 그에 대한 절대적인 답을 독점하지는 못한다. 그러나 이 소설은 감동적으로 알려준다. 누구도 답을 알지 못하는 질문은 그것을 간절하게 묻는 것만으로도 인생을 조금은 달라지게 한다는 것을. - 신형철 (문학평론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