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년을 기다려 읽은 조인호의 두번째 시집은 나를 2000년대 중후반, 그 ‘미친’ 시절로 데려간다. 열댓명의 젊은 시인들이 경쟁하듯 좋은 시를 쏟아내던 때였다. 조인호는 그 열기를 2010년대로 이어갈 가장 재능 있는 80년대생 시인으로 보였고, 이어 2010년대 최고의 시집 중 하나인 『방독면』을 펴냈다. 그러나 평단과 시장은 시큰둥했고, 나는 그게 부당하다 느꼈지만, 돌이켜보면 그런 반응이 저 시집을 완성한 것도 같다.
그 책이 유고 시집이 되기 전에 시인이 돌아와줘서 고맙다. 변함없는 것은 조인호가 이야기를 ‘끝내주게’ 잘한다는 점이다. 그의 시는 아무리 길어도 길지 않다. 한두 구절의 반짝임이 아니라 작품 전체로 삶의 아이러니를 전한다. 온갖 장르와 화법을 능숙하게 패러디하고, 동시대의 부드러운 시들에선 소멸된 국제 정세와 역사 감각을 가로지르면서 말이다. ‘도덕주의’라는 안전핀마저 뽑아버려서 곧 터질 듯 보이는 용감한 시들도 있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첫 시집의 ‘콘셉추얼 페르소나’가 ‘전사(戰士)’였는데 그게 이번엔 ‘고아’라는 점이다. 그 형상은 개인적 상실에서 탄생한 것이지만, 은연중에 ‘고아 의식’으로 정립·확대되어 어떤 세대·시대의 근본 기분을 증언한다. 그 의식이 전위적 신성모독과 서정적 애착불안 사이를 진동하면서 300면의 분량을 꿰뚫은 결과가 이토록 유기적인 한권의 시집이다. 뭘 더 바라겠는가. 다음 기다림은 15년보단 짧기를, 그것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