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소장하고 있다면 판매해 보세요.
어쩌면 우연
몬테마요르 후작 부인 에스테반 피오 아저씨 어쩌면 신의 의도 해제_신형철 옮긴이의 말_정해영 |
Thornton Wilder
신형철의 다른 상품
정해영의 다른 상품
다른 사람이었다면 내심 안도하며 “십 분만 늦었다면 나도…”라고 혼잣말을 했겠지만, 주니퍼 수사에게는 다른 생각이 떠올랐다. “왜 하필 저 다섯 사람에게 이런 일이 일어난 걸까.” 우주에 어떤 계획이 있다면, 인간의 삶에 어떤 패턴이 있다면, 갑자기 중단된 저들의 삶 속에 숨겨진 불가사의한 무언가를 밝혀낼 수 있을 것이 분명했다. 우리는 우연히 살고 우연히 죽는 것일까, 아니면 계획에 의해 살고 계획에 의해 죽는 것일까.
--- p.14 「어쩌면 우연」 중에서 그녀는 보석 반지를 낀 손으로 종잇장을 넘기면서, 거의 재미 삼아 자주 자문하곤 했다. 혹시 끝없이 느껴지는 이 고통이 아예 심장에 자리를 잡은 건 아닌지. 솜씨 좋은 의사라면 부서진 왕좌 같은 심장을 절개하다가 마침내 어떤 흔적을 발견하지 않을까. 그러고는 고개를 들어 계단식 강의실에 앉아 있는 학생들에게 이렇게 외치는 것이다. “이 여인은 그동안 몹시 고통받았고, 그 고통이 심장에 자국을 남겼습니다.” --- pp.30-31 「몬테마요르 후작 부인」 중에서 딸의 편지는 비록 표현은 그럴싸했으나 상처를 주는 말들로 가득했다. 어쩌면 순전히 고통을 주기 위해 교묘하게 기교를 부린 것이 아닐까 싶었다. 문구 하나하나가 후작 부인의 눈으로 들어가서 이해와 용서로 조심스럽게 포장된 다음 가슴에 스며들었다. 마침내 그녀는 일어나, 동정하는 듯한 라마들을 부드럽게 쫓아내고 진지한 얼굴로 성지로 돌아갔다. --- p.64 「몬테마요르 후작 부인」 중에서 그러나 그의 의지와 상상력이 맥을 못 출 만큼 여자에게 단단히 빠져든 것은 처음이었다. 그래서 사랑과 쾌락을 분리할 수 있는, 단순한 성격의 장점을 잃어버렸다. 이제 쾌락은 음식을 먹는 것처럼 단순하지 않았다. 사랑 때문에 복잡해졌다. 이제 미친 듯 자기 자신을 잃어버리고,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극적인 생각 외에는 아무것도 안중에 없는 상태에 접어들었다. --- p.85 「에스테반」 중에서 그는 세상 사람들을 두 부류로 나누었다. 사랑을 해 본 사람과 해 보지 못한 사람이었다. 그것은 지독한 오만이었다. 사랑할 능력이 없는 사람들(더 정확하게는 사랑의 고통을 느낄 능력이 없는 사람들)은 살아 있다고 말할 수 없고, 사후에도 다시 살지 못할 것이 분명하다고 주장하는 것이니 말이다. --- pp.160-161 「피오 아저씨」 중에서 모든 외로운 사람들이 그렇듯, 그는 우정에 신성한 매력을 부여했다. 거리에서 함께 웃으며 거닐다 헤어질 때 포옹하는 사람들, 미소 가득한 얼굴로 함께 만찬을 즐기는 사람들을 보며, 믿기 힘들겠지만, 그들이 그런 친밀감으로부터 엄청난 만족을 얻고 있다고 상상했다. --- p.167 「피오 아저씨」 중에서 그러나 우리는 곧 죽을 것이고, 그 다섯 명에 대한 모든 기억도 지상에서 완전히 사라질 것이다. 우리 자신도 한동안 사랑받다가 잊힐 것이다. 그러나 그 정도 사랑이면 충분하다. 모든 사랑의 충동은 그것을 만들어 낸 사랑으로 돌아간다. 사랑을 위해서는 기억조차 필요하지 않다. 산 자들의 땅과 죽은 자들의 땅이 있고, 그 둘을 잇는 다리가 바로 사랑이다. 오직 사랑만이 남는다. 오직 사랑만이 의미를 지닌다. --- p.209 「어쩌면 신의 의도」 중에서 먼저 간 다섯 명에게 주었어야 할 사랑을 뒤늦게 다른 이에게 준다는 생각조차 필요 없다. 그들이 죽었듯이 남은 우리도 죽는다. ‘나는 너를 사랑한다’라는 문장에서 중요한 건 주어나 목적어가 아니라 ‘사랑한다’라는 동사다. 주어와 목적어는 몹시 중요하다고 반박하고 싶어질 때 그다음 문장이 우리를 품는다. “모든 사랑의 충동은 그것을 만들어 낸 사랑으로 돌아간다.” --- pp.217-218 「해제: 샘 속에 숨겨진 샘」 중에서 어찌 보면 한 치 앞도 모르고 바둥대며 살다가 준비 없이 죽음을 맞이하고, 잠시 기억되다가 영영 잊히는 삶이 허무하게 느껴질 수 있다. 그러나 이 소설은 한동안 누군가를 사랑하고 누군가의 사랑을 받았다는 것, 그것으로 충분히 살 가치가 있다고 말한다. --- p.223 「옮긴이의 말」 중에서 |
시대를 초월한 삶과 죽음, 운명과 예술
그리고 사랑에 관한 짧지만 강렬한 이야기 1927년, 지금으로부터 약 백여 년 전 손턴 와일더의 장편소설 『산 루이스 레이의 다리』가 세상에 나왔다. 모더니즘 문학이 전성기를 누리던 시기, 그는 오히려 고전주의 문학의 소박하고 정제된 아름다움에 기대어 이 작품을 완성했다. 소설은 출간 1년 만에 30만 부 이상 판매되며, 당시로서는 이례적인 성공을 거두었다. 저자 손턴 와일더, 그의 나이 고작 서른이었을 때의 이야기다. 더욱이 이 작품은 상업적인 성과를 넘어, ‘위대한 문학적 산물’, ‘문장가들의 교과서’, ‘현시대 최고의 작품’이라는 찬사를 받으며, 1928년 퓰리처상 소설 부문을 수상하는 데까지 이른다. 당시 퓰리처상은 미국적인 삶과 배경을 잘 담아낸 작품에 수여되었지만, 페루를 배경으로 한 이 소설이 퓰리처상을 받으면서 그 수상의 기준을 바꾸는 계기가 되었다. 과연 문학사에 한 획을 그었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닌 역작이 탄생한 순간이었다. 『산 루이스 레이의 다리』는 한국에서도 1958년 출판사 신양사에서 『운명의 다리』로 처음 소개되었으나 이후 절판과 재출간을 거듭한 끝에 2025년 클레이하우스에서 네 번째로 새롭게 번역 출간된다. 유달리 반복되는 재난과 참사 속에서 한국 사회는 지난 상처를 극복하기도 전에 다시 상처를 새기는 일을 거듭하고 있다. 피 흘리는 채로도 앞으로 나아가야만 하는 것이 삶이라는 굴레의 본질이기에 우리는 백년에 가까운 시간을 거슬러 다시 한번 이 책을 읽어보려 한다. 새롭게 소개되는 이번 『산 루이스 레이의 다리』는 『이 폐허를 응시하라』, 『리버보이』 등을 옮겼던 정해영 번역가의 정확하고 섬세한 번역과, 자신의 인생책이라고 밝혔던 신형철 문학평론가의 해제를 붙여 우리가 여전히 이 책을 다시 읽어야 할 명료한 이유를 더했다. 우리는 우연히 살고 우연히 죽는 것일까, 아니면 계획에 의해 살고 계획에 의해 죽는 것일까. 살아가면서 예상치 못한 크고 작은 비극을 마주할 때가 있다. 그리고 그 순간, 우리는 삶이 얼마나 쉽게 무너질 수 있는지, 우리가 얼마나 죽음 가까이에 서 있는지를 깨닫는다. 특히, 사고나 자연재해, 질병 등으로 사랑하는 이를 잃었을 때, 우리는 스스로에게 묻는다. “왜 하필 이런 일이 일어난 걸까? 이 모든 것에 과연 어떤 의미가 있을까?” 손턴 와일더의 『산 루이스 레이의 다리』는 바로 이러한 질문에서 출발한다. 1714년 7월 20일 정오, 페루에서 가장 멋진 다리가 갑작스럽게 붕괴되며 다섯 명의 여행자가 목숨을 잃는다. 이 비극적인 순간을 우연히 목격한 주니퍼 수사는 이들의 죽음이 단순한 우연인지, 아니면 신의 계획인지에 대해 의문을 품는다. 그는 이 사고를 ‘신의 의도’를 과학적으로 증명할 완벽한 기회라고 믿으며, 장장 6년에 걸쳐 희생자들의 삶을 조사하고 십여 권의 방대한 기록을 남긴다. 기록물에는 다섯 명의 희생자가 생을 마감하기 전까지 어떤 삶을 살았는지 상세히 적혀 있었는데, 수천 건의 사소한 사실과 일화, 그리고 관련된 증언들이 담겨 있었다. 딸에게 사랑을 갈구하던 외로운 노파 몬테마요르 후작 부인, 충직한 하녀였던 소녀 페피타, 쌍둥이 형제를 잃고 슬픔에 잠긴 청년 에스테반, 유명한 여배우의 후원자이자 멘토였던 피오 아저씨, 그리고 병약한 어린 소년 돈 하이메. 그들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이들이 특별히 선하지도 악하지도 않았고, 결국 우리와 다르지 않은 평범한 사람들이었음을 알게 된다. 각자의 방식으로 사랑을 표현하고, 상실을 겪으며, 때로는 늦게나마 달라지기를 꿈꾸던 그들의 삶을 통해 우리는 자연스레 우리 자신의 모습을 비춰보게 된다. 감당할 수 없는 상실 앞에서 과연 우리가 기댈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안톤 체호프는 이렇게 말한다. “문학의 임무는 질문에 답하는 것이 아니라, 질문을 제대로 하는 것”이라고. 작가인 손턴 와일더 역시 우리가 경험하는 비극의 이유에 대해 명확한 답을 내리지 않는다, 대신 그는 ‘왜 그런 일이 일어났는가’라는 질문을 ‘우리는 왜 그렇게밖에 살아갈 수밖에 없었는가’라는 질문으로 바꿔 묻는다. 그리고 와일더는 마지막 장에서 수녀원장의 입을 빌려 우리가 감당할 수 없는 상실 앞에서 의지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작은 힌트를 남겨둔다. 마지막 장에 등장하는 이 구절은 영국 전 총리 토니 블레어가 9.11 테러 희생자를 추모하는 자리에서 낭독하기도 했다. “산 자들의 땅과 죽은 자들의 땅이 있고, 그 둘을 잇는 다리가 바로 사랑이다. 오직 사랑만이 남는다. 오직 사랑만이 의미를 지닌다.” 우리는 불확실하고 예측할 수 없는 인생을 살아간다. 그러나 우리는 타인과 맺는 관계 속에서 살고 있고, 서로에게 남긴 사랑의 흔적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결국 우리를 연결하는 것도, 우리에게 남는 것도 오직 사랑뿐이다. 책을 덮고 나면, 가슴 벅찬 여운이 먹먹하게 퍼진다. 그리고 우리 자신과 우리 주변을 다시 한번 돌아보게 된다. 매일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 어쩌면 내일 갑자기 만나지 못할 수도 있는 사람들. 우리는 과연 그들에게 어떤 존재로 남을 것인가? 어쩌면 우리는 모두 삶과 죽음의 경계에 자리한 ‘다리’를 건너고 있는지도 모른다. 지척에 있는 죽음 앞에서, 가치 있고 의미 있는 인생을 위해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산 루이스 레이의 다리』가 던지는 이러한 질문들은, 책이 출간된 지 약 백여 년이 되어가는 지금도, 그리고 머나먼 미래에도 유효할 것이다. |
재난과 참사 앞에서 나는 ‘신을 용서하지 않는 용기’를 가지려면 어떤 이야기를 읽어야 할지 고민한다. 이 소설이 제시하는 답은 놀랄 만하지 않다. 그러나 사랑하는 이를 잃은 이들이 원하는 답은 놀랄 만한 답이 아니라 당신은 따라 죽지 않아도 된다고 말해 주는 답이다. 지난 백 년 동안 가족과 친구를 잃은 많은 이들이 제 고통을 이해하고 또 계속 살아가기 위해 이 책에 매달렸으리라. 인생은 변하지 않는다, 비극적인 부분일수록 더. - 신형철 (문학평론가)
|
참사의 슬픔 중 하나는 사람이 숫자가 된다는 점이다. 몇 년도에 몇 명 사망이라는 서늘한 통계에 흡수된 사람들은, 그러나 언젠가 이야기로 구출된다. 『산 루이스 레이의 다리』는 그 아름다운 본보기다. 희생자의 면면들, 욕망과 감정이 만들어 낸 뜨거운 마음들, 사연들을 따라가다 보면 이미 ‘인식의 다리’를 건넌 후다. 노련한 소설가는 너와 나의 구분은 가상의 환영에 불과하다는 윤리의 극점에 독자를 데려다 놓는다. 전쟁의 시대를 지나 재난의 시대를 사는 현대인을 위한 고전으로 널리 읽힐 가치가 충분하다. 사랑에 관해, 관계에 관해, 신에 관해, 불행에 관해 비밀을 누설하는 놀라운 책이다. 나는 너무 좋아서 여러 번 다시 읽었고, 필사까지 했다. - 은유 (르포 작가)
|
너무나 감동적이고 강렬한 힘을 지닌 소설. 옴진리교 지하철 테러 사건을 다룬 『언더그라운드』를 쓸 때, 나는 매 순간 이 소설을 떠올리며 큰 영감을 받았다. 『산 루이스 레이의 다리』는 오랜 시간이 지나도 내 서재에 영원히 자리할, 절대 손에서 놓을 수 없는 걸작이다. - 무라카미 하루키 (소설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