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의 미학적 관점(‘꽃’)과 일상인이 늘 맞닥뜨리는 현실적인 삶(‘숟가락’)이 충돌하는 지점에서 김효연의 시는 태어난다. 해체된 공동체에 관한 분노, 성찰, 전망이 김효연이 지향하는 시 세계이고 이는 시집 [무서운 이순 씨]에서부터 일관된 시적 개성이다. 극단적으로 양극화된 빈부격차 사회의 시스템 앞에서 “저 거대한 철벽을 어떻게 베고 자를 수 있”을까 의심하며 절망하지만(「지역 뉴스」) “거침없이 공을 날리며 웃고 떠들었을” “광장”, “쌍욕과 삿대질이 귀를 들쑤시는 그곳” “시끌벅적한 선술집으로 가야” 하는 체질은 생래적인 듯하다(「소주병」). 그 “광장”에서 불려 나와야 할 이름들은 “국적을 잃은 입”을(「관계의 예의」) “흑룡강”에 떠내려 보낸 탈북민 ‘아이’와(「닭발」) “석 달 동안 비닐하우스에서 깻잎만 따다가/눈에서 코에서 들깨 순이 파릇 돋아”난 캄보디아 소녀와(「동생이 나타났다」) “임대아파트”에 사는 ‘아이’들과(「강남은 따뜻한가요」) “35m 크레인에 오르”는 “37년” 근속 근로자들이다(「미쳐야 미친다」). 그들은 내 이웃이자 나의 아버지, 누이, 친척들이지만 또한 우리가 애써 지나쳐 버린 이름들에 다름 아니다. 그러니 “밤새 말을 긷느라 입안이 다 헐어 거무튀튀 떨어진 입술”을 가진 시인의 자의식은 ‘내’가 쓴 한 줄, 한 편의 시가 “노래일까 울음일까”라고 시니컬한 어조로 묻지 않을 수 없다(「꽃과 숟가락」). “허공에 걸린 현수막이 달려와 따귀를 철썩” 치는 일상을 도저히 묵과할 수 없는 시인의 관점과(「지역 뉴스」) “신분과 계급장을 벗겨” 낸 사람들이 “한 방에서 다른 형을” 사는 요양병원의 고통을 목격하고 감내해야 하는 일상인의 시각은(「모텔 수도원 감옥」) 늘 대립과 동조를 반복한다. 이런 과정에서 태어난 풍자와 반성(“책을 먹고 밥을 읽는다고 비웃어 주세요”, “도서관이 떠내려가고 시장이 뛰어도 밥은 싹싹 바닥이 훤하도록 읽지요”, 「우리의 증거」)은 지금, 여기에서 시인이 존재해야 할 위치가 어디인지를 묻는 김효연의 시가 가진 흔치 않은 개성과 미덕이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