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그토록 영화를 좋아하느냐고, 대체 영화가 당신에게 무엇이냐고 누군가 묻는다면, 앞으론 대답 대신 이 책을 안기려 한다. 김소미의 차분하고도 경쾌한, 명징하나 무엇도 함부로 단정 짓지 않는 이 서른여섯 통의 러브레터를 읽으며, 나는 속절없이 침잠하고 벅차오르기를 반복했다. 수많은 영화를 만나는 동안 내 마음에는 과연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긴 세월 영화와 나는 과연 어떤 관계를 맺고 어떤 시간을 나누며 서로에 기대 살아온 건지, 처음으로 정확한 언어를 만난 기분이다. 어둠 속 스크린을 은은하게 밝혀주는 등불이 되었다가, 곧 그 빛 아래 선 나를 정직하게 담아내는 거울이 되는. 아픈 고백이 담긴 비밀 일기장이 되었다가, 기약 없는 내일도 희망하는 명랑한 선언문이 되는. 현미경이 되었다가 망원경이 되고, 이내 눈을 감고도 무언가 볼 수 있게 만드는 그의 글을 읽다 보면, 사방으로 뻗어 나가는 인생의 모든 길 위에 영화가 있고, 그 옆에 내가, 아니 우리가 나란히 걸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새삼 알아차리게 된다. 영화와 삶이 얼마나 깊이 연결되어 있는지, 아주 고요하고도 강렬하게 깨닫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