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더서는 일단 펴면 단숨에 읽을 수밖에 없습니다. 다른 데 한눈 팔 새 없이 손에 땀을 쥐게 만드는 내용이 전개되기 때문입니다. 구약성경에는(그리고 성경전서에는) 여성의 이름을 달고 있는 두 권의 책이 있습니다. 룻기와 에스더서입니다. 하지만 두 책은 달라도 너무 다릅니다. 에스더서는 한 마디로 말해서 사선(死線)에 놓인 에스더라는 여성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고대 근동의 거대 제국이라는 웅장한 스케일과 온갖 영광으로 장식한 왕궁이라는 화려한 무대 위에서 에스더는 히틀러의 악랄한 만행을 연상시키는 인종 학살(genocide)이라는 섬뜩한 주제를 한 몸으로 이겨내야 합니다.
에스더서는 문학의 시각으로 본다면 문학 중에 가장 빛나는 문학입니다. 에스더서의 내러티브에는 기가 막히는 역전이 반복되면서 몇 번이나 판이 뒤집힙니다. 어엿한 왕비는 폐비로 추락하고, 평범한 여성이 왕비로 비상합니다. 내로라는 세도가는 갑자기 사지로 떨어지고, 고령의 노인이 일약 제2인자로 승격됩니다. 에스더서의 스토리텔링은 역사와 인성이라는 양면의 틀과 함께 숨 막히는 긴박감 속에서 전개됩니다. 오랜 역사의 심연에서는 아말렉과 이스라엘 사이의 끈질긴 얽힘이 뛰쳐나오고, 악한 인간의 내면에서는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 권력에의 야망이 끓어오릅니다.
이런 에스더를 한병수 박사가 작심하고 설명해 줍니다. 이것은 일반적인 설교가 아니라 주해에 가까운 설교입니다. 에스더서 열 장을 30회의 설교로 분할하는데, 한 설교가 대략 다섯 절 전후로 구성되어 있어서 접근하는 데 부담이 없습니다. 한병수 박사는 설교마다 각 절을 따라가면서 내용을 설명해 주는 방식을 사용합니다. 이 장점은 문맥의 흐름을 그대로 살려준다는 것입니다. 이에 더하여 본문에 나오는 단어의 의미, 단어의 결합, 문장의 구조 등을 세밀하게 살칩니다. 이런 방식은 눈이 본문에서 벗어나지 않게 하는 효과를 자아냅니다. 구약 원어를 참조한 것도 중요한 장점 가운데 하나입니다. 마지막에 부록으로 넣은 사역(私譯)을 기존 한역 성경과 비교해서 읽으면 큰 유익을 얻습니다.
한병수 박사의 에스더서 설교는 성경을 문학적으로 재구성하고 있다는 느낌을 불러일으킵니다. 다르게 말하자면 에스더서 설교는 소설 같은 해설입니다. 장소, 시간, 역사적 배경, 환경, 장면의 분위기, 등장인물의 됨됨이, 동작, 사물 등 무엇을 묘사하든지 현란한 문학적 표현들을 한껏 구사하여 대하드라마를 시청하는 것 같은 짜릿한 인상을 줍니다. 에스더서의 문학이 한병수 박사의 문학으로 겹쳐진 것입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에스더서가 저 멀리 역사의 건너편에 있는 책이 아니라 우리의 눈앞에 현실감 있게 읽힙니다.
게다가 한병수 박사는 에스더서 설교에서 다다익선(多多益善)의 전략을 활용합니다. 자신의 역량을 통틀어 해설할 수 있는 만큼 최대한 해설합니다. 풍부한 수량(水量)을 가진 질 좋은 깊은 샘이 쉼 없이 물을 솟아내는 것 같은 필치로 글을 써내기에 에스더서 설교는 표현이나 내용이 한병수 박사의 이전 어떤 저서보다 더욱 넉넉하고 더욱 널찍합니다. 해설의 질량이 어찌나 무거운지 이 책에서는 일 초의 무게, 한 뼘의 무게, 찰나에 깃든 생각의 무게, 말 한마디의 무게, 발걸음 한 동작의 무게, 편지 한 장의 무게마저도 느껴집니다.
한병수 박사는 호화로운 문학 장치를 사용하는 중에 적실한 메시지를 찾아내며 현실적 적용점을 제시하는 것을 간과하지 않습니다. 이 책은 시대를 관통하는 통찰력이 깃든 설교입니다. 생각과 신학이 곁들인 주해입니다. 매일같이 모순, 갈등, 당혹, 압박, 위협 이런 것들이 버젓이 벌어지는 현실 속에서 신앙을 지키는 것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보여줍니다. 한병수 박사의 에스더 설교는 믿음을 지키는 것은 때때로 공간을 초월하고 시간을 탈피해야 할 것임을 알려줍니다. 믿음을 지키는 것은 일상, 재물, 부귀, 신분, 인격, 그리고 심지어 생명의 상실을 각오해야 할 것과 무관하지 않음을 가르쳐줍니다. 이런 점에서 에스더서 설교는 오늘날의 신자에게 에스더의 길을 따르도록 강력하게 촉구하는 결단 요청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