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9년 『문예중앙』을 통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으로 『나무들은 폭포처럼 타오른다』(『26세를 위한 여섯 개의 묵시』로 증보하여 재출간), 『바다로 가는 서른세번째 길』, 『영혼의 북쪽』, 『견자』, 『한 남자』,『이 격렬한 유한 속에서』, 『저녁의 마음가짐』을 썼고, 동시집으로 『여기서부터 있는 아름다움』을 썼고, 산문집으로 『위대한 평범』을 썼다.
시인에겐 말이 시가 아니라 ‘시가 말’이고, ‘시가 생활’이고, ‘시가 현실’이다. 언어력이 삶력이고 현실력이다. 새로운 언어가 삶을 발명하고 현실을 발명한다. 시가 미지의 말을 데리고 생에 불시착할 때,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연동돼 있는 지금 이 순간을 말로서 구현할 때, 시는 말의 새로운 씨앗(빛)이며 시인은 “빛을 전하는 밀사”(「정월에」)일 것이다.
그는 거의 모든 시에다 이야기를 깔아놓고 있는데, 그 이야기를 가만히 듣다 보면 “혼잣말 일구어온 이깔나무나 떡갈나무들”을 비롯해 “구름을 닮은 십사 세 토끼”를 만나게 되고, 동학 전쟁 때 강원도 산골로 숨어든 씨족의 얘기를 “천 리를 달아”나는 “호롱불 아래 숨결”과 함께 듣게도 된다. 그게 다인가 싶지만 그런 목소리 한켠에서 “공감하면 죽을 수도 있겠구나”란 한승태식 “반시대적 고찰”과 만나게 된다. “공감하면 죽을 수도 있겠구나”는 어떻게 읽어야 할까. 공감하기 힘든 세태/사태를 반어적으로 표현한 것일까, 공감하려면 죽음을 걸어야 한다는 말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