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영경의 소설에는 한 시대를 관통해온 사람들의 이야기가 있다. 근세사 속에서 캐낸 인물들과 더불어 좀 더 가까운 후인들을 불러들이는 회고의 서사는 시대를 초월하는 존재들의 실상을 그리고 있다. 「밤 깊은 마포종점」에서 화투장을 펼친 채 노랫가락을 흥얼대며 고달픈 생을 건너가는 여인들의 풍경은 스산한 초겨울 저녁을 연상시키지만 반면에 따스한 기류가 흐른다. 화투짝을 맞추면서 읊조리는 노래 한 소절에, 살아감의 고됨과 생의 비의를 녹여내는 인물들은 낙관과 달관의 경지를 보여준다. 「귀래」에 나오는 속계(俗界)와 선계(仙界) 사이에 있는 마을 ‘중촌’이 함의하듯이 인물들을 빚어내는 작가의 시선은 겸허하다.
황영경 작가의 문장은 속이 꽉 찬 가을배추이거나 잘 여문 호두 속 알맹이처럼 단단하고 감칠맛이 난다. 아름드리나무를 휘어 감는 덩굴식물같이 끈덕지고, 때로는 잘 벼린 비수같이 예리하면서도 은유와 상징이 풍부하다. 단편 미학의 장점이랄 수 있는 그 유려하고 격조 있는 문장의 작품을 읽으면, 절대 진실의 식감이 잠든 세포를 두드려 깨운다. 결코, 가볍지 않은 이번 소설집을 통해 독자는 깊은 강의 고요와 강바닥을 흐르는 물살의 강인함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