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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숙주는 장차 대궐에 들어가면 거기에 있는 책은 다 읽으리라고 작정했대. (중략) 중국어, 일본어, 몽골어, 여진어까지 자유로웠다고 해. 이런 신숙주의 외국어 실력은 세종이 훈민정음을 창제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겠지.집현전 절친 동기였던 신숙주는 세조의 편에 서고, 성삼문은 세종, 문종, 단종의 편에 서서 사육신으로 형장의 이슬이 되는 일대 파란을 겪는다. 성삼문 하위지 이개 박팽년 유성원 유응부 김문기까지 사칠신, 이라고도.언어천재 신숙주는 "쉬이 상하는" 숙주나물,이라는 불명예의 닉네임을 얻으면서도, 이후 세종, 문종, 단종, 세조, 예종, 성종, 무려 여섯 왕을 모시는 재상이자 학자로 살게 된다. 그러면서도,신숙주는 화려한 삶에 비해 생활은 매우 검소했어. 책을 손 에서 놓는 일이 없었으며, 여러 임금을 섬기며 재상을 지냈 는데도 재산이 전혀 불어나지 않았어. 1475년, 신숙주는 다음과 같은 유언을 남기고 숨을 거두었어. "장례는 지극히 간소하게 할 것이며 내 무덤에는 몇 권의 책만 넣도록 하라." 문충공 신숙주, 그는 누가 뭐래도 당대 제일의 학자였어.신숙주를 보다 자세히 알게 되어 좋았다만...,당대의 또 다른 언어천재 김시습은 평생을 승려로만 떠돌며 누구도 수습하길 두려워했던 사육신의 갈기갈기 찢긴 시신을 손수 거두어 노량진에 묻어주었다 한다.세조 뒤에서 간계를 쓰며 부를 축적했던, 한명회가 제일 싫어지는 대목이었다.#리딩스타트 #사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