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의 말이란 글의, 혹은 작품의 첫머리를 장식하는 것이어서 글과 작품에 대한 방향성을 일러준다. 이는 이나명 시인의 경우에도 예외가 아닌데, 이 작품에서는 “뱀의 등에 올라타서 뱀 비늘을 두 손으로 움켜잡고 스르르르 미끄러져 가고 싶다”고 한 부분이 이에 해당한다. 물론 이 구절에서 가고 싶은 지점의 단어, 곧 목적어가 생략되어 있는데, 그 감추어진 매혹의 장소가 5행에 이르면 자연스럽게 드러나게 된다. 바로 ‘그곳’이다.
그런데 ‘그곳’에 이르고 싶다는 욕망을 드러내긴 했어도 여기에 이르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닌 것처럼 보인다. ‘그곳’이 지금 ‘이곳’의 상대적인 것이라 했거니와 이를 통어하는 사유의 지대를 유토피아라 할 수 있다면, 이를 자기화하는 일이란 결코 만만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런 감각은 「시인의 말」에서도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는데, ‘그곳’에 이르고자 하는 서정적 자아의 행보가 정상적인 발걸음으론 쉽지 않다는 인식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걸어도 걸어도 내 두 발로는 가 닿지 않는 곳”이라는 담론이 이를 말해준다. 그러니까 이곳에 이르기 위해서는 일반적인 평범한 발걸음으로는 불가능하다. ‘그곳’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그러한 걸음의 행보가 아니라 ‘미끄러져’가야 하는 방법을 취해야 하는데, 이런 도정이야말로 고난이랄까 혹은 아픔의 정서와 분리되지 않는 것이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