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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리달마
인문/사회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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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리달마
인문/사회 저자
인도 출신이지만 남북조 시대에 중국으로 건너와 활동한 선승으로, 중국 선종의 초조(初祖)이자 석가모니 부처님으로부터 28대 조사로 꼽힌다. 산스크리트어로는 보디다르마(Bodhi-dharma), 한역하여 보리달마(菩提達磨), 또는 달마(達磨)라고 부른다. 남인도 향지국(香至國) 왕의 셋째 아들로 태어났으나 출가하여 반야다라 존자에게 가르침을 받았다. 520년경 중국 광주로 들어와 남경에서 양(梁) 무제(武帝)를 만나 문답한 후, 양자강을 건너 북위의 숭산(崇山) 소림사(少林寺)에 가서 9년 동안 벽관(壁觀)하였다고 한다. 소림사에 머물 때 훗날 선종 2조가 되는 혜가(慧可)와의 만남에 대한 이야기가 유명하다. 혜가에게 『능가경(楞伽經)』과 가사를 주면서 그의 법을 전하고 입적하였다고 한다. 행적에 대해서는 수많은 전승설화가 존재하지만 정확한 전기는 알려지지 않았다. “달마어록”이라는 이름으로 전해지는 기록은 보리달마의 법문을 모은 것으로, 그가 입적한 당시가 아닌 후대에 기록된 것이다.

작가의 전체작품

작품 밑줄긋기

p.114
달마는 동굴 벽을 향해 구 년을 앉아 있었다고 전해 진다. 그 일화의 진위를 따지자는 것은 아니다.다만 그 이야기가 오랜 세월 살아남은 데에는 이유가 있다. 사람 들은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던 것이다.무엇을 깊이 보기 위해서는, 그 외의 거의 모든것에 등을 돌릴 필요가 있다는 것을.벽을 본다는 것은 결국 벽 아닌 것들을 보지 않겠다는 선언이기도 하다.달마가 벽을 향해 앉은 것은 세상을 미워해서가 아니 다. 세상이 시끄러워서도 아니다.그가 본 진실은 단순하다. 마음이 흔들리는 동안에는 아무것도 제대로 보이지 않는다.그러니 흔들림의 원인이 되는 것들로부터 잠시 물러난다. 물러난 자리에서 비로소 자기 마음의 결을 본다.이 과정은 거창한 수행이 아니다. 일상의 작은 결단들로 충분히 시작할 수 있는 일이다.가령 아침에 일어나 휴대전화를 곧장 들지 않는 것 출근길에 이어폰을 빼고 한 정거장쯤 그냥 가는 것.점심을 먹을 때 화면을 보지 않고 음식의 맛에만 집중하는 것.누군가의 험담이 시작될 때 슬며시 자리에서 빠지는 것. 의견을 묻는 단톡방에 굳이 답을 달지 않는 것.이런 일들은 사소해 보이지만, 사실은 모두 같은 종류의 결단이다.지금 이 순간 내 마음에 들어오지 않아도 되는 것 들을 들이지 않겠다는 결단.세상의 소음에 자동으로 반응하던 회로를 한 번씩 끊어내는 연습.이것을 달마식으로 말하면 무관심의 힘이다.다만 이 때의 무관심은 냉소나 회피와는 다르다.냉소는 세상을 미리 무가치하다고 판정해 버리는 태도다. 회피는 두려 워서 멀리하는 태도다.그러나 달마가 권하는 무관심은 미워서도, 두려워서도 아니다. 그저 지금 내 마음의 자리에 들이지 않을 뿐이다.들이지 않는다고 해서 그것이 사라지는 것도 아니고, 그것을 부정하는 것도 아니다.다만 지금은 아니라는 것이다.지금 내 자리는 다른 것을 위한 자리라는 것이다.조용한 사람을 만나본 적이 있을 것이다.말이 적다는 뜻이 아니다.옆에 있으면 이쪽까지 차분해지는 사람.같이 있어도 서두르지 않게 되는 사람.그런 사람은 아마도 자기 안에 그런 자리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그 자리에서 그는 세상을 본다.그리고 그 자리는 결코 거창한 수행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그저 들이지 않을 것을 들이지 않는 오랜 습관으로 만들어진 것이다.세상의 소음을 차단한다는 말이 거창하게 들렸다면, 이렇게 바꾸어도 좋다.오늘 하루 굳이 알지 않아도 되는 일 하나를 알지 않기. 굳이 반응하지 않아도 되는 일 하나에 반응하지 않기. 단지 그것 하나로도 당신의 저녁은 달라질 것이다.그리고 그 저녁이 며칠 모이면, 당신 은 자기 안에서 처음 듣는 어떤 목소리에 가만히 귀를 기울이고 있을 것이다.

작가에게 한마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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