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없이 새로운 게 만들어지며 팽창하는 지구 밖에서는 그가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음을 스스로 아는 듯하다. 이곳 에서 우리 삶은 더없이 사소하지만 동시에 중대하다고, 되풀이되지만 동시에 유례가 없다고 당장이라도 일어 나 말할 것만 같다. 우리 존재의 의미는 크지만 동시에 무의미하다. 인류 위업의 정점에 도달하고 보니 그것이 얼마나 미미한가를 깨닫게 되고, 아무것도 아
피에트로는 이 그림을 이해했다. 적어도 그의 말이 숀으로 하여금 그림을 전혀 다른 눈으로 보게 했다. 이제 숀은 화가나 공주나 키 작은 사람이나 군주를 보지 않는다. 그가 보는 것은 개의 초상화다. 인간의 이상함에 둘러싸인 동물. 온갖 별난 소맷동과 주름 장식과 실크 옷과 자세, 거울과 각도와 시점 들. 이제 와서 보니 동물처럼 보이지 않으려 애쓰는 모습이 얼마나 우스운가. 그
인류의 미래는 이미 쓰였다고, 숀은 생각한다. 우주탐사 역사에서 이토록 흥미진진하고 중대한 때가 있을까, 그는 첫 문장을 써 내려간다. 그때 피에트로가 반대편 방으로 들어가려고 지나친다. 숀이 그에게 묻는다. 피에트로, 우주여행의 새 시대에 우리는 인류의 미래를 어떻게 써 내려가고 있는 걸까? 요란한 팬 소음에 피에트로는 실눈을 뜨고 손을 오므려 귀 주변을 감싼다. 목소
진보에 대한 딸의 질문이 옳다. 그때 그렇게 단언하며 궤변으로 질문을 종결짓지 말 걸 그랬다. 순수한 마음에서 우러난 질문이니 똑같이 순수한 대답을 해줘야 했는데. 이렇게 말했어야 했다. 나도 모르겠다, 얘야. 그게 진실이기도 했다. 신경질적으로 지구를 파괴하는 인류를 어떻게 아름답게 봐줄 수 있겠는가? 인간의 오만함은 실로 어마어마해서 그에 필적할 것은 인간의 어리석음
피에트로의 가슴팍에는 기울어지고 두근거리는 심장이 있다. 그는 심장 박동을 느리고 부드럽게 유지할 수 있고, 습관적인 공포나 공황이나 충동을 억제할 수 있고, 간절히 집에 가고픈 마음을 멈출 수 있고, 무의미한 방종을 억누를 수 있다. 침착하고 차분하게, 침착하고 차분하게. 호흡을 고르게 해 주는 메트로놈. 그런데도 이따금 기울고 두근댄다. 원하는 걸 원하고 바라는 걸 바라
이들이 있는 자리에서 정치의 영향력은 너무나 자명하게 보인다. 애초에 어떻게 놓쳤는지 의아할 정도다. 시야 구석구석에 빠지지 않고 그 힘이 드러난다. 중력이 지구를 구체로 빚어내고 조수를 밀고 당기며 해안선을 만들었듯 정치도 사방에 자기 흔적을 조각하고 형성해서 남겨 놓았다. 이들은 비로소 욕망의 정치를 목격한다. 성장하고 획득하는 정치, 더 많은 것을 얻기 위한 10억
얼마 지나지 않아 모두에게 욕망이 싹튼다. 이토록 거대하면서 작디작은 지구를 지켜야 한다는 욕망, 아니 (열정이 추동하는) 요구. 이렇게나 기적 같으면서 별나게 사랑스러운 존재라니. 대안이 마땅치 않으므로 지구는 의심할 여지없는 집이다. 무한한 공간, 충격적일 만큼 환히 빛나며 우주에 떠 있는 보석. 인간들이 서로 평화롭게 지낼 순 없는 걸까? 지구와도 잘 지내면 안 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