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사 유배지에서」는 비애를 통해 정신을 정련하고 실존의 심연에 이르는 과정을 형상화한 시이다. 고독과 한기의 감각 속에서 화자는 유배의 시간을 자기 존재를 갈고 닦는 시간으로 변환시킨다. 비애는 결핍이 아니라, 존재가 자기 자신을 증명하기 위해 견뎌야 하는 불가피한 통로이다. ‘살아 있는 정신은/ 얼음의 도가니에 벼리는 법’이라고 말해준다. 이 한 줄은 시 전체의 축이다. ‘얼음의 도가니’는 단절과 추위의 상징이지만 동시에 정신의 연마소다. 바람이 매운맛을 지니고, 초가의 서쪽 벽이 소금기 어린 제주 바람에 스치며 얇은 칼날처럼 얽히는 장면 속에서, 비애는 감각의 차가움으로 가시화된다. 한겨울 소나무의 수피와 얼음의 유리질은 고독한 정신의 표면을 닮는다. 이 시에서 미는 풍요가 아니라 절감의 미다. 버리고, 묶고, 세우는 행위를 통해 초가의 공간은 천장 없는 기도의 방으로 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