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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말
1부 / 나에 대한 아름다운 정의 바다 쪽으로 매화 곡예사와 새 눈송이를 쥔 손처럼 모란앵무 손등에 사슴 돌아오지 않을 물고기가 지나간 자리 같아 나비를 여러 번 접어 공중에 놓아둔다 밤의 난간 그 자리에 서 있는 바다 잠깐 잘못 읽거나 틀리게 읽음 나는 내 장미에게 책임이 있어요 우리는 모두 통증으로 연결되어 있다 수호신 슬픔을 생각하면서 미끄럼을 타요 2부 / 모든 잎은 바람에 가깝다 눈사람의 감정 흑백은 활짝 웃어요 백년을 만지다 비의 순서 볼링처럼 복잡한 세계 나와 귀 우리는 여전히 서어나무 숲 잘못된 자세를 교정하는 연습시간 1 나는 얼굴을 밤으로 지운다 마지막에 녹는 초코칩이 바로 나예요 여러 가지 색깔로 나는 쓸모없이 유연해져요 인생을 눈송이가 눈치챈 것 같아요 꽃잔디 목련 신발 나의 미아에게 3부 / 손은 뜨겁고 빛난다 물의 584번째 자세 가슴에 색이 고인 채로 이산 저산으로 물들어 갈 것 같아 사과를 놓친 사과나무의 기억 겨울비가 벌레처럼 서랍 속으로 들어간다 파도의 안쪽, 여덟 번째 슬픔 나침반 타투 새와 주파수 분홍 마스크 불가사의 물이 새는 집 부서지면서 별이 된다 얼음궁전 황사 길몽 바다가 오래된 날개를 퍼덕여요 물금 봄밤입니다 4부 / 지도에 없는 별을 그려 넣는다 아침과 가까워지는 게 좋았다 목련 무늬가 있는 식탁 우리들의 평화 단팥빵 매일의 마라토너 붉은 꿈 달팽이의 비밀 백마 모과나무의 끝말잇기 오늘은 햇빛 창문마다 장미 먼 이웃 위대한 숲 파랑새를 찾아보세요 매화가 오고 있다 매화가 밀릴 때마다 해설 이 모든 것이 마음의 문제라면 - 임지훈(문학평론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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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존재를 위해 자신의 내면을 내어주는 행동, 혹은 그렇게 다른 존재를 위해 내어준 공간을 마음이라 부른다면, 이모든 것은 결국 마음의 문제이다. 하지만 이것은 ‘단지’ 마음의 문제라 말할 수 없는 것이다. 피폐하고 삭막한 세계 속에서 통증을 감내하며 걸어갈 수밖에 없는 것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기하지 못한 채 거듭 세계와 불화하며 살아가는 것도, 그리하여 비극을 몸에 짊어지고 살아가면서도 끝끝내 자신의 내면을 지키고자 노력하는 것도, 모두 마음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어떤 대상을 위해 자신을 내어주고, 그 대상을 위한 자리를 지키기 위해 끝끝내 세계와 불화하는 것을 어떻게 ‘단지’라는 말로 축소시킬 수 있을까. 오히려 우리는 이 마음의 문제를 보다 포괄적이고 확장된 형태로 이해해야 하지 않을까?
예컨대, 마음의 문제야말로 피폐하고 삭막해진 이 세계를 근원적으로 변화시킬 가장 근본적인 형태의 질문이라고 말이다. 어쩌면 그것이 이 시집에 실린 시편들이 의구심에 시달리며 방황과 좌절을 반복하면서도 거듭해서 밝은 빛이 있는 방향을 향해 나아가는 까닭이 아닐까. 거듭 앓으며, 때로는 밭은 기침을 내뱉으면서도, 그와 같은 기침이 내가 올바른 길로 가고 있음을 알리는 유일한 표식임을 감지하면서, 자신의 몸과 마음을 기꺼이 다른 존재를 향해 내어줌으로써. ---「해설」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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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갖지 못한 꿈 같은 상상력의 보석상자를 가진 시인, 나는 그런 시인의 시를 만나는 꿈을 자주 꾼다. 그토록 간절하지만 늘 그리운 대상일 뿐인. 그런데 오늘은 참 오랜만에 꿈꾸지 않는 밤이 올 듯하다. 종횡무진이라는 말을 실감케 하는 상상력으로 번뜩이는 시를 읽었으니까. 최서진 시인이 새로 꾸리려는 시집 원고를 남 먼저 직관하면서 나는 야릇한 향기를 맡았다. 애잔한 그리움과 간절한 희망의 빛이 교묘하게 교차하거나 어울리는, 비로소맡아보는 새롭고 특이한 그의 시편들이 풍기는 향기. 사람의 느린 발로 걸어서는 도착할 수 없기에 새에 들려 새로운 새벽으로 가는 길을 노래하는 시인의 간절한 마음을 우리가 속속들이 다 알기는 어려울지라도 읊조리고 음미하다보면 점점 생생한 빛으로 다가오리라 믿는다. 그의 시들이 읊는 이의 마음에도 그윽한 향초 불을 켜주리라고 내다보니 흐뭇하기 이를 데 없다. 스스로 길을 내며 날아다니는 새처럼, 또는 무수한 시의 나무숲에 못 보던 새 나무를 심는 지극정성으로 시를 빚었을 시인을 기리면서 앞으로도 늘 새록새록 빛나리라는 믿음에 한껏 힘을 준다. - 이상호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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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최서진 시인의 미학적 시세계가 펼쳐져 있다. 문득 “곡예풍의 음악에 맞춰 춤추는 동안/ 공이 사라진다”. 그러니까 시인은 “외줄을 타는 거룩한 밤”, 그 모든 밤의 중심에서 자신의 시쓰기를 응시하고 있다. 한 치 앞도 예측할 수 없는 “아슬아슬한 나의 묘기”가 시쓰기인 것. 시쓰기가 시작되면 즉 “줄을 타면/ 브레이크가 고장 난 밤처럼” 오래된 약속인듯 “떨어지는 걸 멈출 수가 없”게 되는 것이다. 이어지는 “새와 바람 때문에/ 하늘을 날 수가 없어요”라는 문장은 투명하다. 그렇기에 “나의 소원은 떨어지지 않는 것/ 그곳에서 아침을 맞는 것”으로 확장된다. 시인은 “길을 공중에 만”(「곡예사와 새」중)드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시집을 읽는 동안 우리들의 눈앞에 세상의 모든 아침이 고요하게 펼쳐질 것이다. - 이은규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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