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검색을 사용해 보세요
검색창 이전화면 이전화면
최근 검색어
인기 검색어

이전

작가파일

변홍철
국내작가 문학가
출생
1969년 출생
출생지
경남 마산
작가이미지
변홍철
국내작가 문학가
1969년 경남 마산에서 태어나 대구에서 살았다. 고려대 국문과에서 공부하며 동인지 『저인망』으로 시작(詩作) 활동을 시작했다. 현재 도서출판 한티재 편집장으로 일하면서, 동국대 경주캠퍼스 국문과 겸임교수로 출판에 관해 강의하고 있다. 시집 『어린왕자, 후쿠시마 이후』, 산문집 『시와 공화국』이 있다. 대구경북작가회의 회원.

작가의 전체작품

작가의 추천

  • “쿠데타가 일깨워준 것은/아직 우리에게 길이 마련되지 않았다는 사실”. 시인은 저 치욕의 시간이 현실정치의 문제만이 아니라 근원적인 삶, 바로 ‘길’의 문제라고 성찰한다. “벌겋게 타는 숲”과 “흙탕물에 휩쓸린 도시”는 우리 시대가 “전쟁의 시간”이라는 증거 아닌가. 이 비참과 남루를 직시하며 시인은 “이제 더는/앞으로 갈 수 없을 것 같다”고 고백한다. 언젠가 “이번 차는 그냥 보내자”던 시인이 “뒤로 걷”기 시작할 때, 우리는 그 걸음에 주목하게 된다. 청유형 어미는 낮은 독백이 되었는데, 그 어조에는 견고해진 결기의 바람이 분다. 이 길이 절망과 비애로 빠지지 않는 것은 “긍지” 덕분이다. “가야 할 길이 남아 있는 존재만이/가진 긍지”. 평생 발바닥으로 ‘길’을 연 해월의 생애, 「말씀 하나 달랑 메고」를 지나 “호미 대신 기계를 숭배하지 말며” “모시고/살리고/가꾸고/절하고/꿈꾸”라는 「포고문」에 이르면, 이 길이 “앞을 보며 뒤로” 가는, 즉 현실을 오직 ‘바로 보기’ 위한 투쟁이자 기도의 여정임을 확인할 수 있다.
  • 데뷔 20년 맞아 기념 음반을 내고 그동안의 가수 활동을 돌아보는 콘서트도 의욕적으로 준비하고 있었는데, 코로나 상황 때문에 무대에 서는 것이 어려워졌다. 서울에서 14년째 운영해 오던 공연장인 ‘베짱이홀’도 열 수 없는 상황. 매월 500만 원이 넘는 임대료만 고스란히 나가는 어려운 형편에서, 무엇보다 가수로서 기약도 없이 팬들 만나는 기회를 갖지 못하는 답답한 여건 속에서, 그이 역시 우리 모두처럼 호된 한 해를 보내야만 했다. 그러나 이런 역경을 “다시 힘을 내어라”’(4집 수록곡)의 가수답게 꿋꿋이, 슬기롭게 잘 견뎌나가는 것이, 팬으로서 안쓰러우면서도 또 친구로서 내심 존경스럽기도 하다. 무엇보다 나는 그이가 이런 상황의 ‘본질’을 직시하고는 서울에서의 생활을 ‘정리’하고, 어머니 사시던, 그리고 지금은 오빠가 농사지으며 사는 전남 담양 창평을 자신의 삶과 활동, 소통의 새로운 터전으로 삼기로 했다는 데 탄복한다. 물론 다시 여건이 된다면, 지난 20년 동안 해오던 것처럼 전국을 누비며 작은 콘서트를 이어가겠지만, 그럼에도 농촌 지역인 창평의 자연과 이웃들 사이에 그이는 존재의 뿌리를 내릴 기세다. “대나무처럼”(8집 수록곡) 말이다. 요즘 한창 열심히 가꾸어 가고 있는 유튜브 채널 ‘박강수 TV’의 며칠 전 방송에서, “여기서, 농번기에는 오빠 농사도 거들고, 캄보디아 출신 새언니가 자신의 뿌리를 내리고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일거리를 함께 만들어 가고 싶다”고 향후 계획을 밝혔다. 얼마나 많은 시청자들이 그 말에 주목했을지 모르겠지만, ‘코로나 이후’의 삶에 대해 이런저런 생각이 많은 나로서는 그이의 이런 꿈이 예사롭게 들리지 않는다. 도대체 이런 품위 있고 의연한 생각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열석 장이나 되는 그이의 앨범과 손수 만든 130여 곡의 노래들이 이런 질문의 답을 찾는 열쇠일 것이다. 거기에, 이 책 『나의 노래는 그대에게 가는 길입니다』도 좋은 참고가 될 것 같다. 그이가 손 내미는 ‘행복한 동행’에 함께하고 싶다.

작가에게 한마디

클린봇이 부적절한 글을 감지 중입니다.

설정
  •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