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겁을 딛고 선, 한 인간과 연대하기. TBS만큼 찬란히 성공했다가 완벽히 절멸된 공영방송이 세상에 또 있을까. 불과 몇 년이라는 짧은 시간에 그 모든 일들이 일어났다. 새로운 실험을 위해 함께 했던 사람들을 나는 몹시 아끼고 사랑했으며, 그걸 삽시간에 무너뜨린 인간들의 잔혹함과 방조자들의 비겁함에 나는 치를 떨었다. 1990년에 개국한 TBS는 독특한 지역 공영방송이었다. 사실 공영방송으로서의 TBS의 역사는 그리 길지 않다. ‘서울특별시 미디어재단 TBS’라는 이름의 독립법인이 된 것이 2020년이니 길게 잡아봐야 고작 5년이다. 그전까지는 ‘교통방송’이라고 불렸고 흔히 말해 ‘시영방송’이었다. 내가 TBS에서 프로그램 진행을 맡고 있던 2020년 무렵만 해도 택시를 타면, 잠시 고민하다가 “기사님 ‘교통방송’으로 가주세요.”라고 말하곤 했다.
2020년에서 2023년까지 딱 3년을 TBS와 일했다. 새로운 종류의 미디어 비평 프로그램을 만들어보겠다는 취지였다. 개인적으로는 내가 전공한 언론학의 가치를 시민에게 돌려주고 싶었던 것도 있었고, 공영방송 연구자로서, 세계적으로도 대단히 특별한 사례일 수밖에 없는 이 방송사를 통해 제도실험과 참여관찰을 해보고 싶다는 의지가 컸다. 자치정부의 직접적 영향력에서 벗어나 미디어 인력 스스로에 의한 편집권 독립과 제작 자율성을 실천하는 일. 설혹 정권이 교체된다고 하더라도 독립적 미디어 제작은 유지되며, 그 독립성은 시민과의 직접적이고도 끈끈한 결합에 의해 지속되도록 하는 일. 그것을 이룰 수 있다면 연구자로서 꿈에 그리던 ‘진짜 공영방송’을 탄생시키게 되는 것이었으니까.
TBS와 함께했던 그 3년 동안 나는 이 꿈이 하나씩 성사되어 가는 모습을 보며 이루 말할 수 없는 희열을 느꼈다. 서울시로부터 ‘지원’은 있되 ‘간섭’은 없었다. 누구나 새로운 아이디어를 고안하려 했고, 그것들 중 상당수는 현실이 됐다. 제작진들은 소박하지만 열정과 재능이 있었으며, 무엇보다 겸손했다. 시민과 연결된 감각을 가진 이들이었기 때문이었다. 거대 공영방송인 KBS나 MBC 속에 있을 때에는 얻을 수 없었던 이 경험. 큰 땅에 큰 건물 거대한 설비들 속에서는 내가 기껏해야 ‘도구’가 된 느낌이었다면, TBS의 작은 땅 작은 건물 간소한 설비들 안에서 나는 한 ‘주체’로서 시민들의 의지와 대면했다. 큰 회사들이 사주는 푸짐한 밥을 얻어먹을 때보다, 내 지갑을 열어 질박한 술과 안주를 TBS 제작진들에게 사줄 때가 더 기쁘고 행복했다.
이 행복했던 실험은 3년을 넘기지 못했다. 시장이 바뀌자 ‘간섭’을 하되 ‘지원’은 없는 시스템으로 뒤집혔다. 이유는 단 한 가지. 〈김어준의 뉴스공장〉이 지닌 편향성이었다. 나름 이름값을 가진 공영방송 연구자로서 내가 말했다. 각자의 주관으로 판단한 편향성 여부로 방송사 하나를 날리는 만행은 세계사적으로도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거라고. 편향성을 감히 ‘그들’이 재단한다는 것도 어불성설이지만, 고작해야 예산 규모 400억 원에 불과한 ‘시민방송’의 목줄을 무려 그 1000배가 넘는 45조 원 예산의 서울시가 쥐고 흔든다는 건 파렴치한 일이라고. 하지만 바로 그 ‘있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 서울시가 돈을 못 주겠다면 직접 나서서 후원을 하겠다는 시민들이 줄을 서고 있었는데도, 시민 후원은 받아 쓸 수 없게 하고, 광고 등의 독자적인 재원 창구는 막아 놓고는, 지원 조례 폐지를 통해 밥줄을 끊었다. 시쳇말로, “가질 수 없다면 부숴버리겠다”는 막장 드라마 대사가 현실이 되었다.
이 과정에서 TBS는 거의 모든 이들에 의해 버림받았다. 특정 프로그램의 편향성을 들먹이던 서울시의회와 서울시는 공공자산을 자기 정파의 이익을 위해 활용했다. 이렇게 ‘객관적으로 명백한 편향성’이 더 문제인가 아니면 의견과 평가가 다양할 수밖에 없는 방송 프로그램의 ‘편향성 시비’가 더 문제인가? 이 뻔한 질문에 답을 하는 이가 없었다. 나는 저 뻔뻔한 자들의 명백한 악의보다도 짐짓 정의롭고 공정한 척하는 자들의 냉소적 방조가 더 무서웠다. 〈김어준의 뉴스공장〉에 들이밀던 편향성 잣대를 그들 스스로에게 적용했을 때, 그들의 명예와 밥줄은 온전할 수 있을까? 이 뻔한 질문에도 그들은 답을 하지 않았다. 그렇게 해서, 한 즐겁고 아름다웠던 ‘시민의 방송’이라는 실험이 잔혹하게 바스러졌다.
송지연 작가가 이 모든 과정을 고스란히 기록했다. 나는 그의 우직함과 공의로움에 매번 놀란다. 무서웠을 텐데, 괴로웠을 텐데, 분노보다 더 힘든 배신감을 딛고 어떻게 그 자리에 아직까지 서 있을 수 있었던 것일까. TBS 회의실에서 만났던 그는 최초로 정규직 전환을 이뤘던 베테랑 작가였고, TBS 복도에서 마주쳤을 땐 노조위원장이 되어 있었으며, TBS 문제를 다루는 세미나 장과 거리에서 만났을 땐 투사로 변해 있었다. 모든 이들이 등을 돌리고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상태로 TBS가 버려져 있는 동안, 그는 단 한 번의 물러섬도 없이 호소했고 싸웠다. 그 어느 언론학자보다도 명징한 언어로 TBS의 문제를 규정하고 증언해낸 이 책을 읽으며, 그가 자신의 심장을 꾹꾹 눌러 하나하나의 글자로 바꿔냈음을 보았다. 아무도 기억하려하지 않는 그 처참한 사건들은 이렇게 절절한 피의 기록이 되었다.
그래서, 이제 TBS는 어떻게 되는 건가? 솔직히 잘 모르겠다. 아직도 그 자리에서 버티고 있는 직원들도, 그 싸움을 여기까지 끌고 온 송지연 작가 스스로도 감히 무언가를 예상하거나 기대할 수 없을 테다. 잠시 중단되었던 ‘시민의 방송’의 꿈을 이어가려 한들 옛 친구들이 다시 모일 수 있을까? 설혹 새로운 실험이 전개될 수 있다고 하여도, 또 새로운 폭군이 등장하여 더 처절히 짓밟히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있을까? 그 잘난 현업자들의 비겁함과 언필칭 전문가들의 거드름은 예나 지금이나 다를 바 없을 텐데?
하지만 이것 하나만은 알겠다. TBS의 남은 구성원들이 어떤 꿈을 꾸건, 그들에게 어떤 미래가 펼쳐지건 송지연 작가만큼은 여전히 우직하고 공의로울 것이다. 이런 비릿함을 참고 견뎌낸 이라면 그 어떤 흉포함 앞에서도 스스로를 잃지 않을 테니까. 그리고 나는 그런 송지연 작가와 함께 멋지고 발랄한 ‘시민 지향의 프로그램’을 언제고 만들어볼 생각이다. 그게 이 바닥을 사는 사람들의 자존심이자 기쁨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