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 3국을 대표하는 작가들
나쓰메 소세키, 루쉰, 홍명희와 이광수가 제국의 수도 도쿄에 찍은 부산한 근대의 발자국
일상의 감각이 너무 빨라 절로 탄식이 나오는 시대에 김남일이 글로 그린 근대 풍경을 읽노라니 놀랍게도 지금 못지않은 속도감에 현기증이 난다. ‘20세기 전후 도쿄’라는 탄광에서 김남일이 채굴해온 장면 속에는 익히 아는 듯해도 실상 박제나 다름없던 인물들이 생생히 살아 움직인다. 그들은 교과서에서 배운 대로의 걸출한 위인이 아니라, 고심참담 조바심 내며 매일매일을 살아내 어떤 운명의 성좌에 다다른 이들이다.
1868년 메이지 유신을 단행한 일본의 수도 도쿄. 이곳에 몰려든 조선인과 중국인, 베트남인 들의 달음박질에는 열등감, 전통과 야만, 모던과 천박의 간극 속에 얼크러진 민족주의, 제국주의, 오리엔탈리즘, 인종학 등이 번뜩인다. 도쿄의 서양식 거리를 걷는 유학생들의 비장과 황홀, 조바심, 환멸, 질투는 21세기 최첨단 문명의 거리에서 종종 길을 잃는 우리의 그것들과도 다르지 않다. 그래도 이광수, 최남선, 홍명희, 나쓰메 소세키, 나가이 가후, 루쉰 등 20세기 초 도쿄에서 함께 숨쉬던 동아시아 각국의 청년들은 국경을 넘어 새로운 세기를 이끄는 선도자로서의 결기를 잃지 않았다. ‘나’와 ‘조국’을 생각하던 청년들의 상념을 따라 길은 우에노 공원으로, 요시와라 홍등가로, 또 어쩔 수 없이 식민지 경성으로도 뻗어나간다. 갱도처럼 낯설고 어두운 이 길, 그러나 두어 걸음만 들어가보면 이내 알게 된다. 우리 시대의 점잖은 이야기꾼 김남일이 환등기를 돌려 눈앞에 깔아준 이 길이 『천일야화』에 버금가는 다정한 수다의 비단길임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