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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옥
국내작가 문학가
출생
1977년 출생
출생지
전라남도 고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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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옥
국내작가 문학가
1977년 전라남도 고흥에서 태어나, 2001년 『시와 반시』를 통해 등단했다. 시집 『악공, 아나키스트 기타』 『웃고 춤추고 여름하라』 『고래가 되는 꿈』 『밤이 계속될 거야』 『달나라의 장난 리부트』와, 산문집 『서정적 게으름』, 시론집 『기억해 봐, 마지막으로 시인이었던 것이 언제였는지』를 펴냈다. 노작문학상, 김현문학패 등을 수상했다.

작가의 전체작품

작가의 추천

  • 치차(齒車)에서 증기기관으로 이동, 자본주의와 합리주의가 태동한 시점이다. 정우신은 타는 물인 증기, 바로 그 증기로 움직이는 ‘발동기’(미셀 세르)의 질서에 의심의 눈초리를 던진다. 배합하고 복제한 결과로 태어난 신체는 대상화된 ‘물질’이다. 주관화된 신체인 ‘살’의 논리로 보자면 인간은 어떠한 질서에도 예속되지 않는다. 정우신의 ‘비금속’은 변형의 논리를 천착한다. 기관이 생산하는 에너지는 “불 속에서 다가오는/나의 형상에/기름을 부어”(「복수」)서, “내가 아닌 것들을/달고”(「분신」) 다니는 신체를 연결하여 에너지를 생산한다. 육체는 “그림자를 생산하는 터널”(「상대성」)이다. 인간은 어디에도 없다. 발동기가 생산하는 에너지에는 분배된 흐름이 도사리고, 분배의 질서는 음험하다. “동일하게 나눠 가질 수 없는 높이와 바람과 호흡”(「지구」) 속에 육체는 배치된다. 현실을 재현하는 ‘문장’은 불가능하다. 에너지는 불변하지만 편중되기 때문이다. 식어 버려진 것, 차가운 것은 운동하지 않는다. 에너지를 발산하지 않기 때문이다. 요컨대 그러한 오브제들은 스스로 이행하지 않는다. 재현은 편견이다. 그러나 살을 가진 모든 것들은 고요히 정지한 순간에도 ‘힘’을 발산한다. “현실이 재현되지 않도록 주의하십시오”(「프랙탈」). 정우신의 문장은 바로 여기서 첫걸음을 뗀다. “더 살아야 한다/생각하면//모든 비유가 쓸모없는 것 같다”(「밀항」). 비유를 동원해 오브제의 질서를 전유하는 방식은 폐기된다. 어떻게 쓸 것인가? 살은 “불을 쬐면서 서로의 그림자를 바꿔”(「비금속 소년」) 입는다. 진화라는 직선적인 패턴을 벗어나는 살의 논리는 재현의 질서 바깥에 있다. 빛에 의해서 가시화되는 장면, 절단하고 횡단하는 동선에 의해 포개지고 분할되는 형체, 그 속에서 풍경은 사로잡히고 음영은 새 나간다. 살은 “물로 되어 있지만 죽은 물의 감정을 재현하지 못”(「희생양」)하기 때문이다. 정우신은 “미래는 멋진 여백”(「유기체」)이라고 쓴다. 그러고는 덧붙인다. “사랑처럼 내가 볼 수 있는 모든 색을 가져가”(「유기체」) 살로 재현하는 에너지 이전의 세계 속에서 기관과 기관의 접속부를 찾아 연결하는 방식으로, 접붙이기의 ‘접(接)’의 논리로, 절합(articulation)의 전략으로 세계 그 자체와 맞갖는 살의 문장을 쓰기. 요컨대 정우신은 살을 확장하는 시에 미래를 건다. 인류는 이미 발동기의 세계 이후를 살고 있다.
  • ‘-은/는’, ‘-을/를’, ‘-처럼’, ‘-이다’…… 앞에서 ‘-’를 떼면 종속성이 사라진 자명한 대상 실체가 된다, 수평선의 곡률이 ‘바다’를 만들듯. 단어가 아니라 말뭉치가 주부(主部), 술부(述部)가 된다. 규칙은 허물어진다. 자유가 찾아올 것인가? 완강하고 전제적인 구조가 남는다. ‘그’ 구조, “그는 그들의 복수(複數)성을 띤다.”(「증식」) 지향이나 목표는 ‘우연’이다(「낙화의 방향」). 위치와 속도를, 원인과 결과를 동시에 측정할 수 없으므로. 가능성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그 결과, 미래는 제한된다. 불확정성 또는 ‘메멘토 랑가주’?! 아직 쓰지 않은 흔적을 지운 뒤, 어디에도 없는 마지막처럼 “처음은 처음을 반복”한다(「목련나무 아래서」). 언어는 ‘실재’가 아니라 속성을 말할 수밖에. 애초에 그것은 정치 만평이었다. “오리의 절반”이거나 토끼의 전부일 그것(「오리-토끼」). 응시하고, 중얼거리고, 중얼거림을 중얼거리다 결국 침묵(「파도에 대해 실패하기」). 교착성, 직접성, 복수성…… 문법 단위를 하나씩 삭제하고 보아도 “존재하, 는” 자명함에 대해 쓰는 수밖에(「존재하, 는 나무」). 무던하게 또 끈질기게. ‘없는 것이 있는 것의 질문’이므로, 기호와 기호 사이에서 시는 한없이 지연되고 있다(「날개깃 하나」). 이름을 부르기도 전에 사로잡힌 꽃, “억류된 꽃의 한 귀퉁이에서/누군가/아름다움에 진압되고 있다”(「꽃 노점상」). “그는 공백의 목덜미를 쓰다듬고 있다”(「개를 쓰다듬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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