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는’, ‘-을/를’, ‘-처럼’, ‘-이다’…… 앞에서 ‘-’를 떼면 종속성이 사라진 자명한 대상 실체가 된다, 수평선의 곡률이 ‘바다’를 만들듯. 단어가 아니라 말뭉치가 주부(主部), 술부(述部)가 된다. 규칙은 허물어진다. 자유가 찾아올 것인가? 완강하고 전제적인 구조가 남는다. ‘그’ 구조, “그는 그들의 복수(複數)성을 띤다.”(「증식」)
지향이나 목표는 ‘우연’이다(「낙화의 방향」). 위치와 속도를, 원인과 결과를 동시에 측정할 수 없으므로. 가능성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그 결과, 미래는 제한된다. 불확정성 또는 ‘메멘토 랑가주’?! 아직 쓰지 않은 흔적을 지운 뒤, 어디에도 없는 마지막처럼 “처음은 처음을 반복”한다(「목련나무 아래서」). 언어는 ‘실재’가 아니라 속성을 말할 수밖에. 애초에 그것은 정치 만평이었다. “오리의 절반”이거나 토끼의 전부일 그것(「오리-토끼」). 응시하고, 중얼거리고, 중얼거림을 중얼거리다 결국 침묵(「파도에 대해 실패하기」).
교착성, 직접성, 복수성…… 문법 단위를 하나씩 삭제하고 보아도 “존재하, 는” 자명함에 대해 쓰는 수밖에(「존재하, 는 나무」). 무던하게 또 끈질기게. ‘없는 것이 있는 것의 질문’이므로, 기호와 기호 사이에서 시는 한없이 지연되고 있다(「날개깃 하나」). 이름을 부르기도 전에 사로잡힌 꽃, “억류된 꽃의 한 귀퉁이에서/누군가/아름다움에 진압되고 있다”(「꽃 노점상」). “그는 공백의 목덜미를 쓰다듬고 있다”(「개를 쓰다듬는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