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련된 혐오의 시대가 우리의 눈앞에 있다. 부정적 감정은 반드시 피해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가득하다. 내 안에서 태어나 외부와 내부를 찌르는 지독한 힘이 공기 중에 떠돈다. 그러한 상황에서 탄생한 강민영의 시는 ‘나’로부터 주변에 만연한 불화의 순간들을 응시하며 기록한다. 언제나 승리와 이득만을 조명하는 시대에서 고통과 불화를 기록하는 것은 그 부정적 감정을 외부로 터뜨리지 않으려는 시인의 안간힘이다. 이것이 시집이라는 결정(結晶)이 되는 것이라 믿는다. “빠져나오려 발버둥 쳤던/미세한 기포가 있으면/진짜,라는 인증”을 받는 ‘호박(琥珀)’처럼 이 투명하고 단단한 고통은 “천 년 후”를 건너갈 것이다(「호박(琥珀)」). 시인은 죽은 화분을 내다 버리면서, 다시 새 화분을 들일 것이다. 우리의 삶에 “아무것도 하지 않아야/좋아지는 게 있다”고 시인은 말한다(「교신」). 지리멸렬한 삶과 고난뿐인 세상에서 시인은 “늑대를 기다리며 해안을 서성거리는 물개/거북이의 눈물을 마시는 나비” 같은 풍경만을 발견한다(「이상한 일」). 이토록 싫고 답답한 세계를 기밀한 눈으로 관찰하는 시인의 눈에는 고통에 앞선 사랑이 도사리고 있다. 모두가 달려가느라 인성이 마모되고 있는 세계를 살아 내면서, 시인은 우리에게 전언을 준다. “빨리 달릴 때는 풀뿌리도 덫”이 되는 세계이다(「졸음운전」). 기울어진 세상을 온전히 보려고 몸을 비틀어야 하는 시인은 고통과 가까울 수밖에 없다. “나이테 일부를 도려낸 나”는 그럼에도 세계의 아픔을 제 것처럼 품는 것이다(「자궁이 쓰라리다」). “한쪽 문이 닫히면/다른 쪽 문이 열린다는 말은 거짓”임을 시인은 체험을 통해 알고 있다(「닫힌 문 안에 닫힌 문이」). 그럼에도 시인은 자신의 허물까지 닦아 세운다. “잘못한 수십 가지 목록을/낱낱이 조회하는 중이다”(「회초리」). 이 고통의 육화가 바로 시인의 존재다. 이렇게 제 고통으로, 존재로 세상의 멸망을 연착시키는 시인이 있다. 시의 고통과 현실의 고통을 오가는 시인의 “겉울음”과 “속울음”이(「매미」) 여기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