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1940년대 샌프란시스코의 풍경을 담은 기록 영상을 보았다. 그 시대 평범한 사람들이 걷고 대화하는 일상을 보며 알 수 없는 그리움을 느꼈다. 『고요의 바다에서』를 읽고 난 뒤의 느낌도 그러했다. 5백 년에 걸친 시간을 내가 살고 통과한 듯한 기묘한 상실감을 느꼈다. 작가 에밀리 세인트존 맨델은 이 담대한 시간대 안에서 시간 여행, 평행 우주, 시뮬레이션과 현실, 관료주의, 역병 등의 소재들을 유려하게 풀어낸다. 1910년대, 항구 근처 하숙집에서 무료한 시간을 보내는 백수부터 2400년대, 달 식민지 호텔에서 일하는 걸 지루해하는 직장인까지, 5백 년에 걸쳐 등장하는 인물들은 현재의 우리를 닮아 있다. 그들은 무언가를 기다리지만 그것이 무엇인지 모른다. 작가는 마치 묘지에서 지나간 시간을 관조하듯, 세상의 아름다움과 슬픔을 투명하게 묘사한다. 그리고 삶의 틈 속에 빠진 인류에게 사려 깊은 러브레터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