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에서 자란 나는 밥상머리에 앉을 때마다 “대통령감은 김대중뿐"이며 "찍을 수 있는 당은 민주당뿐”이라는 분위기에서 자랐다. 어린 게 뭘 안다고, 초등학교 때부터 김대중 후보를 뽑아야 한다며 홀로 선거운동을 했고, 중학교 때는 조부와 함께 연설 현장을 쫓아다녔다. 관련 저서를 닥치는 대로 읽은 건 덤이다. 현실은 매정했다. 패배는 습관이 되어야 했고, 세상 사람 마음, 특히 경상도 사람 맴이 내 맴 같지 않음을 세월 속에서 체감했다. 짝사랑은 지겹게 졌다. 지지고, 볶고, 싸우고, 분열하는 게, 전매특허처럼 보였으나, 결국 이 모든 건 ‘과정’이었다. 지금 민주당은 정책으로는 해답을 내고, 위기 앞에선 하나로 선다. 다만 이 또한 하나의 ‘과정’일 뿐이다. 이 짙은 희로애락의 발걸음을 찬미도 질타도 없이 담백하게 직시한 한 권을, 어찌 마다할 수 있을까. ‘박혁’이라는 고급 필터로 정제한 민주당의 역사는 에스프레소의 첫 모금처럼 쓰지만, 뒤이어 스며드는 단맛이 깊다. 이 여운 속에서 민주당을 사랑하고 때론 미워한, 모든 이들이 걸어온 시간의 향기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