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학교 독어독문학과와 베를린 대학교 노문학과 및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 현재 고려대학교 노어노문학과 명예교수이다. 지은 책으로 『소련 노래시 연구』, 『빠스쩨르나끄』(공저), 『뿌슈낀의 서사시』(공저) 등이 있고, 옮긴 책으로 『벨킨 이야기·스페이드 여왕』, 『푸시킨 선집』, 『끝없는 평원의 나라의 시들지 않는 말들』, 『슬라브 문학사』, 『보리스 고두노프』 등이 있다.
책에는 많은 페이지들이
뚜렷한 손톱 자국을 간직하고 있었다.
주의 깊은 처녀의 두 눈이
그 자국들에 더 생생하게 향했다.
타티아나는 전율하면서
오네긴이 어떤 생각과 어떤 관찰에서
충격을 받았는지를
어디에 말없이 동의했는지를
알게 되었다. 페이지 가장자리에서
그녀는 그의 연필이 남긴 흔적을
만나기도 했다. 짧은 문장들,
십자 표시들 또 물음표들로써
어디에나 오네긴의 정신이
저도 모르게 스스로를 드러내고 있었다.
그러나 우리 사이는 이제 이만한 우정조차 없다.
우리는 모든 선입견을 분쇄 박멸해 버렸다.
그 결과 우리에게 모든 타인은 제로이고,
우리 자신만이 제일이고
모두는 나폴레옹을 모범으로 삼는다.
수천만의 두 발 달린 짐승은 누구나
우리에겐 그저 도구일 뿐이다,
감정이란 야만이고 우스운 것일 뿐이니까.
오네긴은 초연하게 집에 틀어박혀서
하품하며 펜을 잡고 글을 써 보려 하나
힘든 일은 딱 질색인지라
그의 펜에서 나오는 것은
전혀 없다, 정말 한 줄도 없다.
그래서 그는 기회 있을 때마다
논쟁을 해 대는 무리들77) 축에 끼지 않았던 것.
이들에 대해서는 비판하지 않겠다.
나도 그들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