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세는 역설적이다. 인간 활동으로 인해 근본적으로 변모한 지구를 지칭한다는 점에서 행성적 차원의 사고를 요구하지만, 그 책임과 피해가 시공간적으로 불균등하게 분포한다는 점에서는 국소적 차원의 관점을 요청한다. 이 책은 인류세를 현장에서 감각하고 관찰하고 이해하며 살아가기 위한 친절한 안내서다.
조각보처럼 인간이 만든 인프라가 자연과 뒤엉켜 특정한 양상을 만들어내는 지역을 이 책은 ‘패치’라 부른다. 이 책이 주목하는 것은 이러한 패치에 구속되지 않고 오히려 그것을 통로 삼아 자유롭게 이동하고 증식하여 전 세계로 퍼져나가는 균류·동식물과 같은 인간 외 존재들이다. 인류세의 주인공은 인간도, 자본도, 총칼도 아니라 이처럼 경계를 ‘이탈’(feral, 離脫)하는 생명체라는 것이 이 책의 핵심 주장이며, 이는 코페르니쿠스적 발상의 전환을 요구한다. 이러한 전환을 위해서는 과학자, 인문사회학자, 예술가의 협업이 선택이 아니라 필수임을 이 책은 잘 보여준다. 너무나도 인간 중심적인 정치, 경제, 역사, 예술에 한계를 느껴온 모든 이에게 신선한 충격을 안겨줄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