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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부영
국내작가 인문/사회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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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부영
국내작가 인문/사회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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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74년 10월 24일 동아일보 기자들이 자유언론실천선언을 선포한 지 2024년 올해로 50년이 되었다. 이 선언을 계기로 자유언론 투쟁이 시작되었고 시민들은 격려 광고로 응원했지만 1975년에 동아일보에서 130여 명, 조선일보에서 30여 명의 언론인이 강제 해직당했다. 하지만 명색이 한국을 대표한다는 언론사들이 지금까지 사과 한마디 없다. 조그만 성냥공장만도 못한 언론사주들이다. 이들이 지금도 이 나라를 대표하는 언론이라고 자랑한다. 50년 전 언론의 사명을 다하려고 발버둥 쳤던 기자들과 그들을 열렬히 응원했던 시민들이 새삼 떠오르는 까닭이다. 그런데도 동아일보 언론투쟁을 다룬 문학예술작품이 별로 없다는 게 기이하고 아쉬웠다. 이번에 대학의 광고홍보학과 현직 교수가 광고인을 주인공으로 해서, 그때 일을 다룬 소설을 썼다고 해서 반가웠다. 그동안 동아투위 역사를 다룬 글들은 주로 기자들의 관점에서 쓴 것이 대부분이었다. 동아일보 언론투쟁은 기자들의 투쟁이기도 하지만 격려 광고를 냈던 수많은 이름 모를 시민들의 항거였다. 그 이름 없는 시민 중 한 사람이었던 동아일보 광고국 직원을 주인공으로 다룬 점이 인상적이었다. 한국언론사에서 ‘동아일보 광고사태’로 불리는 만큼, 동아일보 광고국 직원의 관점에서 그때 일을 문학적으로 형상화하는 것은 의미 있는 접근방식으로 보인다. 동아일보에 입사하여 기자 생활을 시작한 필자는 1974년에 한국 언론의 첫 노동조합인 동아일보 노조 결성에 참여했고, 같은 해 10월에 ‘10.24 자유언론 실천 선언’에도 가담했다. 그때까지 천관우 전주필의 지사적 자세를 따르던 젊은 기자들은 1960년대 초의 4월 혁명과 6.3 한일협정 반대운동에 참여했던 동시대 의식을 강하게 지니고 있었다. 1975년에 해직된 필자는 동료들과 동아투위(동아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를 결성했다. 동아일보에서는 군사독재가 끝나도 130여 명의 해직자들을 복직시키려 하지 않았다. 그동안 민주화 운동에도 참여하고 새로운 언론의 길도 모색했다. 그 길은 언론인으로 복귀하는 길과 정치운동에 참여하는 길로 나뉘기도 했다. 정치운동과 사회운동을 경험한 뒤, 옛집인 언론 운동에 다시 발을 담그면서 작금에 벌어지는 언론과 미디어 현실에 대해 더 많이 생각하게 되었다. 언론자유가 50년 전 수준으로 다시 퇴행하는 것 같아 안타깝기 그지없다. ‘음수사원 굴정지인(飮水思源, 掘井之人)’이라는 말이 있다. ‘물을 마실 때는 그 물의 근원을 생각하고 우물을 판 사람을 생각하라’는 뜻이다. 오늘날 대한민국이 누리는 정치적 자유와 경제적 풍요가 누구에 의해서 어떻게 시작되었는가를 생각하며 과거의 역사를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아무쪼록 이 작품을 특히 젊은 세대들이 많이 읽고, 우리 현대사의 기본가치인 자유와 민주의 성취과정을 깊이 되새겨보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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