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여자들만 사는 건물이 있다. 여자들만 남아 평화롭던 공공 오피스텔 ‘은청지구’에 비여성 입주자가 들어오며 이들의 일상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한다. 같은 여자끼리라면 뭐든 통하겠지 하고 펼쳐 들었다가, 인물들에게서 내내 미운 구석을 발견했다. 하지만 끝내 아무도 쉽사리 미워하지 못한 채, 그들 속에서 나 자신을 발견하고야 말았다. 밉상들에게 이토록 공평하게 서사를 주고, 곁에 머물게 만드는 작가는 정말 오랜만이다. 인물들을 불완전한 채로 내버려 두는 이 시니컬한 다정함은 어디서 기인하는 걸까. 청예 작가는 인물들을 판단하고 정답을 주는 대신, 읽는 이를 심판석과 피고석에 동시에 올려놓는다. 마치 러닝타임은 순삭인데 엔딩크레딧이 다 사라질 때까지 일어설 수 없는 영화처럼, 여러 생각이 깊이 맴돈다. 마지막 장에 다다르자 도대체 내가 뭘 읽은 걸까 싶었다. 나는 홀린 듯 다시 첫 장으로 돌아갔고, 온몸에 새 힘이 생겨나는 기분을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