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정욱 시인에게 ‘시’란 먼지처럼 미미한 존재들이 세상에 남긴 발자국을 기록하는 일이다. 시인은 홀로 고독하게 걸어가면서도 타인과의 화합을 시도하고, 시련 속에서도 다시 일어나는 인간의 불멸성을 예언자적 목소리로써 증명해 낸다. 삶의 고통과 연대의 흔적을 종소리처럼 세상에 퍼뜨리기, 그리하여 먼지다운 정직함으로 삶의 무게를 받아쓰는 일. 시인이 고백한 ‘시’의 본질은 바로 여기에 있다. 따라서 그의 시는 먼지가 가진 엄정과 정직으로 세상의 면면한 연대와 유대를 따르겠다는 서약이고, 삶을 온몸으로 살아낸 자가 마땅히 남기고 가는 “모래밭에 찍힌” 실존의 흔적이다.
나정욱 시에서 사유의 변증법이란, 한 작품의 방식과 의미를 넘어선, 시인의 시적 근본 지향까지도 아우르는 이중적인 개념을 지녔다고 할 수 있다. 특이하게도 그의 시는 한 작품에서 품어 형상화한 사유를 다른 작품으로 넘기거나 옮겨서 이 작품이 저 작품을, 혹은 저 작품이 이 작품을 계시하거나 극복하는 일을 달성하도록 돕는 수단으로 활용한다. 이는 “세계는/세계를 인식하는 존재의/세계이다.//세계는 하나가 아니라/세계를 인식하는/존재의 수만큼 존재한다.”라는 ‘시인의 말’에서 이미 암시된 바 있다. 가령 “이걸 사랑이라고 하지 않으면/사랑이란 도대체 이 행성에 있을 수 없다 사랑이/없다면 이 행성의 존재 이유는/무엇일까”(「사랑의 행성」)란 질문은 “우리들 사랑은 왜 이렇게 허약한가”(「죽음으로도 어쩔 수 없는」)란 탄식과 상반된다. 하나의 사유는 작품 이곳저곳에서 연작만큼이나 반복적으로 이루어지고, 개별 작품의 의미를 떠나 흩어져 있는 파편적 사유들만을 모아놓더라도 너끈히 모종의 총체적 사유를 몽타주처럼 구성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