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단순한 유전학 서적이 아니다. 과학이라는 중립의 가면을 쓴 채 인간 삶을 통제하고 인간 존엄을 옥죄었던 결정론의 성채를 차갑게 무너뜨리는, 서늘하면서도 도발적인 지적 선언문이다. 저자는 인간의 모든 현상과 행위를 물질적 원인으로 환원하려는 본질주의적 편향을, 인간이 스스로에게 가했던 은밀한 폭정이라 부른다. 그 왜곡과 오류의 심연을 응시하며 해방을 모색하는 과정은, 과학의 울타리를 넘어 인간의 근원적 자유를 탐사하는 원대한 여정이 된다.
이 책은 말한다. 유전자는 구체적인 삶에 선행하는 천형이나 피할 수 없는 운명이 아니라고. 삶은 살아가는 과정 속에서, 또 환경과 맥락 속에서 끝없이 새 의미를 부여받는 가변적인 항해라는 깨달음은 이 책이 우리에게 주는 선물이며, 결핍과 정상성에 대한 낡은 관념을 치밀한 사유를 통해 전복하려는 저자의 문장은 인간의 가능성에 대한 근본적 재인식을 촉구하는 날카로운 초대장과도 같다. 그뿐인가. 그리스 신화, 근현대 철학, 오늘날의 문학, 동시대 시각예술, 성서와 신학이라는 다섯 개의 거대한 사유의 렌즈가 인간을 근거리와 원거리에서 동시에 조망한다. 저 렌즈에 비친 인간의 초상에는 원래부터 선한 것도 원래부터 악한 것도 없음이 폭로된다. 오직 선악의 저울 위에 올려놓여진 ‘인간’만이 있다. 책의 마지막 장을 덮으며, 우리는 뜨거운 침묵 속에서 저자의 문장을 되뇌게 될 것이다. “그런 유전자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