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린 날엔 무더기로 피어나던 절망이었을 것이다. 그녀는 말을 아끼며 오래 침묵하다가도 세상 부러울 것 없이 웃는다. 투명하게 부서지는 웃음인데, 울음은 속울음이다. 자신을 세상에 내던진 생(生)의 파편 속에서 조각난 빛으로도 반짝이며 한결같음으로 스스로 배경을 쌓아온 것도 안다. 세상에 직업이 시인밖에 없는 줄 알았던, 십오 세의 그녀가 어렴풋하다. 강은미 시인은 지금도 싱싱하게 글을 쓰는 천상 시인이다.
이 시집은 그녀가 걸어온 날들을 통해 타인의 상처를 보듬는 몸의 기록이다. 어조는 삐딱하지만 따뜻하다. 수사 없이 솔직히 드러난 연민의 시선이 입체를 이룬다. 여성이라는 이름의 다중구속에 맞선 그녀는 끊임없이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하며 생존을 위한 고군분투를 하고 있다. 사회문제를 직시하며 연대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어 그녀는 여전히 시를 쓴다. 문우이자 벗인 나는 섣부른 위로를 보낸다. 가끔은 그녀가 모든 수고로움에서 자유로워지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