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테로토피아는 우리 일상에 붙어 있는 또 다른 세계다. 하지만, 늘 어딘가 어긋나 있고 또 붕 떠 있다. 그런 곳의 언어는 우리의 일상 언어와 닮은 듯 다를 것이다. 정황수 시인이 구사하는 순우리말 시어들이야말로 ‘헤테로토피아의 언어’가 아닐까. 쉽게 읽힘으로써 휘발해 버리는 일상어와 달리 곱씹을 거리를 제공함으로써 의미의 재고를 유도하고, 여운을 길게 남기는 이런 언어들은 예술의 본질인 ‘낯설게 하기’의 차원을 넘어 혼돈과 무질서, 부정과 부조리가 횡행하는 수라계를 다독이고 위무한다. 비정상적인 세상을 비일상적인 언어로 그려냄으로써 그에 대한 담론의 장을 펼치는 것이다. 경계를 가로지르며 현실과 가상을 오가는 탈중심적 공간에서 현대사회의 부조리를 직시하며, 그 상처와 고통을 외면하지 않음으로써 다시 희망의 불꽃을 피우는 일상 너머의 언어. 그것이 정황수 시인이 추구하는 시적 헤테로토피아의 토대일 것이다. 이 탁월한 언어 운용의 마법사가 펼쳐갈 다음 행보가 기대되는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