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성별정체성과 성별다양성을 둘러싼 여러 쟁점을 과학적·의학적 근거와 일상의 언어로 풀어낸다. 그동안 오해와 왜곡 속에서 단편적으로 소비되어 온 ‘젠더’라는 주제를 현재의 의료적·사회적 맥락 속에서 정확하게 짚어내며, 무엇보다 사람의 삶에 닿아 있는 언어로 설명하고 있다. 성별확정수술을 하는 의사로서 가장 인상 깊었던 점은, 젠더를 논쟁의 대상이 아니라 진료실과 일상 속에서 실제로 만나는 인간의 이야기로 다루고 있다는 점이다. 나는 주로 성별불일치에 대한 진단을 받고 성별확정 호르몬 요법을 거쳐 수술을 고려하게 된 이들을 만난다. 한국의 성별확정 진료는 아직 충분히 체계화된 하나의 경로로 존재하지 않기에, 트랜지션의 다양한 단계에 서 있는 사람들이 진료실을 찾아온다. 이제 막 자신의 감각을 말로 꺼내기 시작한 청소년부터 오랜 시간 스스로를 설명할 언어 없이 살아온 성인, 이미 사회적·법적 전환을 마쳤지만 의료적 선택을 앞두고 다시 고민하는 사람들까지, 그 스펙트럼은 넓고 결코 단순하지 않다. 의사로서 그 복잡함을 서둘러 정리하거나 하나의 답으로 묶기보다는, 각 단계가 지닌 의미와 맥락을 존중하며 천천히 따라가려 한다.
이렇듯 성별확정 진료는 검사 수치나 수술 기법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당사자가 병원 밖에서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어떤 관계 속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설명해 왔는지에 대한 이해는 진료의 중요한 일부다. 그래서 진료실에서 환자 혼자만이 아니라, 그들의 인생에 중요한 의미를 갖는 사람들-부모, 파트너, 형제자매, 때로는 자녀-을 함께 만나게 된다. 특히 미성년 자녀와 함께 방문하는 부모들은 종종 조심스럽게 질문을 건넨다. “이게 정말 아이의 정체성일까요?”, “잠시 혼란을 겪는 건 아닐까요?”, “부모로서 제가 뭘 잘못한 걸까요?”, “아이가 나중에 후회하게 되면 어떻게 하죠?” 현장에서 볼 때 부모들의 감정과 인식 또한 하나의 흐름과 과정을 가지고 있다. 초기의 충격과 부정, 죄책감을 지나 감정을 표출하고 고민 끝에 어떤 결단을 내리며, 마침내 자녀의 성적 지향이나 정체성을 수용하는 단계에 이르기까지 숱한 변화의 과정은 혼자만의 경험이 아니다. 이는 이미 오래전부터 여러 부모 모임과 연구를 통해 관찰되어왔다. 톰 사우어먼이 미국 PFLAG Philadelphia(성소수자 부모·가족 모임)와 함께 처음 정리해 발표한 부모의 ‘6단계 심리적 변화 과정’은 진료실에서 부모들을 만날 때 자주 떠올리는 하나의 지도이기도 하다.
진료실에서는 공감과 최대한 많은 정보를 제공하려 노력하지만, 제한된 시간 안에 모든 이야기를 충분히 나누기에는 늘 부족함이 남는다. 그래서 이 책을 읽는 동안, 그간 진료실에서 만났던 여러 부모들의 얼굴이 자연스럽게 겹쳐 떠올랐다. 이 책은 젠더를 둘러싼 논쟁이나 정답을 앞세우기보다, 부모와 양육자가 아이와의 관계 속에서 마주하게 된 새로운 세계를 두려움이나 추측이 아닌 올바른 젠더 리터러시로 이해하도록 안내한다. 아이를 서둘러 규정하지 않고, 낯선 질문 앞에서도 관계를 지켜내는 태도가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해 우리를 조용히 일깨운다.
이 책은 부모와 양육자, 교육자와 의료인, 당사자뿐 아니라 젠더 이슈를 처음 접하는 일반 독자도 신뢰할 수 있는 기초 텍스트다. 또한 성별확정수술을 하는 의사로서, 이러한 논의가 진료실 밖에서 더 많은 대화로 이어지고 그 대화가 결국 더 안전하고 현실적인 의료를 가능하게 하기를 기대한다. 진료실에서 만난 한 부모는 이렇게 말했다. “아이 때문에 제가 세상을 보는 시야가 넓어졌어요. 납작하게 보이던 세계에서 벗어나, 이제는 다양한 색채와 질감, 촉감을 느끼게 되었어요.” 이 책이 변화를 살아내고 있는 아이들과 그 곁에서 배우며 함께 성장하는 모든 양육자들에게 한 권의 동반자가 되길 바란다. 나의 진료실 한편에도 늘 이 책이 놓여 있을 것이다. 진료가 끝난 뒤, 아이가 열어준 새로운 세계를 맞이할 부모들에게 건네고 싶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