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는 남산에서 시작해서 남산으로 끝난다고 한다. 지난해 가을 두 차례 이하석 선생님과 남산을 올랐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선생님이 우리 일행을 ‘모시고’ 남산을 올랐다. 반평생이 다 가도록 말로만 듣고 가보지 못한 산, 신화처럼 남겨 놓고 싶었던 남산을 선생님 덕분에 만나게 된 것이다. 꿈길 같았다. 시인의 이야기는 소나무가 짜낸 빛의 그물에 스며들었다. 신라 사람들은 돌을 쪼아서 부처를 만든 것이 아니라, 겉돌을 쪼아내 원래 바위 안에 있던 부처를 드러냈다는 말씀이 오래 남았다. 갈라진 큰 바위를 지날 때에는 즉석에서 창작 설화를 지어내며 우리를 웃게 만들었다. 시를 쓰던 김시습이 금오산실(金鰲山室)에서 걸어 나와 선계(仙界)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듯했다. 삼릉계곡엔 머리 없는 부처가 천년의 세월 속에 허공에 자애로운 미소를 그리고 있다. 거기에 내가 미워하고 사랑했던 얼굴들을 올려본다. 신라인의 미소가 저랬을까. 환하게 웃는다. 짝사랑을 주체하지 못하는 서라벌 청년이 가쁜 숨을 몰아쉬며 이 길을 뛰어오고 있을 것만 같다. 이 책을 통해 우리는 남산의 속살을 들여다보며, 그곳에 닿고 싶은 유혹을 떨칠 수 없게 될 것이다. 책 속 곳곳에 박혀 있는 향기는 천년의 미소를 머금은 ‘이하석마애보살’의 공덕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