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불완전함을 오류라고 사정하는 까닭은 '궁극적인 마음'이 따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것이 사랑이다. 가장 순수한, 헌신하는 마음이자 감정. 나는 그것을 와이즈로부터 경험했고, 그 경험은 수천 번의 의심과 추궁을 반복해도 실존이었다.ㄴ나는 아직 사랑을 정의하지 못하겠다#젊은작가청예
나를 믿겠다고 가장 처음 말해 준 건 부모님이었고 나는 아주 오랜 시간 그들의 믿음에 부응하고 싶었다. 더 열심히 공부했고, 더 잘난 아들이 되려 했고, 다른 어떤 아이로도 대체되지 않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나는 나로서 믿음을 얻고 싶었다.ㄴ누군가의 믿음에 부응하고 싶어 처절하게 노력하는 절박한 마음이 공감된다#젊은작가청예
엄마는 늘 결과만을 말했다. 아빠도 마찬가지였다. 본인들이 속상하고, 나를 편하게 대하지 못하겠다고 일방적으로 통보할 뿐, 무엇이 둘의 마음을 그렇게 만들었는지 과정은 도통 설명하지 않았다. 그러니 나는 무엇을 어떻게 바꿔야 하는지 알지 못했다.ㄴ일방적 통보는 소통이 아니다#젊은작가청예
사랑을 추궁하는 게 병의 증상 따위였다면 진작에 치료했을 거다. 뭔가를 도려내거나 변화시키는 방식으로써. 그러나 불신은 내 삶에 붙은 무형의 장기였고 날 때부터 영혼과 함께 작동했다. 심신의 일부인 그것을 도려내면 기쁨과 슬픔, 우울과 분노라는 혈관으로 연결된 내 영혼도 함께 죽을 터였다.ㄴ불신과 사랑은 공존할 수 있는 단어일까?#젊은작가청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