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자리는 건물과 건물 사이에 난 구멍 같았다. 나는 오줌을 참는 것 같은 기분으로 균형을 잡고 섰다. 발아래가 조금 시끄러웠고 아주 많은 차들이 요령 있 게 지나다녔다. 위에서 바라보는 차의 루프들은 교통 신호 때문에 알갱이들이 덩어리가 되었다가 다시 알갱이로 되었다가, 그렇게 변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나는 그 모든 걸 조금 내려다보다가 하늘을 올려 다보다가 했다.
모르겠다. 내가 알던 정미가 정말 정미가 맞는지도 혼란스럽다.정미라는 이름에는 무슨 의미가 담겨 있나. 나중에 유미언니한테 물어나 볼까, 나는 고개를 저었다. 유미 언니는 정미와 닮아서 마주하기가 버겁다. 이마랑 눈이랑 하관이 아주 비슷하다. 유미 언니로 인해 오가는 말수가 늘어나는 건 어쩔 수 없겠지만, 내가 먼저 어떤 화두를던져 대화를 잇는 건 바보 같은 짓이다.정미라
또 와 있네. 집으로 들어가려는데 공동 현관문 앞에서 있는 유미 언니를 보았다. "안녕하세요." 내가 인사를 건네고, "안녕 못 해." 인사라고 할 수 없는 인사를 들었다. 오늘도 유미 언니는 플라스틱 컵을 들고 있는 채였다. 안에는 투명한 얼음 알갱이만 들어 있어 어떤 종류의 음료를 사 먹었는지는 알기 어려웠다. 쓰레기를 보게 될 때 마다 나는 썩는 데 걸리는 시간을 헤아리고 아
정미라고 있는데, 걔가 죽었대. 할머니의 첫 질문, 누가 죽였냐. 나의 대답, 정미가 정미를 죽였나 봐. 할머니의 두 번째 질문, 현비 너랑 관계가 있는 일이냐. 나의 대답, 나도 모르겠어.할머니의 세 번째 질문, 정미라는 애랑 너랑 친하냐. 나의 대답, 우린 친구야. 당연히 친하지.할머니의 네 번째 다섯 번째 여섯 번째, 무한으로 반복될 당부. 현비 네가 참회해라. 할머니는 내게 참
그렇지만 내가 도움이 필요한 상황에 처해 있나. 모르겠다. 나를 돕는 과정이 유미 언니의 마음을 산란하게 만들 것 같은데 나는 그걸 원치 않는다. 그저 이 모든 걸 내버려두는 게 좋을 것 같다.무엇보다 선량하다고 해서 다른 사람을 구하는 게 가능한지도 모르겠다. 가능하지 않을 것 같다. 정말 최종에 어떤 선택을 할 수 있는 이는 선량한 다른 사람이 아닌 바로 나 자신뿐일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