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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갱이들
양장
황보나
사계절 2026.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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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본문
수상 소감
작품 해설
심사평
박지리문학상

저자 소개 1

청소년소설 『네임 스티커』 『일곱 개의 초록』을 썼으며, 청소년 앤솔러지 『너의 오른발은 어디로 가니』 『연애 운세, 너에게 적중』 『나의 첫 번째 거짓말』에 참여했다. 『알갱이들』로 제6회 박지리문학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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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26년 09월 10일
판형
양장 ?
쪽수, 무게, 크기
188쪽 | 292g | 115*188*20mm
ISBN13
9791169815499

책 속으로

유미 언니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나는 정미의 절친이다. 나도 그렇게 생각하고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생각하며 자살한 정미도 그렇게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나는 잘 모르겠다.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진짜 잘 모르겠다. 그리고 모르겠는 건 정미의 친언니인 유미 언니도 매한가지이다. 유미 언니가 한 말에서 나를 지칭하는 단어 대신 유미 언니를 집어넣어도 말이 안 되지는 않지 않을까. 이를테면, 유미 네가 모르면 누가 아니. 너는 정미의 언니잖아,라고 말이다. 퍽 매끄러운 그 말들에 나는 내심 흡족함을 느끼며 살짝 웃으려다 만다. 이 타이밍에 웃음을 지으면 피곤한 오해를 살지도 모른다.
--- p.11~12

주변 사람들이 이렇게 지쳐가잖아, 그러니까 애초에 죽지를 말았어야지!라고 내가 정미에게 소리칠 수 있을까. 그래도 정미는 죽고 싶었던 거겠지. 그만 살고 싶었던 거겠지. 그만 살고 싶은 걸 어떻게 했겠어. 아니 이제 정미는 없으니까 나는 소리를 치고 말고 할 것도 없다. 그렇게 충분히 씹은 유부를 목 뒤로 넘겼다.
--- p.17

미친년.
소름 끼치는 년.
정미가 죽었는데 정미랑 가장 친했으면서 머리를 하고 나타나다니.
수군댐에는 다 일리가 있었기 때문에 나는 공연히 머리칼만 매만질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는 머리가 전체적으로 엉망이 되어 있었다. 나는 왜 미용실 의자에 앉게 되었을까. 할머니의 말에 떠밀렸다고 하더라도 내 의지가 아예 반영이 안 되지 않은 건 아니지 않나. 자문해보았다. 모르겠다. 나는 아무 짓이라도 하지 않으면 못 견딜 만큼 정미의 죽음이 실감 나지 않았다. 다른 사람에게 머리를 맡긴 채 내내 정미를 생각했다. 정미가 죽다니. 그건 정말 믿기 힘든 일이었다. 믿는 건 그렇다 치더라도 이해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다.
--- p.23

무더위가 지속되고 있으니 건강 관리에 유의하라는 재난문자였다. 정미가 없어도 여름은 여전히 더웠다.
--- p.25

“힘들면 안 가도 돼. 할미가 말해줄게.”
사양이다. 내가 아무 말도 않자 할머니는 피곤해 죽겠다며 거실 소파에 드러누워 버렸다. 할머니는 피곤해 죽겠다고 했지만 피곤해서 정말 죽지는 않을 것이다. 그리고 정미는 죽었다.
--- p.44

정미라는 이름이 혹시 정말의 정, 미안해의 미를 따서 정말 미안해의 줄임말은 아니겠지. 정말 미안하다는 말은 내가 정미한테 하는 말일까 아니면 정미가 나한테 하는 말일까. 언제까지라도 모를 것이다. 물어볼 정미가 없으니까. 몰랐는데 정미는 죽고 싶어 했고, 그래서 죽었다. 나는 정미와 가장 친한 친구였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나를 걱정했다. 그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정미가 죽은 후 나의 일거수일투족에 대해 이해가 가지 않는다고 비난했다. 그보다 더 더 많은 사람들은 내게 정미가 그렇게 간 이유를 궁금해했다. 그렇지만 나는 몰랐다. 나는 정미를 몰랐다.
--- p.45-46

나는 참회하고 싶지 않았다. 자신의 잘못에 대하여 깨닫고 깊이 뉘우친다는 의미의 참회. 내가 잘못한 게 없다고 믿어줄 사람은 나뿐이었다.
--- p.59

“너 근데 아까 죽지 않았어?”
공을 완전히 건네주기 직전에 내가 물었다.
“맞아요. 아까 죽었어요.”
아이가 헤벌쭉 대답했다.
“죽는 거 아프니?”
아이는 묽게 웃기만 할 뿐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 p.81

“저기, 현비야.”
“네?”
“나는 사실 죽고 싶지 않았어.”
고모부가 눈을 끔뻑거리며 말을 이었다.
“그런데 죽어버려서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모르겠어.”
뭐라 말을 하는 게 좋을지 몰라서 나는 계속 걸었다. 고모부도 계속 나를 쫓아왔다.
“그래서 그런데…….” (…)
“혹시 현비 네가 나한테 죽고 싶은 마음을 줄 수 있겠어? 그럼 내가 잘 죽을 수 있을 것 같은데.”
이미 죽은 주제에 잘 죽을 수 있을 것 같다는 어불성설을 들으며 나는 고모부를 뚫어져라 쳐다봤다.
“죽고 싶은 마음이 어디 있는데요?”
“그건 나도 모르지. 그래도 마음이니까 네 안에 있지 않을까.”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모르겠네요.”
나는 운동화로 바닥을 꿍꿍 밟으며 말했다.
“죽고 싶은 기분 같은 거 말이야. 그런 걸 좀 모아서 줘봐.”
--- p.109-110

“참회해야 한다, 현비야.”
할머니는 내 존재 자체가 잘못인 양 말했고, 할머니의 처진 입가에서 나오는 그 말을 들을 때마다 나는 패대기쳐지는 느낌을 받았다.
--- p.142

출판사 리뷰

제6회 박지리문학상 수상작 출간
죽음 이후 남겨진 자들이 그려내는 반복의 궤도
그 안에서 결코 사라지지 않는 정미라는 이름


올해 박지리문학상을 수상한 황보나 작가는 2024년 문학동네청소년문학상 대상 이후 청소년문학을 써오다 이번 『알갱이들』로 첫 소설을 발표했다. “또 와 있네”를 첫 문장으로 이 소설은 죽은 정미의 친언니 유미가 정미의 단짝인 현비를 찾아오며 시작된다. “안녕하세요” 현비가 인사하고, “안녕, 못 해” 유미가 대답하는 것으로 두 사람의 만남은 반복된다. 유미가 현비를 찾아오는 이유는 하나, 동생 정미가 죽은 이유를 알고 싶어서다. 소설은 정미의 죽음에는 말을 아끼고, 그 이후 남겨진 이들의 일상적인 움직임에 주목한다.

매일같이 현비를 찾아오는 유미와 그런 유미를 어쩌지 못하고 매번 집까지 함께 걸어가는 현비 그리고 전학 온 학교에서 새로 사귄 친구 소윤이와 소윤이를 때리고 괴롭히는 김라희의 모습은 현비의 일상 속에서 무한대 기호처럼 끝없이 이어진다. 소윤이는 주기적으로 김라희에게 뺨을 맞고 욕설을 듣는다. 현비는 그들 곁에 일정한 거리를 두고 머물다 폭행이 끝나면 소윤이와 대화한다. “나 쌍년이 아니라고 말해줘” 소윤이 말하면, “넌 쌍년이 아니야” 현비가 대답한다. 의식과도 같은 이 대화는 욕설만 바뀌며 계속된다.

이 외에도 소설에는 이런 반복된 궤적이 자주 발견된다. 할머니는 현비에게 시도 때도 없이 말한다. “참회해야 한다” 정미가 죽었다고 전했을 때도, 현비가 배탈이 났을 때도, 지갑을 잃어버렸을 때도 현비에게 참회해야 한다고 한다. 모든 것은 네 탓이라고. 고모부가 죽었을 때도 할머니와 엄마는 고모를 탓했다. 남편을 잡아먹은 년이라고. 맨홀에 빠져 갑자기 죽어버렸다는 고모부의 사인도 할머니를 설득하지 못했다. 정미가 죽은 직후 사람들은 현비의 일거수일투족에 관심을 뒀다. 마치 정미의 죽음이 현비로부터 시작되었을지도 모른다는 듯이. 정미랑 가장 친했는데 머리를 하고 왔다고. 소름 끼치는 년이라고.

올바른 애도란 무엇인가?
애도에 올바름이라는 기준을 누가 정할 수 있는지
아프게 묻는 황보나식 애도의 현장


정미가 떠난 계절이 다시 돌아오는 동안 현비는 이렇듯 정미의 죽음과 관련된, 또는 관련되지 않은 직간접적인 폭력의 상황에 꾸준히 노출되어 있다. 그 시간 속에서 현비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그 일상에 존재하기, 자기 자신만이 마지막 동아줄이 되어 스스로를 믿어주고 지탱해주기, 그리하여 정미의 죽음에 결코 참회하지 않는 것이다. 소설은 그런 현비의 나날을 가만히 작은 시간 단위로 풀어 천천히 보여준다.

정미가 떠난 날, 정미의 행적을 묻는 유미의 물음에 현비는 매번 같은 대답을 할 수밖에 없다. 그날 정미와는 삼각김밥을 함께 사 먹었고, 다른 점이었다면 정미가 가장 좋아하는 삼각김밥을 현비에게 양보했다. 그런데 그게 정미가 죽은 이유가 될 수 있는지, 현비는 모르겠다. 정미 생각을 하냐는 유미의 물음에도 현비는 답을 찾을 수가 없다. 정미 생각을 하지 않는 시간을 찾기 어렵지만, 남들한테 말했을 때 괜찮아 보일 만큼 많이 하는 기준이 무언지 알 수 없다. 새 친구를 잘도 사귄다는 유미의 말에도 현비는 그저 침묵한다. 그렇게 움푹 파여만 가는 현비의 마음에는 푸수수 정체를 알 수 없는 작은 알갱이들이 자꾸만 쌓여간다.

헛돌듯이 반복되는 두 사람의 대화는 비슷한 궤적을 그리고, 그들은 아무런 소득 없이 만났다 흩어진다. 그런데 그 무의미해 보이는 궤적 속에서, 작품에 한 번도 살아서 등장한 적 없는 정미가 끝없이 부상한다. 독자의 시야에, 꼭뒤에 꼭 달라붙는다. 소설에서 정미는 모두 현비의 기억을 거친 모습으로 등장한다. 작품은 정미의 죽음 못지않게 현비의 현재 심리도 직접적으로 드러내지 않는다. 현비가 하는 발언의 대부분은 모르겠다, 알 수 없다,이다. 친구의 죽음 앞에 그것만이 사실이고, 그 사실은 죽음과 애도에 재빨리 답을 내놓으라 보채는 주변 시선을 역으로 비춰 보인다. 독자들은 언뜻 평범해 보이는 현비의 일상을 따라가며 어딘가 까끌거리는 이질적인 감각을 전해 받는다. 그 감각은 묻는다. 올바른 애도란 무엇인가? 애도에 올바름이라는 기준을 누가 정할 수 있는가, 하는 물음은 현비와 마찬가지로 개인적, 사회적 죽음에 노출되어 있는 우리 자신에게도 맞닿아 번진다.

“죽는 거 아프니?”
정미가 없어서, 정미가 가득한 이 소설이
전하는 죽음과 회복을 마주하는 방식에 대하여


어느 날 현비에게 죽은 고모부가 보이기 시작한다. 현비만큼이나 어리둥절한 얼굴로 고모부는 말한다. 눈 떠보니 여기라고, 눈 떠보니 여기 남의 집 소파 밑에 있었다고. 현비는 자신에게만 보이는 고모부를 다시 만나기 위해 그 집에 사는 사람과 거래를 한다. 반복되는 거래 끝에 현비는 고모부를 밖으로 꺼내오는 데 성공하는데, 이번엔 고모부가 요청한다.

“혹시 현비 네가 나한테 죽고 싶은 마음을 줄 수 있겠어? 그럼 내가 잘 죽을 수 있을 것 같은데.”
이미 죽은 주제에 잘 죽을 수 있을 것 같다는 어불성설을 들으며 나는 고모부를 뚫어져라 쳐다봤다.
“죽고 싶은 마음이 어디 있는데요?”
“그건 나도 모르지. 그래도 마음이니까 네 안에 있지 않을까.”(110쪽)

죽고 싶은 마음이 뭔지, 어디에 있는지 모르던 현비는 생각보다 쉽게 그 마음을 잔뜩 모아 고모부에게 준다. 현비의 죽고 싶은 마음은 자기 의지와 상관없이 불현듯 죽어버린 고모부를 비로소 잘 죽게 하고, 텅 빈 마음으로 정미가 떠난 자리에 찾아간 현비는 유미와 또다시 마주친다. 둘 사이에서 끝없이 부상해온 정미는 소설의 마지막 장면에서야, 현비와 유미의 마지막 만남에서야 낮게 가라앉는다. 골목에서 공놀이를 하며 죽었네, 살았네 하던 아이들을 향해 현비가 묻는다. “죽는 거 아프니?” 마치 이제 없는 누군가에게 묻듯이. 자기 자신에게 묻듯이.

현비의 물음은 소설의 행간 사이에서 아프게 부유한다. 청소년의 죽음에는 더한 조심스러움이 앞선다. 사회가, 우리가 지켜주지 못했다는 감각. 아직 열몇 살의 마음에 깊게 파고들어야만 했던 죽음이라는 근원에서 과연 누구라도 자유로울 수 있는가 하는 물음. 황보나 작가는 그 물음을 요란스럽지 않게 오히려 침전하는 방식으로 독자에게 건넨다. 이 소설은 이분법적인 시선으로 옮겨가기 쉬운 죽음, 피해, 가해, 애도라는 단어가 지닌 보편적인 속성을 거부하면서 해당 단어들을 다른 방식으로 이야기한다. 에두르지 않으며 단어들의 본질에 더 한발 가까이 다가간 시선은 그 자체로 의미를 지닌다.

그렇게 이 작품은 정미를 드러내지 않는 방식으로 도리어 정미로 가득 찬 풍경을 내보인다. 그 풍경은 곧 우리에게 죽음을 미화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마주하는 방법을 알려준다. 현비라는 인물이 해나가는 애도를 통해 역설적으로 애도의 형식을 무화시켜 애도의 본질을 보이게 한다. 작가의 이런 시선은 큰 덩어리가 아닌 마음속 아주 작은 알갱이들에 조심히 가닿는다.

이기호 소설가의 심사평처럼 소설에서 알갱이는 “설명하지 않고 해명하지 않으며 판단하지 않는 알갱이”들로 존재하며, 그것이 어떤 모습인지는 더는 중요하지 않게 된다. 그 마음을 비추고자 하는 작가의 시선, 그 닿음이 곧 우리가 이 작품을 통해 만나게 되는 가치가 된다.

“죽음의 원인에 철저하게 무지와 비지의 태도를 고수하면서, 이로써 죽음을 신비화하기는커녕 오히려 죽음을 결코 제거할 수 없는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가능성을 사유한다. 죽음을 품에 안고 어떻게 살 것인가 모색한다.” 작품 해설_윤경희 평론가

추천평

현비와 유미는 돌이킬 수 없는 상실 이후의 시간을 함께 견디며, 하루 또 하루, 알갱이처럼, 조금씩 삶을 덧이으며 서로를 살린다. 정미에 관해 끝없이 이야기하면서, 정미의 이름을 언제고 불러내면서, 두 사람만의 공동체 안에서 정미가 결코 사라지지 않게 보호한다. “사라지지 않고 살아지지 않고, 살아가는 게 괜찮은 건가 괜찮지 않은 건가”. 당장 답할 수 없지만, 조금 더, 다시, 更, 살아본다. - 윤경희 (작품 해설 「알更이」)
반복 속에서 조금씩 닳아가는 사람들. 이 작품의 정서는 격렬함이 아닌 마모에 가깝다. 슬픔이 폭발하지 않고 대신 침전된다. 설명하지 않고 해명하지 않으며 판단하지 않는 알갱이. 타인의 죽음을 자신의 의미 체계 안으로 회수하지 않겠다는 단단한 태도가 이 작품의 가장 큰 성취다. - 이기호 (소설가)
이 작품은 죽음의 이유 찾기라는 추적 서사를 전면에 내세워 독자를 끝까지 끌고 간다. 이 추적은 해답을 찾아가는 과정이라기보다, 알 수 없음의 상태를 견디게 하는 맥거핀으로 기능한다. 그래서 결말 또한 위로나 정리로 쉽게 수습되지 않고 불가해함을 끌어안는 슬픔과 윤리의 감각을 유지한다. - 정소현 (소설가)
살아 있는 자들이 죽음의 원인에 무지할 수밖에 없다면, 그것은 죽음이야말로 삶에 절대적 타자이기 때문이 아닐까. 죽음의 원인에 무지할지라도 우리는 그것을 존중해야 하며, 함부로 속단하거나 환원하지 않는 무지야말로 죽음에 대한 정확한 애도와 존중의 방식일 수 있다. - 윤경희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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