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켜켜이 쌓인 과거의 기억들이 문신처럼 남아 '구린 나'가 너무도 선명한데 어떻게 내가 없다는 말인가.하지만 무아는 자아의 부정이 아니었다.단지 '고정 된 나'라는 것이 없다는 깨달음이었다.내가 나라고 믿는 나는 수많은 기억과 감정, 관계가 얽혀 생겨난 결과값이었다.이 또한 영원하지 않았다. 나 역시 사 라지는 감각과 감정처럼 변화의 흐름 위에 있는 존재였다.과거의 기억을 붙잡고 놓아주지 않는 것은 존재가 아니라 그 기억을 나라고 믿는 마음이었다.이런 마음의 구조를 '서술적 자아(narrative self)' 라고도 부른다.과거의 경험과 타인의 시선, 사 회적 역할을 엮어 '나는 이런 사람이다'라고 말하게 하는 내면의 서사.그러나 그건 실체도 없었고, 진실도 아니었다. 변하고 사라지는 것들을 지켜보며 나는 어렴풋이 알게 되었다. '나'라고 믿어온 것은 그저 끊임없이 쓰이고 지워지는 하나의 이야기였다는 것을.'재수 없는 나', '화가 많은 나'를 나라고 생각하며 그 틀에 나를 집어넣고 있는 것은 바로 나였음을.명상은 그 이야기에서 벗어나는 연습이었다.과거와 미래, 좋고 싫음, 평가와 비교의 세계에서 벗어 나 지금 이 순간에 그대로 존재하는 일. 감정과 생각 의 파도 위에서 그것을 '나'라고 붙잡지 않는 것.그러니 선생님이 말했던 것처럼 과거를 되짚어가는 것 보다는 지금 이 순간에 온전히 존재하는 것이 더 중요했다.변하고 사라지는 것들을 관찰하면서 스스로 생각하는 '별로인 인간'이라는 문신도 서서히 흐려 졌다.구린 모습은 여전히 내 안에 있었다.너절한 마음? 여전히 올라왔다.하지만 더 이상 그것이 나를 규정하게 두지 않았다.스스로가 한심하게 느껴지거나 과하게 우쭐한 마음이 올라올 때는 내가 나에게 하는 이야기에 또 속아 넘어갔다는 사실을 상기했다.'나답게 살라'는 말을 들으면 늘 마음이 답답했다.나다운 게 뭐지? 나는 구린 사람인데? 하는 의문 이 솟아올랐다. 지금은 안다. 나답다는 건 그저 변하는 흐름 속에서 그때그때의 나로 존재하는 일이었다.내 안에 일어나는 마음을 제대로 알아볼 수 있다면 일 관된 모습이 아니더라도 그게 나답게 사는 것이었다. 위빠사나로부터 얻은 통찰은 나에 대해 새로운 이야 기를 쓸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줬다.여전히 일할 때는 종종 파이터가 되곤 한다.옛날엔 그런 내 모습이 싫고 괴로웠다.그래서 벌어졌던 나 자신과의 숱한 싸움에는 승자는 없고 패자만 있었다. 나는 이제 나와 싸우지 않는다.하나의 모습이 내 전체를 규정하게 두지 않고, '또 내 안의 파이터가 나왔구나' 하고 인정한다.불완전하고, 실수하고, 또 성장하며 변해가는 그 흐름 자체가 모두 내가 된다는 걸 알게 되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