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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에서 최종 목적은 본래 해탈이고, 그 과정은 전통적으 로 발심, 수행, 보리, 열반이라는 네 단계로 설명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삶이 곧 고통이라는 사실을 깨닫는 발심, 그 고통에 서 벗어나기 위한 수행, 그 고통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순간 의 보리, 그리고 마침내 게임이 완전히 끝났음을 뜻하는 열반 입니다. 아래에서는 지금까지 사용해 온 비유를 통해 이 네 과 정을 다시 한번 간단히 설명해 보고자 합니다.늦든 빠르든 게임은 언젠가 반드시 끝나기 마련입니다. 게 임오버라는 시점에서 돌아보면 내가 그동안 애써 모아온 포인 트에는 과연 어떤 가치가 있을까요? 아무것도 남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왜 이렇게 시시한 게임에 깊이 빠져 있는 것일까요? 불교에서는 이러한 자각을 '발심'이라고 부릅니다. 머리로는 다 알고 있으면서도 쉽게 그만둘 수는 없습니다. 시시하다는 사실을 알아차리고도 게임에서 벗어나는 일은 생 각보다 어렵습니다. 어쩌면 이 게임은 불쾌함보다는 쾌감을, 맛없는 것보다는 맛있는 것을 좇는 아주 생리적인 욕구에서 시작되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편하게 있고 싶고, 이익도 얻고 싶고, 이기고 싶고, 남들에게 인정받고 싶은 마음.... 그런 게임 에서 나오려면 결국 수행이 필요하다는 것이 불교의 기본적인 입장입니다. 하지만 열반은 저절로 다가와 주지 않습니다. 그것은 마치 오랜 수행 끝에 마침내 도달해야 할 산의 정상 과도 같습니다. 아래 세상에서 벌어지는 게임을 벗어난 자리 에서 내려다보는 그 조망, 그것이 바로 보리, 즉 깨달음의 경지 입니다. 원래대로라면 이 지점에서 다시 게임 속으로 돌아갈 이유는 없습니다. 그런데 아집, 즉 에고에 대한 집착에서 자유 로워진 깨달은 자의 깊은 의식에서 자비가 솟아나면, 그는 한동안 이 세상에서 '사람 돕는 일'이라는 또 다른 게임을 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그렇게 사람 돕기 게임마저 마침내 끝나면, 그다음에 기다리고 있는 것은 열반입니다. 다시 태어나는 일 도 없이, 깨달은 자는 마치 불꺼진 촛불처럼 이 세상에서 사라 집니다. 게임오버. 두 번째 판은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