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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교제
국내작가 문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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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교제
국내작가 문학가
아속(啞俗) 김교제(金敎濟)는 이인직·이해조 등과 동시대에 활동한 신소설 작가다. 김교제의 가계와 생애를 살펴보는 데 있어 《대한제국관원이력서》를 우선 검토할 필요가 있는데, 그에 따르면 김교제는 고종 20년(1883) 11월 3일에 태어났고 본관은 경주이며 1901년에 광성상업학교에 입학해 신식 교육을 받은 이후 1905년 11월에 헌릉참봉(獻陵參奉), 1907년 9월에 효릉령(孝陵令)에 각각 임명되었다. 상업학교를 졸업하고 벼슬길에 오른 김교제가 왜 갑자기 소설가로 전신했는지에 대해서는 아직 명확하게 확인할 길이 없다. 하지만 그의 처녀작 《목단화》가 1911년에 발표되었다는 점을 고려해 볼 때, 그가 소설가로 전신했던 이유는 1910년 국권 피탈과 연관되어 있다고 추정해 볼 수 있다.
현재까지 확인된 바에 따르면, 김교제는 《목단화》(1911), 《치악산(하)》(1911), 《비행선》(1912), 《현미경》(1912), 《마상루》(1912), 《지장보살》(1912), 《삼촌설(상)》(1913), 《일만구천방》(1913), 《난봉기합》(1913), 《쌍봉쟁화》(1919), 《애지화》(1920), 《경중화》(1923), 《화중왕》(초판 발간년 미상) 등 총 13편의 창작 및 번역 작품을 발표했다. 이 가운데 《비행선》, 《현미경》, 《지장보살》, 《삼촌설(상)》, 《일만구천방》, 《난봉기합》, 《쌍봉쟁화》 은 번역 및 번안소설로 분류되고 있다. 그만큼 김교제는 근대 초기에 창작과 번역(안)을 넘나들며 신문학을 정착시키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수행했다.
하지만 김교제에 대한 초기의 문학적 평가는 그다지 우호적이지 않았다. 김태준은 “이국초의 뒤를 이어 소설계에서 가장 활약하던 이로는 우산거사 이해조를 비롯하여 해동초인 최찬식과 아속 김교제를 우선 꼽지 않을 수 없다”면서도, “아속 김교제 씨의 《난봉기합》과 《경중화》는 아직도 퍽 떨어진다. 고대소설과 거리가 멀지 않다”고 평가절하한 바 있다(《증보 조선소설사》, 1939). 이러한 평가는 김교제 작품의 ‘새로움’보다는 전근대소설과의 유사성에 근거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후 김교제의 작품 경향에 대해서는 크게 두 가지의 상반된 관점이 양립하고 있다. 첫째는 김교제가 계몽적 방향성보다는 지나치게 통속적이고 대중적인 감각을 제시하는 데 치중했다는 관점이다. 이를테면 《현미경》은 탐관오리의 학정으로 인해 죽음의 위기에 처했던 부녀(父女)의 해피엔딩을 서사를 그려 냈다는 점에서 고전소설의 흥미 요소를 답습하고 있거니와, 런던을 배경으로 해 가난한 청년의 성공담을 그린 《지장보살》, 비행선과 같이 서구 문물의 낯선 풍경을 그려 낸 《비행선》 등의 작품에서는 계몽의 방향성을 제시하기보다 독자들의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서사 및 소재들을 나열하는 수준에서 머물고 있다.
둘째, 이인직의 친일개화론을 이어받은 최찬식과 같은 작가와 달리 애국계몽성을 드러내는 데 주력했다는 관점이다. 이는 그의 초기작인 《목단화》와 그 개작으로 알려져 있는 《화중왕》에서 확인할 수 있다. 특히 《목단화》에는 신학문을 배운다는 이유로 시댁에서 쫓겨난 ‘정숙’의 서사가 그려진다. 물론 이 작품은 개화 주체에 해당되는 사람은 복을 받고, 이를 방해하는 수구 세력은 벌을 받는다는 고전소설의 구조를 답습하고 있다. 하지만 ‘정숙’이라는 여성 인물을 통해 교육 사업의 확장을 국권 회복의 방략으로 제시하고 있다는 점은, 김교제가 식민지 초기 지식인들의 일부가 보여 줬던 친일개화론에 매몰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잘 예증한다.
이처럼 김교제의 작품 경향은 대중성과 계몽성이라는 상반된 관점을 공유하고 있다. 그의 작품이 고전소설의 흥미 요소나 서사 구조를 답습했다는 점, 런던이나 미국 등을 배경으로 서구(적인 것)에의 동경 의지를 반복적으로 드러냈다는 점 등은 쉽게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이러한 요소는 신소설에 대한 당대 대중들의 요구를 수용한 결과로 이해하는 것이 더 타당하다. 특히 당대 독자들이 고전소설에 익숙한 독서 관습을 갖고 있었을 뿐 아니라 서구 문물이 급격하게 유입되는 새로운 환경 속에 놓여 있다는 점을 고려해 본다면, 김교제가 지향했던 서사 문법은 ‘옛 것’과 ‘새로운 것’이 교차되는 당대의 일상을 핍진하게 재현하기 위해 고안된 것이라고 평가받을 수 있다. 이처럼 김교제는 친일적 정론성의 길로 나아갔던 이인직이나 최찬식과는 다른 길을 걸으면서도 이들이 지향했던 대중 지향성을 확보하려 했다는 점에서, 한국 초기 근대소설사에서 변별적인 위상을 보여 준 작가로 이해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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