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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머리에
1장 태실(胎室)이란 01 태실의 이해 02 태실의 조성 과정 03 태실의 조성과 함께 세워진 표석 등등 2장 왕의 태실, 그 역사의 현장 01 태조 태실 02 정종 태실 03 태종 태실 등등 3장 왕자·왕녀들의 태실 01 세종 02 덕종 03 예종 등등 4장 창덕궁 후원에 조성된 태실 01 숙선옹주 태실 02 영친왕, 덕혜옹주, 고종 제8왕자의 태실지 5장 왕비의 태실 01 영주 소헌왕후 태실 02 홍천 정희왕후 태실 03 예천 폐비 윤씨 태실 6장 사진으로 보는 태실 01 태주를 알 수 없는 태실 02 박물관으로 옮겨진 태함 맺음말 부록, 태실 일람표 참고문헌 미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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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실에서는 왕의 자녀와 세자의 아들이 태어나면 태실을 조성했다. 일반적으로 태실은 산의 정상에 조성했는데, 가장 이상적인 지형을 들판 가운데 둥근 봉우리로 표현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세종실록』에는 정앙(鄭秧)이 육안태(六安胎)에 기록된 내용을 언급하며, “땅이 반듯하고 웃뚝 솟아 위로 공중을 받치는 듯 하여야만 길지(吉地)가 된다.”라고 말한 장면이 대표적이다.
또한 다른 형태의 태봉도 주목이 되는데, 『태봉등록』에는 태실지 주변으로 내맥(來脈)이 없고, 좌청룡과 우백호, 안산 등이 마주 보는 곳이 없는 곳을 길지로 평가하는 것을 볼 수 있다. 한편 당시는 엄격한 신분제 사회였기 때문에 태실의 조성에 있어 위계질서가 명확했다. 그렇기에 왕과 세자, 원손의 태실은 다른 왕자·왕녀들의 태실과는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조선왕실의 태실은 신분에 따라 규모가 달랐다. 크게 차기 왕이 될 신분인지와 왕비 혹은 후궁의 소생인지에 따라 태실의 규모는 달리 정해졌는데, 이는 『태봉등록』의 기록을 통해 알 수 있다. --- p.1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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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실(胎室)이란 조선왕실의 장태 문화로, 왕실의 자녀가 태어날 경우 태(胎)를 길지에 묻었던 풍습을 의미한다. 아기의 태를 소중히 하는 것은 태주가 자라는 데 있어 중요하게 인식되었고, 왕실의 경우 나라의 국운과도 연관 지어 해석하기도 했다. 이러한 태실은 형태에 따라 아기씨 태실과 가봉 태실로 구분되는데, 이 중 가봉 태실은 태주가 왕이 된 경우 별도의 석물과 가봉비를 가설했다. 이와 함께 길지에 태실을 조성했기에 전국적으로 태봉산(胎封山 혹은 胎峰山)과 태봉리(胎封里) 등의 지명이 생긴 배경이 되었다.
한편 조선왕실의 태실은 나라가 망한 뒤 관리의 부재 속에 도굴과 암장 등이 있었고, 이를 이유로 이왕직(李王職)에서는 1928년부터 예식과(禮式課)의 전사들을 파견해 전국의 태실을 한 곳으로 모았다. 이후 1930년 4월 15~17일에 현 서삼릉 경내로 태실을 옮겼는데, 이는 길지에 묻는 태실의 의미를 고려할 때 있을 수 없는 훼손이었다. 그 결과 본래 태실이 있던 자리는 분묘 혹은 군부대의 시설물, 개발 등으로 훼손되었다. 『조선왕실의 태실』은 이러한 태실의 현재 모습을 담고 있다. 저자는 지난 2년 6개월간 전국의 태실 100여 곳을 현장을 찾아다녔다. 민통선 내부에 있어 평소 접하기 어려운 태실부터 창덕궁 후원에 조성된 태실 추정지 등 전국의 태실과 그 현장을 소개하고 있다. 또한 기존에 잘못 알려진 태실 정보 등을 바로 잡는 등 태실 입문서로 손색이 없으며, 독자들이 태실을 보다 쉽게 알 수 있도록 ▶태실이란? ▶왕의 태실, 그 역사의 현장 ▶왕자·왕녀들의 태실 ▶창덕궁 후원에 조성된 태실 ▶왕비의 태실 ▶사진으로 보는 태실 등으로 구성했다. 마지막으로 과거 태실의 모습이 어떻게 변화했는지를 살펴보는 것도 이 책이 가지는 특별함이라 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