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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륭 전집: 중단편
아겔다마 열명길 평심 잠의 열매를 매단 나무는 뿌리로 꿈을 꾼다 소설법 박상륭 전집: 장편-산문 죽음의 한 연구 신을 죽인 자의 행로는 쓸쓸했도다 잡설품 산해기 박상륭 전집: 칠조어론 칠조어론 1 칠조어론 2 칠조어론 3 칠조어론 4 박상륭 전집: 주석과 바깥 글 주석 저자 서문/후기 해설 발문 편집 후기 연보 |
朴常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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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눈을 돌려 내 몸에 시선을 주었다. 몸은 홑이불이 덮어져 있어 해수욕장의 모래 속 생각이 났다. 모래를 젖꼭지까지 덮고 가만히 내려다보면 내가 무슨 지렁이나, 아니면 모래 속에서 솟아 나온 나무둥치 같은 기분이 들었었다. 나무둥치와 잎은 어떻게 자기의 보이지 않는 뿌리를 인식할 수 있을까, 지렁이는 땅속으로 기어들면 자기의 실체를 어떻게 수긍할 수 있을까?
--- p.378, 「2월 30일」 “모두들 날 가두어두려 한단 말야. 아무 장난감도 없는 방 속에다 처넣고 문을 잠가버린다니까.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되어 난 싀어 있었어. 문이 열렸을 때도 난 나갈 수가 없었다. 나가보았지만 마찬가지였다. 방에서 방으로 건너다니다 제자리로 돌아왔을 뿐이었으니까. 하지만 언제까지나 그렇게 되진 않는다, 자살이라도 할 수 있으니깐, 나는.” --- p.397, 「시인 일가네 겨울」 “자정은, 어제의 끝이고…… 내일의 시작이고…… 헌데 오늘이 끼이질 못했고…… 하 그것은[零時] 묘혈(墓穴)이며 산실(産室)이고…… 그건, 정말, 그래! 거기서 아마 거소를 잃은, ‘말’은 살고 있는 모양이다.” --- p.518, 「뙤약볕 3」, 그녀의 얼굴은 달빛의 뒤쪽에 있어, 그로서는 읽을 수 없었지만, 그녀 어깨 위의 달빛이 포르르 떠는 것으로 보아, 어머니는 울고 있다고 그는 생각했다. 사실로 그녀는 울고 있었던 모양으로, 돌아서 달빛을 올려다보았을 때의 그 눈에는 눈물이 웅덩이처럼 괴어 있었다. 그 아들은, 그 눈물이 자기를 안고 겨울밤을 새우던, 그 청상과부의, 접자 불빛 어린 그 눈물과 너무도 같다고 추억했다. --- pp.722~723, 「유리장」 무덤에까지 가져갈, 그렇게나 귀중한 것이 있다면, 또는 꼭히 놓아두고 갈 소중한 것이 있다면, 오늘 늙은네가 믿기엔, 그것은 사랑일 것이라고 --- p.934, 「두 집 사이」 ―자기는, 운명적으로 시인이라고 생각하는 자가 있어, 자기의 죽음은, 자기가 뿌린 말의 씨앗들이 터, 불의 꽃을 피울 때, 그 불의 고랑에 누워 산화하는, 그런 것이 되기를 바란다면, 그건 너무 사치스러운 꿈이나 될까요? --- p.1062, 「두 집 사이: 제7의 늙은 아해(兒孩) 얘기」 그러면 나는, 어머니를 빼앗아 가는 모든 아버지들에 대한 형언할 수 없는 질투와 증오 같은 것으로, 비질비질 울며 바다로 달려 내려가서는, 그 고요한 물속에 나를 파묻어놓는 것이었다. 상점이 잇대어진 거리를 다니고도 싶었었지만, 그러다 보면 나만 한 또래 애들의 돌팔매에 맞기가 일쑤였고, 개가 물려 달려들어도 아무도 말려주려고 하지 않는 것이었다. 결국 바다로밖에 내가 갈 곳은 없던 것이다. 그래서는 눈물을 떨어뜨리며 어머니를 저주하고 있노라면, 나도 모른 새, 저 어린 잠지가 불어나서, 물속에 잠겨 앉은 아이는 아이가 아니라, 그것은 하나의 돌출한 남근, 하나의 더러운 아버지로 느껴지는 것이었다. 저 정중스럽지 못한 손들로 쳐들어 보이던, 저 음모 푸석한 사타구니며, 물그레해 보이는 둔부 같은 것을, 그러며 나는 훔쳐보고 있는 것이다. 나도 그러며 내 손바닥을 펴 보는데, 그러면 내 손도 또한 저 때 낀 아버지들의 마디 굵은 손으로 변해져, 저 까스스한 바다를 물그레 더듬고 있었다. 손바닥에 가득 채워졌다 빠져나가는 바다의 감촉은 그리고 그런 것이었다. --- p.1478, 『죽음의 한 연구』 자다 깨어 노래를 부르고 있던 저 어렸을 때, 밖에서 돌아온 내 어머니가 그랬었다. 그 어머니는 그래서는, 나를 품에 안기를 적이 겁내고 아파하는 얼굴로 외면하곤 했었다. 그 어머니를 내가 그렇게도 기다렸었는데, 그러나 갑자기 밉고 원망스러워 휙 돌아누워 버리면, 그 어머니는 소리 없이 우는 것이었다. 그러다 보면 내가 어느덧 어머니의 젖꼭지를 물고 있었고, 그것은 내 것이 아닌 독한 침 냄새에 덮어씌워져 있었다. 그러나 나는 휙 돌아눕지는 않았다. --- p.1533, 『죽음의 한 연구』 오늘날 창궐 만연하는, 염세자살이며, 행복하지 못하기, 불만족, 불안, 초조 등은,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할 줄 모르는 데 근거하고 있는 것처럼도 보이되, 그것은 잘못된 진맥이며, 그런 병증은 사실은, 왜냐하면 자기를 사랑할 줄 모르기에 의해서가 아니라, 자기를 否定할 줄을 모르는 데 근거하고 있다는 것을, 새로 심심히 고려해보아야 할 것이다. --- p.4387, 『칠조어론 2 - 「제9장 주석 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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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좀 타는 산악인이라면 히말라야 봉우리들에 꼭 가보고 싶듯이, 창작 좀 하는 문인이라면, 소설과 시집 좀 읽는 독자라면 꼭 탐독하고 싶은 작품들이 있다. 그중 적지 않은 사람들이 ‘한국문학의 에베레스트’라고 일컬을 수 있는 박상륭의 작품을 엄지로 꼽는다. 히말라야산맥의 14좌 봉우리들이 그렇듯이, 박상륭의 문학은 아찔할 만큼 장대하고, 신비할 만큼 난해하면서도, 고요할 만큼 농후한 감동이 탐독의 욕망을 불러일으키는 까닭이다. 그것은 박상륭의 작품 세계가 전통 문학을 넘어 동서양 철학, 샤머니즘, 종교 사상, 경전, 신화, 민담, 우화, 동화 등의 다양한 인류 문화를 아울러 ‘죽음의 구원’이라는 일관된 주제로 끌어안아 치열한 문체로써 전혀 새로운 한국문학의 지평을 열었기 때문이리라. 이에 오래전부터 박상륭 작품의 정면을 응시한 문학비평가들은 박상륭의 작품에 대하여 “『무정』 이후에 씌어진 가장 좋은 소설 중의 하나”(김현), “이상(李相) 이후 가장 철저한 모더니즘의 방법으로 씌어진 작품”(김치수), “당대에게 벅찬 작가”(김정란), “박상륭의 소설은 하나의 신비이다”(김진수)라고 기꺼이 찬탄했다. 그의 전작(全作)을 담은 전집이 꼬박 2년간 우보천리(牛步千里)의 편집 과정을 거쳐 『박상륭 전집』이라는 이름으로 작가의 4주기에 맞춰 ‘정본’으로 출간되었다. 『박상륭 전집』이 정본(定本)인 것은 앞서 여러 출판사에서 작가의 집필을 기다려 한 권씩 한 권씩 출간한 단행본들에 남아 있는 산발적 편집 오류들을 작가의 유가족과 편집자가 꼼꼼히 살펴 바로잡고, 그 단행본들에서 혼용 표기된 잦은 용어들도 비교하고 검토하여 통일한 까닭이다.
현재 서점에서 한국어 단행본으로 유통되는 박상륭 작가의 전 작품은 품절된 책을 포함하여 10책(13권)이다. 그중 중단편 소설집은 작가의 초기작인 『아겔다마』, 『열명길』을 비롯해 『평심』, 『잠의 열매를 매단 나무는 뿌리로 꿈을 꾼다』, 『소설법』이며, 장편소설은 초기작인 『죽음의 한 연구』, 『칠조어론』(1~4)을 비롯해 『신을 죽인 자의 행로는 쓸쓸했도다』, 『잡설품』이다. 그리고 ‘산문집’(이라는 표제를 달고 출간되었지만, 오히려 소설로 읽히는) 『산해기』가 있다. 이 작품들이 『박상륭 전집』에는 장르를 따라 네 권으로 편집되어 있다. 그중 세 권은 작품이고, 한 권은 별책이다. 즉, ‘박상륭 전집: 중단편’(1408쪽 분량), ‘박상륭 전집: 장편-산문’(1332쪽 분량), ‘박상륭 전집: 칠조어론’(1556쪽 분량), 그리고 ‘박상륭 전집: 주석과 바깥 글’(276쪽 분량)이 그것이다. 전집을 이렇게 분권한 것은 박상륭 작가의 방대한 역작 『칠조어론』을 한 권으로 묶으려니, 분량의 균형을 맞춘 까닭이다. 또한, 『소설법』, 『죽음의 한 연구』, 『잡설품』, 『산해기』, 『칠조어론』(1~4)의 주석을 비롯해, 앞서 출판된 단행본들에 포함된 작가의 ‘서문과 후기’ 등을 별책으로 묶은 까닭은 작가의 작품에 붙은 주석들이 단순히 참고문헌을 밝히는 일이기보다는 이를테면, 주석 하나의 원고량이 몇 페이지에 달할 만큼 대개는 그 내용이 작품에 이어지기에, 독자가 ‘작품’과 ‘별책’을 함께 펼쳐놓고 읽을 수 있게 한 의도이다. 잦은 미주(尾註)를 읽기 위해 두꺼운 책의 앞뒤를 수시로 오가는 일은 불편하기 때문이다. 『박상륭 전집』에 담은 작품 분량은 200자 원고지 기준으로 23,875매이다. 예컨대 1,200매의 원고를 한 권으로 묶는다면, 오늘날 출간되는 책으로는 비교적 두툼한데, 그런 소설책으로 환산하면 이 전집은 약 20권 분량이다. 그 방대한 원고를 국판의 최대 크기로 4권에 담았으니, 『박상륭 전집』의 텍스트 밀도는 꽤 높다. 그렇다고, 글자 크기가 너무 작거나 행간이 바짝 붙어서 읽기 불편하게 편집한 것이 아니다. ‘한국타이포그라피학회’가 선정한 ‘제1회 타이포그래피가 아름다운 책 2016’을 수상한 북디자이너(박연주)가 그 난점을 고려해 이 전집을 간결하고 가독성 있게 디자인했다. 표지 디자인 역시, 박상륭의 문학 세계를 장르별 작품 분량 기준으로 도형적 지형도를 그려내어 깔끔한 타이포그래피로 텍스트와 표지 디자인을 유기적으로 완성했다. 그러한 『박상륭 전집』의 본문 쪽수는 ‘박상륭 전집: 중단편’을 시작으로 ‘박상륭 전집: 주석과 바깥 글’까지 연번(連番)으로 매겨져 있다. 즉, 『박상륭 전집』은 1쪽에서 시작하여 4572쪽에서 끝난다. 그것은 『박상륭 전집』을 텍스트 삼아 글을 쓸 필자가 인용이나 참고문헌을 적을 때, 그 출처를 밝히기 쉽게 하려는 목적의 편집이다. “모든끝은그러나시작에물려있음을!” 『박상륭 전집』 곳곳에 나오는 문장이다. 작가 박상륭은 타계했지만, 작가는 오늘날에도 훗날에도 거듭 불려 나와 많은 누군가에게 (지난 많은 독자가 그랬듯이) 문학의 번뜩이는 시작이 될 터이다. “그는 당대에게 벅찬 작가다. 그는 당대에는 가장 고독하고, 그리고 후대에는 가장 오랫동안 무덤에서 불려 나올 작가다.”(김정란)라는 표현처럼 박상륭의 작품은 백 년 후, 오백 년 후에도 한국문학사의 불후한 성좌가 되어 빛날 것이다. 그 텍스트로서, 이 『박상륭 전집』이 오랫동안 그 정본이 될 것이다. |